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신' 김성근 감독이 4년 만에 프로무대로 돌아온다. 한화 이글스는 25일 10대 감독으로 김성근 전 고양 원더스 감독을 선임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2011시즌 중 SK에서 경질된 뒤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의 사령탑을 맡기도 했던 김성근 감독은 7년 연속 4강 진출에 실패한 한화 이글스의 지휘봉을 맡아 새로운 도전에 나서게 됐다.

한화행, 김성근에게도 커다란 도전

김성근 감독의 복귀는 야구계에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다. 무엇보다 그의 복귀에 '팬심'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한화는 당초 김성근 감독 외에도 내부 코치 승격이나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감독의 영입도 적극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화 팬들이 온-오프라인을 통하여 적극적으로 김성근 감독의 영입을 주장하며 행동에 나선 것이 큰 화제를 모았다. 물론 반드시 그것 때문에 김성근 감독이 선임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프로구단의 감독 선임이 여론과 팬심에 반응하여 이루어졌다는 것만으로도 국내 야구계에서는 보기 드문 사건이 아닐수 없다. 

김성근 감독이 지휘봉을 잡게 된 팀이 바로 꼴찌 한화라는 점도 흥미롭다. 김성근 감독은 비교적 전력이 떨어지는 팀을 맡아 강팀으로 조련시키는 능력이 탁월한 지도자로 알려져 있다. 1990년대 만년 꼴찌 쌍방울을 맡아 지옥 훈련으로 플레이오프 경쟁팀으로 끌어올렸고, 2002년에는 역대 최약체 전력의 LG을 한국시리즈 준우승으로 이끄는가 하면, SK에서는 한국시리즈 3회 우승, 1회 준우승의 신흥 왕조를 구축했다.

한화는 최근 7년간 5-8-8-6-8-9-9위의 성적표를 기록했다. 최하위만 다섯 번이다. 김인식, 한대화, 김응용 등 세 명의 감독들이 '꼴찌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불명예스럽게 물러났다. 타고투저였던 지난 시즌에는 프로야구 역대 최다자책점(6.35) 신기록이라는 굴욕을 추가하기도 했다.

한정된 선수층과 유망주들의 더딘 성장 속에 천하의 김성근 감독이라도 단기간에 한화를 재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신임 감독에게는 말 그대로 최악의 조건인 셈이지만, 역설적으로 그래서 한화 팬들이 '리빌딩과 훈련의 귀재' 김성근 감독의 영입을 간절히 바란 이유이기도 하다.

한화행은 김성근 감독에게도 커다란 도전이다. 김성근 감독이 한화의 구세주가 되어줄 것이라는 팬들의 기대는 어느 때보다 높다. 이전 감독들의 실패와 더불어 김성근 감독은 사실상 한화 구단과 팬들이 의지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나 마찬가지다. 기존의 팀 색깔이 뚜렷하고 고유의 팬 문화가 강한 한화를 개조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을 수 있다.

만일 성공한다면 김성근 감독은 그야말로 전설의 반열에 오르게 되겠지만, 자칫 잘못되면 전임 김응용 감독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 현역 최고령 감독으로서 70대 중반이라는 고령을 감안할 때 한화가 김성근 감독의 마지막 커리어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성근 스타일'이 야구계 트렌드와 마주쳤을 때

'김성근 스타일'이 기존 야구계 트렌드와 마주쳤을 때 어떤 파급력이 나올지도 주목할 만하다. 프런트와 시스템 위주의 야구가 대세를 이루는 최근의 분위기 속에서 김성근 감독은 여전히 철저하게 '현장과 감독 중심'의 야구를 지향하는 '올드보이'다. 감독이라는 리더가 책임지고 팀의 전권을 장악하면, 선수는 리더가 제시하는 방향에 따라 움직이며, 프런트는 뒤에서 지원만 해주면 된다는 것이 김성근 감독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역할분담이다. 시대에 역행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김성근 감독이 평생 자신이 지켜온 야구철학을 포기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그동안 김성근 감독을 원했던 팀들은 대부분 성적에 대한 절박함이 강한 구단들이었다. 실제로 김성근 감독은 거의 대부분 '결과'로서 기대에 부응했다. 기존 색깔이 강한 구단들의 경우, 팀 운영 방향을 놓고 이러한 김성근 스타일과 마찰을 빚은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한화는 지금 당장 어쨌든 성적이 절실한 상황이다. 팬들의 김성근 감독에 대한 지지도 탄탄하다. 당분간 김성근 감독이 자신의 의지대로 팀을 끌어나갈 수 있는 조건은 충분히 갖춰진 셈이다.

