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턴 리벤지 국내 메인 포스터

▲ 웨스턴 리벤지 국내 메인 포스터 ⓒ (주)영화사 빅

전란에 휩싸인 고국 덴마크를 떠나 홀로 미국으로 건너온 존은 꼬박 7년을 일한 끝에 아내와 아들을 미국 땅으로 부른다. 서부의 어느 기차역에서 그토록 기다려온 가족과 재회한 존. 그와 가족들은 희망찬 미래를 그리며 마차에 올라 보금자리로 향한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뿐, 동승한 두 명의 승객이 존의 아내에게 노골적인 추파를 던지며 그들의 작은 평안은 산산이 부서진다. 마차 안에 흐르는 팽팽한 긴장감, 이내 손에 땀을 쥐는 사건들이 벌어지고 존은 두 불한당에 의해 마차에서 떨어진다. 존은 황급히 마차의 뒤를 쫓지만 길 위에 버려진 아들의 시신을 발견하곤 절망한다.

곧이어 찾은 마차, 흔들리는 마차를 향해 총을 집어든 존이 다가서고 곧 두 명의 불한당을 쏘아 죽이지만 아내는 차갑게 누워 돌아보지 않는다.

'복수'를 넘어 '구원'에 다가서는 이야기

영화는 <웨스턴 리벤지>라는 제목 그대로 서부에서 벌어지는 한 편의 복수극을 그린다. 동시에 'The Salvation'이라는 원제가 말하듯 '구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화엔 크게 세 가지의 복수, 두 가지의 구원이 등장한다.

우선 '복수'부터 살펴보자. 존은 두 불한당에게 아들과 아내를 잃고 곧 그들을 쏘아 죽인다. 그러자 불한당들의 보스이자 형인 델라루가 존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결정적 순간, 델라루에게 억압당하던 말 못하는 여인 마델린이 그에게 복수의 총구를 돌린다.

영화는 세 가지 복수가 서로 교차하며 충돌하는 것을 동력으로 삼아 이야기를 전개해간다. 러닝타임 동안 존과 델라루의 복수가 이어지고 그 사이에 마을을 둘러싼 음모가 차츰 드러난다.

델라루는 마을을 장악한 조직의 보스다. 그는 보호비의 명목으로 마을 사람들을 갈취하며 전국적 규모의 회사로부터 지령을 받고 비밀리에 마을의 땅을 사들인다. 어느날 그의 동생이 총에 맞아 죽은 채 발견되자 그는 화풀이로 마을사람 세 명을 쏘아 죽이고 범인이 잡힐 때까지 보호비를 두 배로 걷겠다며 엄포를 놓는다. 마을을 이끄는 시장과 보안관은 폭력 앞에 무력하다. 그들은 델라루의 무리한 요구에도 저항할 생각을 하지 못하며 마을을 위한다는 명목 아래 그들에 협조하기까지 한다.

이 지점에서 영화의 주제라고도 할 수 있는 '구원'이 전면에 드러난다. 영화에서 보안관은 존과 대비되는 인물이다. 보안관이며 동시에 성직자인 그는 마을을 구하기 위해 수없이 신에게 기도를 올리고 연방정부에도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직접적으로는 델라루의 압력에 굴복하고 협력하는 모습만을 보일 뿐이다. 그는 직접 마을사람 가운데 두 명의 희생자를 지정하고 존을 잡아 델라루에게 넘기기도 한다. 나아가 존에게 잘못이 없음을 알면서도 때로는 한 마리 양의 희생이 전체의 구원을 불러올 수 있으리라는 말로 스스로의 선택을 정당화한다.

똑같이 델라루의 폭압으로부터 고통받은 존과 보안관. 그러나 존은 저항했고 복수하여 승리를 얻었으나, 보안관은 타협하고 복종하여 벗어나지 못했다. 최후의 순간에 이르러 구원을 언급하며 남아주기를 제안하는 보안관과 거절하고 떠나가는 존의 모습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니었을까? 진정한 의미에서의 구원이란 가만히 기다려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직접 쟁취해야 하는 것임을.

황량한 마을 곳곳에 솟아나는 석유, 이를 노리고 비밀리에 땅을 사들이는 기업. 영화는 여러 장면에 걸쳐 땅을 빼앗고 삶의 터전을 파괴하는 압제자들과 기업의 모습을 동일시한다. 덴마크 군인 출신으로 전란을 피해 미국으로 떠나온 존의 이야기에서 델라루가 이끄는 군대에 의해 학살되었다는 원주민에 이르기까지.

