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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6시 30분, 2호선에서 4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열심히 계단을 내려와서 막 떠나려고 하는 지하철에 올라탄다. 언제나처럼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한 학생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지난해 우리 반 학생이었던, 순하디 순하게 생긴 고2 동주(가명)와 중학생인 그의 동생이다. 며칠 째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마주쳤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서울 종로구 대학로 있는데, 이 학생의 집은 구로 디지털단지 근처다. 학교 근처에 살았는데 이사를 해, 지하철만 1시간여를 타야 학교에 올 수 있다. 지하철에서 보는 동주와 동주 동생의 모습은 둘 중 하나다. 졸고 있거나 스마트폰을 보고 있거나….

처음 몇 번은 "아침은 먹었니?"라고 물었지만 지금은 안 물어본다. 언제나 답이 "아니오, 안 먹었어요"이기 때문이다. 새벽 5시 30분께 일어나는데, 어머니가 그 시간에 아침을 챙겨주는 걸 무척 힘들어 하는 것 같아 언젠가부터 '챙겨주지 말라'고 했단다. 대충 씻고 옷 챙겨 입고 학교 오기도 바빠, 밥을 먹는다 해도 정신없이 먹어야 하고 어머니께도 너무 죄송하다고 했다.

지난 9월 1일부터 경기도내 대부분의 학교에서 '9시 등교'가 실시된 가운데, 이날 오전 수원시 조원고등학교 학생회가 교문 앞에서 등교하는 학생들을 상대로 '아침 먹고 등교하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지난 9월 1일부터 경기도내 대부분의 학교에서 '9시 등교'가 실시된 가운데, 이날 오전 수원시 조원고등학교 학생회가 교문 앞에서 등교하는 학생들을 상대로 '아침 먹고 등교하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 경기도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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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 등교 시간은 오전 7시 30분이다. 1분이라도 늦으면 교문의 생활지도부 교사들로부터 벌점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동주는 매일 빠르면 7시 전후, 늦어도 7시 20분 이전에는 학교에 도착한다. 그의 집이 있는 구로 디지털단지 근처에서 이 시간에 학교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오전 6시 정도에는 출발해야 한다. 중학생 동생도 언제나 이 시간에 형과 함께 집을 나선다.

우리 학교엔 올해 기숙사가 생겼지만, 동주는 기숙사 대신 이런 생활을 택했다. 기숙사에 들어가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동주는 기숙사에 들어가서 이런 저런 규칙에 얽매이기보다는 차라리 이렇게 사는 것이 편하다고 했다.

집에서 아침을 못 먹는 대신, 학교 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같은 것을 사오기도 하지만, 1교시 마치고 학교 매점에 들러 뭔가를 사 먹을 때가 많다. 아침을 거른 학생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건 단연 '컵밥'이다. 1분 1초가 아깝다는 노량진의 고시생들이 컵밥으로 식사를 때운다는 언론 보도를 본 적이 있다. 모르긴 몰라도, 컵밥 최대 고객에서 중고등 학생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많은 아이들이 1교시가 끝나면 매점으로 뛰어가 컵밥을 사 먹는다. 줄을 선 학생들도 많고 시간도 모자라니 손에 컵밥을 들고 먹으면서 교실로 뛰어오거나 계단을 오르기도 한다. 간혹 다 못 먹어서 교실까지 들고 오는 학생들도 있다. 계단에서, 복도에서 컵밥을 들고 먹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일 리 없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야단칠 수도 없다. 아이들을 이렇게 만든 게 누구인지 생각하면 마음 한쪽이 무겁다. 누가, 무엇이, 우리 학생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학생들에게 '아침이 있는 삶'은 없다?

ⓒ 김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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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중앙부에 해당하는 종로구·중구·용산구·서대문구·마포구·은평구 소재 사립 중고등학교 교사들에게 직접 확인한 학생 등교시간 실태는 충격적이었다. 오전 9시에 등교하는 학교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부분 오전 8시 전후에 등교하고 있고, 등교시간이 7시 30분 전인 학교도 있었다.