최근 프로야구는 극심한 타고투저 현상과 함께 수비와 기본기, 투수력 등에서 하향평준화되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성근 감독은 선수육성과 관리에 대한 노하우가 빼어나고 철저한 팀플레이 위주의 스몰볼을 추구하는 지도자다. 승리를 위하여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집요함, 치밀한 계획, 시나리오대로 운영되는 현미경 야구는 김성근의 트레이드마크다. 한동안 핸드볼 스코어가 난무하던 프로야구에 김성근 야구만의 차별화된 매력이 희소성을 가져다줄 수 있다.

김성근 감독과 다양한 인연(혹은 악연)으로 얽혀있는 팀들과의 라이벌 구도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벌써부터 김성근 감독이 과거 몸담았던 SK와 한화의 다음 시즌 대결은 최대의 빅매치를 예고하고 있다. 김성근 감독과 악연을 형성했던 이만수 감독이 올 시즌을 끝으로 사퇴하면서 감독 대결이 불발된 게 아쉽지만, 여전히 SK에는 김성근 감독이 키워놓은 애제자들과 야구스타일의 흔적이 남아있다.

김성근 감독의 옛 제자들이자 과거 한국시리즈에서 맞대결을 펼쳤던 김경문 NC 감독(전 두산), 조범현 KT 감독(전 KIA)은 세 사람 모두 각각 소속팀을 바꾸어 재회하게 되었다는 것도 흥미롭다. 현재 프로야구 최강팀으로 꼽히는 삼성은 지난 2010년 김성근 감독이 이끌던 SK에게 덜미를 잡혀 한국시리즈 스윕을 당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김성근 감독의 한화가 삼성의 독주를 저지하는 대항마가 될 수 있을지도 기대를 모은다.

물론 김성근 감독의 귀환을 곱지 않은 시각으로 보는 이들도 존재한다. 사실 김성근 감독은 전성기에도 지도스타일과 야구철학을 놓고 극과 극의 호불호가 갈렸던 인물이다. 김 감독의 독선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야구관에 불쾌함을 느꼈던 팬들도 적지 않다.

선수혹사, 군대식 훈련, 비매너 플레이 논란, 상대에 대한 존중부족, 지나친 언론플레이와 독설 등은 성적이 좋았던 시절에도 김성근 감독을 두고 구설수가 끊이지 않았던 대목이다.  한화에서도 김 감독은 "리더는 오직 결과로서 말한다"는 입장이고, 승리를 위하여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김성근의 집요한 야구는 과정상의 찬반양론을 불러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성근 감독의 귀환은 충분히 환영받을 만할 가치가 있다. 김성근 스타일에 대한 많은 논란은 결국 '다양성'의 문제로 귀결된다.

김성근 감독의 야구는 그 자체로 절대적인 정답도 오답도 아닌 하나의 방식으로 존중받으면 그뿐이다. 김성근의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승리에 향한 치열함과 집요함에 매력을 느끼고, 싫어하는 사람은 그런 김성근 야구를 제압하고 극복하는 데서 쾌감을 느낀다. 많은 구단들이 김성근식 지옥 훈련과 스몰볼에 거부감을 표시하면서도 그의 야구가 성공을 거듭하면서 그런 방식을 점점 닮아가는 경향도 나타났다.

김성근 감독이 야구인으로서 쌓아온 오랜 경험과 노하우는 그만큼 정체된 최근의 프로야구에 새로운 논쟁적 화두를 제공해줄 수 있는 요소다. 김성근 감독처럼 70대 중반의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감독생활을 이어갈 수 있고, 많은 팬들과 구단의 러브콜을 받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후배 야구인들에게 지도자로서, 스포츠인으로서 하나의 본보기가 될 수 있다. 다음 시즌부터 등장하게 될 수많은 이야깃거리와 논란까지도 반가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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