영화는 침략전쟁을 일으킨 독일, 개척이란 미명 하에 원주민을 몰아낸 미국의 과오를, 석유를 노리고 마을의 땅을 사들이는 거대 기업의 모습과 연결짓는다. 그리고 엔딩장면을 통해 이들이 마을을 사들여 석유를 시추하는 모습까지 이어간다. 감독은 이를 통해 약자에 대한 수탈과 압제가 반복되며 이에 저항하지 못한 사람들은 땅을 빼앗기고 밀려나 마침내 모든 것을 잃어야했음을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서부극의 정통을 재현하면서도 차별화를 잊지 않다

웨스턴 리벤지 마델린을 연기한 에바 그린. 한 마디 대사 없이 섬세한 감정선을 표현해냈다.

▲ 웨스턴 리벤지 마델린을 연기한 에바 그린. 한 마디 대사 없이 섬세한 감정선을 표현해냈다. ⓒ (주)영화사 빅


덴마크 출신의 크리스티안 레브링 감독은 정통 서부극을 떠올릴 법한 구도 속에서 현대적인 스타일로 이야기를 풀어갔다. 서부의 황량한 땅에서 빚어지는 선과 악의 노골적 대립, 복수극이라는 설정 등은 정통 서부극을 떠올리게 하지만, 초반 마차신의 긴장감과 후반부 결전장면의 감흥은 스릴러나 액션장르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이처럼 영화는 현대적인 액션과 스릴러의 기법으로 잊혀졌던 폭력의 공간으로의 서부를 스크린 위에 재현해냈다.

정통 서부극을 재현하면서도 기존 서부극의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한 부분도 인상적이다. 기존 정통 서부극에선 기마대와 원주민, 보안관과 불한당 등 선과 악의 대립구도를 통해 기존 가치관을 도식적으로 반영했다면, 이 영화는 여성 캐릭터의 능동성을 강화하고 압제에 대한 저항과 복수라는 테마를 삽입함으로써 정통 서부극과 차별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자니 기타>에서 그저 총을 잡는 것 만으로도 화제가 되었을 만큼 여성캐릭터의 역할이 제한적이고 수동적이었던 서부극에서, 보스의 돈을 갖고 도망치는 마델린의 모습과 아이를 지키기 위해 총을 쏘고 지친 존에게 빵을 가져다 주는 여인의 모습을 등장시킨 것은 그 자체로 의미있는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남성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비판할 수도 있겠으나, 완전한 폭력의 공간인 서부극에서 남성을 능가하는 여성 총잡이를 꾸며내는 것보다야 악당의 뒤통수를 때리는 여인과 약하지만 강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욱 현실적인 설정이 아니겠는가.

더불어 혀가 잘려 말하지 못하는 마델린의 모습을 통해 서부극, 그 폭력의 세계 가운데 억울해도 항변하지 못했던 여성캐릭터 전반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고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황량한 배경만큼 적은 대사, 오히려 무게감 느껴져

웨스턴 리벤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 에릭 칸토나와 대화를 나누는 존(매즈 미켈슨 분).

▲ 웨스턴 리벤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 에릭 칸토나와 대화를 나누는 존(매즈 미켈슨 분). ⓒ (주)영화사 빅


짙은 황토색의 땅과 남색의 하늘이 주는 색감대비가 인상적이고, 이야기에 잘 젖어드는 음악과 배우들의 출중한 연기도 극에의 몰입을 더했다. 특히 덴마크의 유명 배우 매즈 미켈슨은 고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존의 캐릭터를 멋지게 연기해냈다. 마델린을 연기한 에바 그린 역시 대사 없이도 미묘한 감정선을 섬세하게 표현해낸 동시에 자신이 가진 양가적인 이미지를 적절히 활용했다. 제프리 딘 모건과 더글라스 헨셀 등의 존재감도 빛났고, 그 밖의 배우들도 자신의 맡은 바 역할을 훌륭히 소화했다.

전체적으로 황량한 배경 만큼 표정연기나 대사가 적은 영화였다. 하지만 이와 같은 제약이 오히려 영화의 인상을 적절히 강화했고 더욱 무게감 있는 작품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말 못하는 마델린의 캐릭터에서 보듯, 때로는 제약이 있어 더욱 빛나는 것들이 있는 것이다.

감독은 2014년에 이르러 낭만이 없는 무법천지의 폭력세계를 스크린 위에 구현해냈다. 서부극의 전성시대가 한참 지난 뒤 나오는 이와 같은 활극이 우리시대에 던지는 화두는 무엇일까? 적나라한 폭력에 대항하는 존의 모습보다, 압제에 순응하고 때로는 협력하며 외부의 구원만을 기다리다 심지어 그 구원자를 직접 잡아 넘기는 마을사람들의 모습이 더욱 익숙하고 현실적으로 보이는 건 무엇 때문일까?

누군가에겐 간만에 나온 정통 서부극일 수도, 또 다른 누군가에겐 깊은 고민을 던지는 무거운 영화일 수도 있는 영화. <웨스턴 리벤지>는 오는 30일 국내개봉을 앞두고 있다.

덧붙이는 글 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 게재하였습니다
웨스턴리벤지 크리스티안 레브링 매즈 미켈슨 에바 그린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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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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