은평구 명지고의 경우는 학생 등교시간이 7시 25분인데 정규 수업은 8시 30분에 시작했다. 학생들은 무려 1시간 5분 일찍 등교하고 있었다. 이밖에도 동성고, 예일여고, 예일디자인고, 인창고, 대신고 등에서 7시 30분을 학생 등교시간으로 정해 놨다.

예일디자인고·대신고는 1시간, 풍문여고·중앙여고·성심여고 등은 50분, 인창고·대성고·계성여고 등은 40분 등 많은 고등학교들이 '학교장이 등교시간을 정한다'는 것을 근거로 30분 이상 일찍 학생들을 등교 시키고 있었다.

중학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신중·예일여중·한양중 등이 8시를 등교시간으로 정한 것을 비롯해 이 지역 대다수 중학교들은 8시 30분 이전을 등교시간으로 정해 놨다. 정작 수업 시작 시간은 대부분 등교시간보다 30분 이상 늦었다. 특히 예일여중과 신광여중은 45분 전에, 환일중·대경중·대성중·배문중·장충중·중앙중 등은 수업 시작 40분 전에 학생들을 등교시켰다.

이 지역 대다수 중·고등학교들은 학생들을 30분에서 1시간 넘게 일찍 등교하게 한 뒤 자율학습, 독서활동, 영어듣기평가, 종교 예배 등을 시킨다. 그러나 이 시간에 많은 학생들은 엎드려 잠을 자기 바쁘다. 이게 현실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른 등교시간 탓에 아침을 못 먹고 오는 학생들이 태반이다. 우리 반 학생들에게 물어봤더니, 아침을 못 먹고 왔다는 친구가 절반 정도 됐다.

당장 9시 등교 어렵다면, '정시 등교'만이라도...

지난 8월 25일 경기도 의정부시 가능동 의정부여자중학교에서 학생들이 9시에 맞춰 등교해 수업을 준비하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이 2학기부터 9시 등교 정책 시행계획을 각급학교에 통보한 이후 첫 사례다.
 지난 8월 25일 경기도 의정부시 가능동 의정부여자중학교에서 학생들이 9시에 맞춰 등교해 수업을 준비하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이 2학기부터 9시 등교 정책 시행계획을 각급학교에 통보한 이후 첫 사례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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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중생들의 건의를 받아들인 이재정 경기교육감이 9시 등교 정책을 발표하고 시행한 지 두 달여가 지났지만, 이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맞벌이 부모의 어려움과 수능 시간 적응 등 우려가 있지만 대체로 찬성하는 분위기다. 전북과 강원도, 제주도 등에서도 9시 등교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한 예비후보가 내건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모토가 학교에서는 '아침이 있는 삶'으로 진화하며 9시 등교 문제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가 되었다.

아직까지 서울교육청은 공식적으로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가 없다. 서울교육청이 침묵 속에 서울의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오늘도 오전 8시도 안 되어서, 심지어 7시 30분 이전에 등교를 하고 있다.

9시 등교 정책 시행을 망설이는 교육청들에게 부탁한다. 일부 보수적인 학부모들의 반대 때문에 9시 등교가 어렵다면 적어도 8시 30분 등교, 적어도 8시 등교라도 고민해달라. 만약 9시 등교나 8시 등교와 같이 시간을 정하는 것이 힘들다면, 수업 시작 시간에 맞춰 등교하는 '정시 등교'부터 시작하는 건 어떨까?

이렇게 해서 생긴 30분의 여유는 학생들과 교사들, 학부모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제발 우리 아이들에게 '아침이 있는 삶'을 찾아주자. 그것도 안 되면 최소한 컵밥으로부터 해방이라도 시켜주자. 서울교육청과 조희연 교육감의 결단이 필요하다.


태그:#아침이 있는 삶, #컵밥, #조희연, #9시 등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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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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