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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부부는 3주년 결혼 기념일 저녁식사에 필자를 초대하여 큰 감동을 선물했다. 영광된 자리를 마치고 근처의 커피숍 야외 테이블에서 함께한 과거를 추억하는 부부의 모습.
▲ 3주년 결혼 기념일을 맞은 부부 이들 부부는 3주년 결혼 기념일 저녁식사에 필자를 초대하여 큰 감동을 선물했다. 영광된 자리를 마치고 근처의 커피숍 야외 테이블에서 함께한 과거를 추억하는 부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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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장애를 얻은 후 만난 여러 사람들이 있다. 예전 같으면 그저 잠시 스쳐 지나갔을 사람들이 장애자의 시선으로 보니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들과 긴밀하게 교류하며 홀로 생활하는 외로움을 달래기도 하고 스스로의 발전을 위한 자극을 받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 중 오늘은 한 장애인 부부를 소개하고자 한다. 권성환(48, 지체장애 1급), 강시현(48, 지체장애 1급) 부부로 남편은 현재 전북 전주시 사회복지직 공무원으로, 부인은 KTCS의 전화 안내원으로 일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들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지난 2010년 늦가을 때였다. 집 근처 도서관을 이용하며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던 나는 역시 같은 시험을 준비하던 권성환씨를 알게 되었다. 당시는 부인 혼자 KTCS에 근무하며 시험을 준비하는 권성환씨를 뒷바라지했다.

나의 아내는 지인의 소개로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던지라, 전주에서 혼자 생활해야 했던 나는 생일조차 외롭게 지내야 했다. 그런 내게 이들 부부는 생일 케이크를, 음식에 체한 어느 날 늦은 밤에는 소화제 등 응급약을 들고 나타나 큰 위안을 주곤 했다.

지체장애 1급 남편 공무원 시험 뒷바라지한 지체장애 1급 아내  

수험생이던 남편 권성환씨의 점심 도시락을 챙겨줘가며 뒷바라지를 해낸 강시현씨는 KTCS의 114안내원으로 재택근무 중이다
▲ KTCS 전화안내원으로 재택근무를 하는 부인 강시현씨 수험생이던 남편 권성환씨의 점심 도시락을 챙겨줘가며 뒷바라지를 해낸 강시현씨는 KTCS의 114안내원으로 재택근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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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전화 안내원으로 재택근무를 하던 강시현씨는 시험 준비를 하는 성환씨의 점심 도시락을 챙겨 주었다. 주말에는 김제의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어머니를 찾곤 했다. 전주에서 김제를 다녀오는 그 짧은 시간이 이들 부부가 생활하며 가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여가 시간이었다.

4남매 중 셋째로 어려서부터 장애를 지녔던 성환씨는 형님과 동생들을 위해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그는 김제시 만경면에서 가난한 살림에 자녀들 학비를 대기 위해 고생하시는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왔다.

이때 성환씨는 경운기를 비롯한 각종 농기구를 구입해 자기네 일은 물론이고 이웃들의 일까지 척척 해내는 열성을 보여 주위를 감동시키곤 했다고 한다. 그런 성환씨의 헌신과 형제들 각자의 노력으로 형님은 현재 대한항공에서 근무하는 등 형제들 모두가 각 분야에서 건실한 사회인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형제들이 각자 자리를 잡아가고 자신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겼지만, 혼자서만 뒤쳐진 것 같은 상실감을 느낀 성환씨는 방송대에 지원해 전 과정을 마쳤다. 이후 우연한 기회에 관공서에서 민원을 위해 방문하는 장애인을 위해 운영하던 '행정 도우미'에 지원한 것이 성환씨가 공직자가 되려고 마음먹은 계기가 되었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하면서 이들 부부가 보통의 부부와 다른 점을 발견했다. 성인이 되어 한 가정을 이루게 되면, 보통은 자기 생각을 주장해 배우자에게 강요하면서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그에 비해 이들 부부는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늘 상대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배려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지녔다. 이들의 생각을 엿보기 위해 지난 23일, 몇 가지 질문을 던져봤다.

"시간 좀 더 걸리지만 좀 더 세심하게... 어려움 없어요"

공무원인 남편과 114전화 안내원으로 재택 근무 중인 부부는 가끔 집 근처의 커피숍을 찾아 여가시간을 보낸다.
 공무원인 남편과 114전화 안내원으로 재택 근무 중인 부부는 가끔 집 근처의 커피숍을 찾아 여가시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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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분이 언제 어떻게 만났고 첫 인상은 어땠는지?
권성환 : "아름다운 사람 시현씨를 만나게 된 것은 방송대학을 다니던 때입니다. 시험 때나 학우들 얼굴을 보게 되는데, 그때마다 서먹서먹한 학우들 사이를 종횡무진 헤집고 다니며 일일이 인사해 늘 분위기를 밝게 바꾸는 시현씨가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다가 김제의 한 동사무소에서 행정도우미로 일하던 때, 김제가 고향이던 시현씨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습니다.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마음을 나누다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고 시현씨에게 감히 프러포즈를 했습니다. 직업도 없던 저를 제 진심만을 믿고 받아준 시현씨가 전 지금도 고맙습니다." 

