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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 아이들의 강의가 있을 때는 긴장하게 된다. 수업 내용을 꼼꼼히 확인하고 흔히 '당근'이라고 하는 강화물(간식)을 준비하고 들어간다. 하지만, 중 2학년에서도 가장 강하다는 반에 들어가는 경우, 수업은 엉망이 되고 나올 땐 목이 쉬어 녹초가 되어 교실을 나오기도 한다.

수업 쉬는시간 강화물로 책상에 올려놓은 '마이쮸(소프트캔디의 하나)'가 없어졌다.

"마이쮸 봉지 본 사람?"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웃고 떠드느라 듣는 척도 하지 않는다. 나는 누군가가 몰래 숨겨놓았을거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평소에도 마이쮸 하나만 달라고 어깨도 주무르고 갖은 애교를 떨면서 집요하게 매달렸기 때문이다.

"마이쮸 갖고 간 사람 얼른 갖고와.... 안 갖고 오면 수업을 못하는데..."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나는 점점 불쾌해지기 시작했다. 장난인 줄 알았는데, '정말 누군가가 가지고 가버린 건 아닐까?'란 생각이 들면서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컴퓨터를 켜려고 키보드판을 열자 그 사이에 마이쮸 봉지가 끼어져 있었다. 순간 부끄러움에 얼굴이 벌개졌다.

"선생님이 정말 미안해요. 선생님도 모르게 중 2에 대한 색안경을 쓰고 여러분들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선생님이 여러분들에 대해 얼마나 많은 오해와 편견을 갖고 있었는지 반성하게 되네요. 정말 미안해요. 대신 수업 끝나고 마이쮸는 모두 한사람씩 골고루 나누어 줄게요."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나는 내 자신이 부끄럽고 아이들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오늘 수업은 아이들과 사이버 폭력, 그에 대한 법적인 처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알아보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사이버 폭력 예방을 위한 이코티콘도 만들어 보았다.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며 신나게 웃고 떠들었다. 아이들의 앙증맞은 그림들을 보다 보니, 방금 전 나의 잘못된 행동이 떠올랐다. 나처럼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을 잘못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지, 아이들을 위한다고 한 말과 행동들이 도리어 해가 되는 경우는 없었는지 생각했다.

명일중학교 아이들이 만든 폭력예방 이모티콘
 명일중학교 아이들이 만든 폭력예방 이모티콘
ⓒ 공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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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감정을 강탈해 버리는 섣부른 행동들

특히 저학년의 경우 부모가 아이들과 교우관계에 깊이 개입한다. 적적한 개입으로 또래들간의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지만, 잘못된 개입은 아이가 스스로 관계를 해결할 연습의 기회를 앗아가 버린다.

한 예로 '부자아빠 캠프'에 모인 아버지들과 아이들이 인사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민석이가 희준이에게 팔을 들어 때릴 것처럼 달려들자. 희준이 아빠가 민석이를 밀쳐내 버렸다. 그 모습을 본 민석이 아빠도 기분이 상해 우리 아이가 때린 것도 아닌데 왜 밀치냐고 언성을 높인다. 결국 민석이 아빠와 희준이 아빠는 말다툼을 하게 되었다. 또 다른 아빠가 희준이 아빠에게 이제 그만하라고 말리지만, 희준이 아빠는 너무나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그 사이 민석이는 아파하고 희준이도 주눅이 든다. 아빠들이 집으로 가고 아이들은 점심시간에 옹기종기 모여 식사를 하는데 희준이만 혼자서 밥을 먹게 되었다. 희준이는 아빠의 행동으로 아이들에게 집단 따돌림 대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아이들은 희준이를 가까이 하면 희준이의 아빠가 자신들을 어떻게 대할지 이미 나름의 판단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 상황에 희준이 아빠의 행동은 큰 사고를 미리 막은 것일까? 아니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을 확대시켜 버린걸까? 분명한 결과는 희준이와 민석이는 감정을 이야기할 기회를 잃어 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실재 남자학생들의 경우 싸움이 자주 일어난다. 아직 미숙한 저학년의 경우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지 못하기도 하고 언어의 표현력도 여학생들에 비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보니 말보다 폭력이 먼저 일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이러한 갈등을 통해 배워가며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을 잃어 버리지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사건건 모든 일들을 부모가 나서서 해결하려고 하다 보면 아이는 어떤 잘못도 부모가 와서 해결해 줄 거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다시 시나리오를 짜보면 민석이의 속마음은 그랬다. 희준이가 자꾸 약올려서 화가 나서 위협을 가했지만, 진짜 희준이를 때릴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희준이 아빠도 옆에 있는데 내가 너무 화를 낸 것 같아 희준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희준이 아빠가 나를 밀치며 쳐다보는 눈빛에서 나는 희준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어져 버렸고 희준이와는 상대하고 싶지 않아졌다.

희준이의 속마음은 이랬다. 민석이를 약 올린 것이 미안했지만, 나에게 위협을 가하니 기분이 상했다. 그리고 아빠가 나를 위해 화를 낸건데 우리반 아이들이 나랑 얘기도 하지 않으려 한다. 나는 아빠도 이해되지만 아빠로 인해 더 고립되게 되었다. 아빠도 아이들도 모두 싫어진다.

흔히 가장 많이 실수하는 것 중에 하나는 어른들의 섣부른 판단이다. 상황을 보고 나름의 판단을 마친 후 마치 판사처럼 이 아이는 무엇을 잘못했고 너무 무엇을 잘못했으니 서로 사과하라고 한다. 아이는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가도 강요하는 부모의 말에 반발심이 생기고 사과하려면 마음이 사라져 버리는 강점을 강탈 당하게 되는 것이다.

나 또한 아이가 학교에서 싸우고 들어오면 감정이 어땠는지 무슨 이유때문에 그랬는지 잘 묻지 않고, 결과에만 집중해서 이야기를 캐묻곤 한다. "그래서 때렸어? 맞았어?" 아이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 주며 공감해 준다면, 아이들은 말을 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알게 되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아이가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으면 좋겠다.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준다면 아마도 아이가 먼저 친구에게 가서 "사과할래요"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 주기가 참 힘들다.

나 또한 학급에서 장난꾸러기로 알려진 아이에게 꼬리표를 달아 버리고 빠른 해결만을 하는 성급함에 익숙해져 버리지는 않았나란 반성을 했다. 오늘은 수업을 마치며 아이들의 눈을 하나씩 맞추며 마이쮸를 나누어 주었다. 아이들의 눈빛은 순수하고 아름답다. 그걸 알아보지 못했던것 같아 정말 미안하다.


태그:#학교폭력, #감정강탈, #꼬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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