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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 아닌 아빠가 직접 사들고 왔습니다.
▲ 통닭 2마리 배달 아닌 아빠가 직접 사들고 왔습니다.
ⓒ 김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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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10일, 21일, 25일 그리고 말일. 뭔가 있을 듯한 이 날들.

그렇습니다. 나오기가 무섭게 빠져나가기 바쁜다는 그 월급이 통장에 다소곳하게 들어와 잠시 점만 찍고 사라지는 날입니다. 들어오면 낙엽 떨어지듯 우르르 출금 쪽에 가서 발자국을 남기는 이 월급은 맞벌이로 둘이 벌던 때나 육아휴직을 한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잦은 이사와 지방 근무, 그리고 주말 부부로 아이들의 부적응이 심각해져서 결정한 육아휴직이었지만 제일 걱정스러웠던 것은 반토막 날 우리집 소득이었습니다. 실제로 휴직 직후에는 둘에서 하나로 줄어든 월급통장을 마주하며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육아휴직 4개월차가 되면서 남편의 월급날을 맞이하는 자세가 달라졌습니다. 그냥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금액이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가족들을 위해 아침에 나갔다 저녁에 들어오면서 얻게 되는 이 월급이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 것인지를 이제야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느낌을 아이들은 알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남편은 '자상하고 좋은 아빠'이기는 하지만 일 주일 내내 늦은 시간에 들어와서 얼굴도 못 보고, 자고 일어나는 아침에서야 잠깐 봤다가 헤어지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월급날이면 전기구이 통닭 들고 온 아버지

월급날이면 꼭 통닭 두 마리를 사들고 오셨던 그분입니다.
▲ 우리 아버지 월급날이면 꼭 통닭 두 마리를 사들고 오셨던 그분입니다.
ⓒ 김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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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30여 년을 직장생활하신 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 아버지는 왕복 2시간 이상 시외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면서도 그 차비를 아껴 퇴근하실 때면 간간히 간식을 사들고 왔습니다. 겨울이 되면 귤부터 '부채 과자'라고 부르는 전통과자, 그리고 당시 귀하디 귀했던 바나나까지. 그리고 그 두 손에 검정 봉투가 없는 날, 아버지 점퍼 주머니 속에 슬쩍 손을 넣으면 잡히던 '쥬시후레시' 검까지..

평생을 월급쟁이로 살아오신 아버지에 대한 추억은 이렇게 따끈했습니다. 더구나 매월 25일 월급 날이면 고소한 냄새 가득한 전기구이 통닭 두 마리를 어김없이 사오셨습니다. 그것도 식을까 봐 꼭 집으로 오는 시외버스 정류장 근처에서 사셨습니다.

이번 달 월급 날에는 남편에게 어린 시절 아버지의 통닭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렇게 해보자고 했습니다. 남편의 선택은, 배달도 안하는 지역 유명 통닭집의 통닭 두 마리였습니다.

그렇게 사온 닭을 꺼내 남편은 열심히 살을 발라주고 아이들과 저는 맛있게 주워 먹었습니다. 닭을 먹으면서 예전에 할아버지는 이렇게 하셨고, 엄마는 지금도 그 생각이 난다는 말도 전했습니다.

또 노파심에 오늘은 그냥 통닭이 아니라 아빠 월급날이라 먹는 통닭이라서 아빠에게 더 감사하면서 먹어야 한다는 얘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모처럼 한 마리가 아니라 두 마리라서 모자르지 않게 잘 먹었다고 배를 두드리는 순간 남편이 한마디에 뒤로 넘어갔습니다.

"여보, 라면 하나 끓여줘. 아니 살 바르는 동안 자기들끼리 다 먹어서 난 하나도 못 먹었네..."

설마했지만, 통닭 두 마리를 아이들과 엄마가 다 먹었습니다. 다음 달 월급 날에는 조금 자제해야 겠습니다. 전기구이 통닭 두 마리를 사오면 아이들 넷이서 다리 하나씩 뜯고 나머지 살을 집어 먹는 통에 겨우 모가지 하나 얻어 먹을까 말까 했다는 친정 엄마의 말씀을 꼭 기억해야 겠습니다. god의 노래에서 어머님은 왜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는지 이제야 깨닫습니다.

덧붙이는 글 | 늘 감사했어야 하는데 그걸 잘 모르다가 좀 부족하거나 없어지면 깨닫게 됩니다. 월급날, 금방 사라져버릴 그 월급이지만 감사합니다.



태그:#월급날, #통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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