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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에 누워 있던 태범이 아버지가 갑자기 활짝 웃는 거예요. '왜 그러냐'고 했더니 '태범이다'하고 말했어요. 태범이가 나타났나 봐요. 마지막에 제대로 말도 못했었는데... 그리고 얼마 있다가 돌아가셨어요."

어머니 정경희(49)씨가 남편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이 생의 마지막 숨을 쉬는 순간까지도 아들이 그리웠을까. 그는 애타게 찾았던 아들 곁으로 떠났다. 지난 26일 오후 10시경의 일이다.

그는 안산 단원고 2학년 5반 고(故) 인태범군의 아버지 인병선(53)씨다. 세월호 침몰사고가 일어난 지 194일 만이다. 그의 빈소는 경기도 안산 선부동 한도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관련기사: 말기암 판정받은 세월호 유족 사망... 아들 안치된 곳으로).

스트레스성 위염인가 했는데 갑작스러운 말기암 진단

지난 26일 오후 10시, 담도암으로 숨진 인병선씨의 빈소가 경기도 안산 선부동 한도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지난 26일 오후 10시, 담도암으로 숨진 인병선씨의 빈소가 경기도 안산 선부동 한도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 강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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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전, 빈소에서 만난 정씨는 야윈 얼굴이었다. 6개월전 아들을 떠나 보냈는데, 이번에는 남편의 상을 치러야 했다. 슬픔이 다 소진돼버린 듯, 정씨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태범이 아버지가 태범이 시신을 확인하고 힘들어 했어요. 훼손된 모습을 봤거든요. 밥도 제대로 못 먹었죠. 왜 이렇게 됐는지..."

사고 당시 진도에 있던 부모의 마음처럼, 아버지는 아들을 애타게 찾았다. '살려내라'고 해경과 정부 관계자에게 외쳤다. 하지만 시간은 무심히 흘렀다. 그리고 사고 5일 만에야 아들의 시신을 찾았다. 아버지는 아들의 얼굴을 감싸며 눈물을 흘렸다.

정씨가 전하는 남편의 아들 사랑은 남달랐다. 막내아들이어서 그랬던가. 인씨는 태범이가 죽은 후로 "사는 낙이 없다"는 말을 자주 했다. 정씨가 "다 큰 딸이 둘이나 있는데 뭐가 걱정이냐"고 했다. 그래도 아들의 존재는 컸다.

입맛이 없어서 식사를 자주 걸렀다. 밥을 먹어도 소화가 잘 되지 않았다. 사고 이후에 생긴 스트레스성 위염이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약발은 듣지 않았다. 지난 7월 말, 큰 병원에 가서 정밀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담도암 4기라고 말했다. 또 6개월 시한부 인생이 남았다고 말했다. 담도는 쓸개즙을 운반하는 일종의 소화기관이다.

빈소에서 만난 태범이의 이모는 한탄을 했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다.

"아들 잃고 신랑 잃고 얼마나 비참한 일이야. 너무너무 야속해."

같은반 부모들 끝까지 곁을 지키기로

태범이 아버지 인병선씨의 빈소가 차려진 경기도 안산 선부동 한도병원. 빈소 앞에는 조화들이 놓이기 시작했다. ‘세월호를 잊지 않는 재외동포 일동’,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세월호 가족 대책위원회 일동’ 등의 조화가 놓여 있다.
 태범이 아버지 인병선씨의 빈소가 차려진 경기도 안산 선부동 한도병원. 빈소 앞에는 조화들이 놓이기 시작했다. ‘세월호를 잊지 않는 재외동포 일동’,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세월호 가족 대책위원회 일동’ 등의 조화가 놓여 있다.
ⓒ 강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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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빈소 앞에는 조화가 놓이기 시작했다. '세월호를 잊지 않는 재외동포 일동',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세월호 가족 대책위원회 일동' 등 세월호 사고로 만들어진 단체 이름이 눈에 띄었다.

그의 영정 옆에는 '2학년 5반 학부모 일동'이라고 적힌 조화가 놓여 있었다. 태범이와 함께 세월호를 탔다 돌아오지 못한 학생 27명의 아버지, 어머니들이 보낸 것이다.

그 아버지, 어머니들이 빈소 앞 접견실에 둘러앉아 있었다. 그들의 스마트폰과 가방 곳곳에는 노란 리본이 눈에 띄었다. 'REMEMBER0416'이라고 적힌 노란 팔찌를 낀 어머니도 있었다. 안산 단원고 희생자 학부모들로 구성된 세월호 가족대책위는 인씨 유가족들과 협의해 '대책위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장례가 끝나는 날까지 학부모들은 인씨 곁을 지키기로 했다.

부모들은 6개월 전 사고처럼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또 갑자기 악화된 그의 건강처럼 자신들의 건강도 염려했다. 고 박성호군의 어머니 정혜숙(46)씨는 "저희 유가족들은 모두가 종합병동"이라며 "스트레스와 신경통은 말도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씨는 "살아는 있어도 아들딸 보낸 부모 마음이 오죽하겠냐"며 "지병이 있으면 더 악화되고 지병이 없어도 새로 생긴다"고 한탄했다.

다른 어머니는 "애가 죽기까지 했는데, 몸이 아픈 게 대수겠냐"며 "몸을 잘 챙겨야겠다고 생각을 하지만 신경 쓸 일이 많아서 그러지 못 한다"고 말했다. 묵묵히 다른 부모의 말을 듣고 있던 한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정부가 죽인거야, 정부가. 사고는 어쩔 수 없다고 쳐. 그래도 구조를 안 했잖아. 구조 안하고 애들을 죽였잖아. 태범이 때문에 속병 나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거 아니냐."

태범이 아버지 인병선씨의 장례 일정은 28일 오전 8시에 발인이 예정돼 있다. 인씨의 시신은 화장된 뒤 아들이 안치돼 있는 평택 서호추모공원으로 옮겨진다. 유족들이 아들 곁에 묻어달라던 인씨의 말을 받들기로 했다. 


태그:#세월호 사고, #인태범 아버지, #세월호 가족대책위, #안산 단원고, #가장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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