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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진행형 이야기다. 경기도 부천에 거주하는 나는 전세 만기를 두 달 정도 앞두고 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집주인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내 머리 속에는 다양한 생각들이 지나간다. 그리고 그 생각들은 결코 유쾌하지 않은 것들이다. 2014년 10월, 내가 왜 이런 고민들을 해야 하는가.

수도권 전세가 급등 현상을 보도한 10월 22일자 <KBS 9뉴스>
▲ 두 달 사이 7천만원 급등? 수도권 전세가 급등 현상을 보도한 10월 22일자 <KBS 9뉴스>
ⓒ KBS화면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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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가을, 최경환 경제팀이 사상 최저금리 정책을 펴면서 이미 예견된 것이기도 하지만 전세 시장은 통제 불가 영역으로 진입했다. 조만간 경제팀에서 전세시장 대책을 내놓을 것이라는 뉴스를 보았다. 가을 전세시장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내놓는 대책이 과연 대책일까.

'미친 전세'라는 몇몇 언론보도를 본 뒤 재계약을 앞둔 나 역시 불편한 마음에 시세를 알아보기로 했다. 2주 전 부동산 중개업소에 최근 전세가 시세를 문의했다. 2년 전 2억 초반에 거래되던 아파트가 지금은 2억 7천~8천 만원에 거래되고 있다고 한다. 그것도 전세 물량이 씨가 말랐다는 설명과 함께.

불과 2년 새 30% 이상 폭등한 것이다. 이 아파트만 그러한가. 더 알아보았다. 바로 옆 A아파트는 2년 전 1억 8천만원 하던 전세가 지금은 2억 5천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부동산 중개업자는 "A아파트는 어제 2억 5천만원에 거래됐다"고 친절히 알려줬다. 전세가 40% 폭등!

"전세 어떻게 하실 건가요?"... 집주인의 침묵

서울 소재의 한 부동산. 지나가는 시민이 부동산 앞에서 전세·매매 현황을 보고 있다(자료사진).
 서울 소재의 한 부동산. 지나가는 시민이 부동산 앞에서 전세·매매 현황을 보고 있다(자료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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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람과 머리를 맞댔다. 6천만원 내외를 올려줘야 하는데 2년 동안에 모은 돈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이곳에서 계속 거주하려면 결국 가계부채를 늘려야 했다. 이제 은행으로 가야 할 시간인 것이다. 급증하는 가계대출에 일원으로 등록하기 직전, 나는 집주인의 의사를 명확히 확인하고 싶었다.

이사를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더 외곽으로 옮겨서 대출을 받지 않고 살 생각도 했다. 출퇴근에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내가 고생스러운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지금 다니는 유치원에서 너무 행복해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걸렸다. 그것만은 내년에도, 후년에도 계속 지켜주고 싶었다. 경기도 부천의 한 평범한 유치원에 계속 다니게 해주고 싶은 마음, 내 마지막 자존심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요새 전세가가 많이 올랐다고 하던데요. 어떻게 하실지 궁금해서요"
"… (긴 침묵)"
"어떻게 하실지 알려주셔야 계속 살지, 아니면 이사를 할지 결정하죠"
"… 2주만 시간 주시면 그 때 연락을 드릴게요"
"2주요? 왜 2주의 시간이 필요하시죠? 그냥 얘기해주시면 되잖아요"
"걱정은 마세요. 시세대로 할 거니까요. 시세대로요"

먼저 전화를 건 것은 현 시세를 확인했고, 오랜 고민 끝에 올려주고 살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초저금리로 인해 최근 반전세로 돌리는 집들이 많다는 얘기까지 확인했고, 반전세 시세까지 확인했다. 나름 수 많은 경우의 수를 확인하고 전화를 걸었다. 길게 끌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집주인의 반응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긴 침묵 후에 나온 '시세대로 할 거다'는 말에는 '더 이상 묻지 말아달라'는 강력한 의지도 엿보였다. 왜 집주인은 답을 주지 못했나. 왜 시간을 더 달라고 하는 것인가. 통화를 하면서 보여준 그의 침묵은 '너는 세입자다'는 사실을 명확히 일깨워줬다.