- 함께 가정생활을 하면서 닥치는 어려움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어떻게 극복하시는지?
권성환 : "장애를 가진 우리에게 건강한 분들이 자주 하는 질문입니다. 하지만 건강한 사람들보다 조금 시간이 더 걸리고 좀 더 세심하게 하면 우리에게 불가능한 일은 거의 없습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제가 못하는 일은, 목발을 사용하는 시현씨가 하면 되고요. 오히려 건강한 사람들보다 더 능률적일 때도 있습니다. 가령 무거운 물건을 멀리 옮겨야 할 때는 저의 바퀴 달린 휠체어로 더 빨리 옮길 수도 있습니다.

우리 부부는 남들보다 더 서로를 배려하게 되는데, 상대의 어려움을 먼저 살피고 사전에 해주다 보면 건강하신 분들이 생각하시는 그런 어려움은 전혀 없습니다."

-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할 때와 공직자로 근무하는 지금, 남편이 달라진 점이 있는지?
강시현 : "수험생일 때는 일상 생활이 재택근무를 하는 제 위주로 이루어졌는데 지금은 재택 근무를 하는 제가 상대적으로 시간 사용이 자유로워 남편을 먼저 배려해야 합니다. 남편이 집 근처의 동사무소에 근무해서 점심식사를 집에서 함께 할 때가 많은데요. 시간이 빠듯하니 준비나 설거지 등은 틈틈이 제가 해야 하지요. 아시다시피 복지직 공무원이 업무량이 많아서 임용 초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책임감 있게 인내하며 적응해내는 모습이 참으로 미더웠습니다."

민원인으로 가끔 찾던 동사무소에서 복지공무원으로 일하며 민원인을 대하는 권성환씨
 민원인으로 가끔 찾던 동사무소에서 복지공무원으로 일하며 민원인을 대하는 권성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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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은 나이에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게 된 계기는?
권성환 : "중증 장애가 있으면서도 늘 밝게 생활하면서 머무는 곳마다 화사하게 바꾸는 시현씨에게 어울리는 남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어려운 형편으로 포기해야 했던 공부에 대한 미련과 한, 행정 도우미 생활을 하며 살짝 맛본 공직자로서의 봉사에 대한 기쁨 모두를 충족시키고 싶었습니다. 당시의 저로선 어렵고 무서운 선택이었지만 공무원 시험 도전은 필연이었습니다."

- 두 분이 각자 장애가 있으면서도 각자 일을 하며 맞벌이를 하고 계셔서,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많은 장애인들이 크게 부러워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들에게 조언을 하신다면?
권성환 : "행정 도우미 생활을 하던 제게 함께 근무하던 공무원들은 대단한 사람들로 여겨젔고 나이 든 장애자인 제가 그들처럼 공무원이 된다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던 제가 장애를 가지고도 노동부장관 표창(2008년 2월)을 받는 등 건강한 사람보다 더 건실하게 생활하는 시현씨를 보면서, 장애라는 이름 위에 안주했던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되고자 한다면 절실하게 추구하고 노력하시면 누구든,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 생각합니다." 

부족함을 인정하고 완전한 가정을 이룬 이 부부는 온전한 가장이 되려는 나의 롤모델이다. 나는 중도에 장애를 입은 장애인 가족이 해체되는 것을 수도 없이 보면서 나도 언제든지 그들처럼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들었을 때, 이 부부를 만났다.

그런 내 눈에 비친 이들은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모습이었고 늘 한결같았다. 그래서 나도 내가 목표한 대로 건강한 사회인으로 복귀하면, 사랑하는 아내와 초등학교 6학년이 되도록 아빠 노릇 변변히 못해서 늘 미안한, 소중한 딸에게 이들처럼 배려해야 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해 주었다.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2013년 권성환씨의 뒤를 이어 2014년 필자도 전주시 9급 일반 행정직에 합격해서 임용을 기다리고 있다.


태그:#서치식, #권성환, #강시현, #공무원, #114안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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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병변2급 장애를 가진 전주시 공무원으로 하프마라톤 완주를 재활의 목표로 만18년째 가열찬 재활 중. 이번 휠체어 사이클 국토종단애 이어 장애를 얻고 '무섭고 외로워'오마이뉴스에 연재하는 "휠체어에서 마라톤까지"시즌Ⅱ로 필자의 마라톤을 마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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