그 전에도 전세가는 상승했다. 이번에도 상승할 것으로 예상은 했다. 한국의 전세 제도는 다른 나라의 Rent 제도와 비교할 때 독특하다. 과거 높은 금리와 주택 매매가 상승이 전제될 때 원활히 기능했던 제도였다. 이제 금리는 역사상 최저치로 폭락했고, 주택 매매가도 상승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바로 옆에 위치한 A아파트 단지에 거주하는 전세 세입자들은 2년 사이에 7천만원을 올려줘야 같은 집에 계속 거주할 수 있다. 우리 아파트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올려주면 될 것을'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 올려주기로 한 결정에는 큰 고심과 향후 이자비용에 대한 지출도 고려한 것이었지만 세상은, 아니 정확히 말하면 박근혜 정부 2년차 전세시장은 말 그대로 난장으로 진입한 느낌이다.

6천만원 올려 받을 집주인, 그는 과연 행복할까?

박근혜 후보 당시 주택종합대책을 보도한 <조선일보> 2012년 9월 24일자 3면
▲ "그 때 공약은 어디로 가고" 박근혜 후보 당시 주택종합대책을 보도한 <조선일보> 2012년 9월 24일자 3면
ⓒ 조선일보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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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보여주는 침묵은 이해하기 힘들다. 대통령 후보였던 지난 2012년 9월 23일 당시 박 후보는 '집 걱정 덜기 정책'을 발표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전세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새로운 개념의 전세제도'를 대선공약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즉, 전세가 급등에 따른 세입자들의 불안을 제거하는 공약을 발표한 것이다.

그런데 현재 전세 시장은 초토화 상태다. 2년 새 30%가 올랐는데, 그 오름의 상태가 '현재 진행형'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역대 어느 정부에서 이토록 전월세 시장이 혼란스러웠던 적이 또 있었던가. 그런데 정부는 사안의 심각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 사안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지난 주 <KBS 9시뉴스>는 톱뉴스로 '잔인한 전세값'을 집중보도했다. 전세난이 심화돼서 세입자들이 불안해 한다는 내용이다. 내 얘기다. KBS에 보도된 목동 아파트 상황은 상상을 초월한다. 매매가 6억원짜리 아파트인데 전세가가 5억 5천만원이라고 한다. 그 전세가는 최근 두 달 사이에 7천만원이 올랐다고 한다. 이 추세대로라면 다음에 나올 뉴스는 매매가를 추월한 전세가인가?

박근혜 대통령. 사진은 지난 2012년 9월 23일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집 걱정 덜기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는 모습.
 박근혜 대통령. 사진은 지난 2012년 9월 23일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집 걱정 덜기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는 모습.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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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후면 집주인으로부터 전화가 올 것이다. 그의 말대로 그가 '시세'대로 전세가를 올린다고 한다면 2년 전 대비 6천만원 가량을 인상해줘야 한다. 나는 일정 금액을 대출받아야 한다. 내년에는 계획에도 없었던 이자비용을 추가로 납부해야 한다. 그 결과 아이들은 다니던 유치원에 계속 다닐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결과 집주인에게는 목돈이 생길 것이다. 그의 목돈은 생긴 후 2년이 지나 나에게 돌려줘야 하는 보증금(Deposit)이다. 그는 그 돈으로 행복할까?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나, 재무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입장에서 보면 목돈이 입금되는 순간 그의 고민이 시작될 것이다.

예금금리는 2%로 폭락했다. 물가상승률보다 낮은 금리를 기대하며 은행에 예금하지는 않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동성 장세가 끝나가는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것은 더더욱 주저할 것이다.

이제 됐다. 이 시점에서 집주인에게 갈 그의 목돈 걱정은 그만하자. 나는 세입자일 뿐이니까.


태그:#전세난,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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