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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담양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을 찾은 여행객들이 셀카봉을 이용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25일 담양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을 찾은 여행객들이 셀카봉을 이용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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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또 담양으로 갔다. 담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언제라도 가볍다. 혼자 가도 부담이 없다. 둘이나 셋이 함께 가도 좋다. 그저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흡족한 여정이다. 늘 마음의 위안을 받고 오기 때문이다.

언제나 나무는 그 자리 그대로

이날은 조금 다른 여정이었다. '담양 수목길 위에 인문학 탐방'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담양군이 문화관광부의 '이야기가 있는 생태탐방로 공모사업'에 선정돼 추진한 프로그램이었다. 나무를 주제로 글을 쓰고 있는 나무칼럼리스트 고규홍(55, 인하대 겸임교수)씨가 함께했다. 프로그램 참여자 40여 명이 동행했다.

걷는 길은 관방제림에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까지다. 관방제림은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담양천에 제방을 만들고 나무를 심은 숲이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은 나무가 하늘로 쭉쭉 뻗은 모습이 매력적인 길이다. 여러 말이 필요 없을 만큼 전국적으로도 소문난 숲길과 가로수 길이다.

담양 관방제림 숲길. 25일 관방제림을 찾은 여행객들이 숲길을 따라 걸으며 가을 한낮을 즐기고 있다.
 담양 관방제림 숲길. 25일 관방제림을 찾은 여행객들이 숲길을 따라 걸으며 가을 한낮을 즐기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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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고향을 떠올리며 그림을 그린다고 합시다. 가장 먼저 그리는 대상이 무엇일까요? 십중팔구는 마을의 뒷산과 나무를 그립니다. 그리고 집을 그려 넣습니다.

또 하나, 세월이 많이 흘러 고향이 바뀌었지요? 동무들도 사라지고, 드넓은 들녘도 변했습니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게 있는데요, 바로 나무입니다. 모든 것이 바뀌어도 나무는 그대로 있습니다."

고규홍 나무칼럼리스트의 말이다. 나무는 사람보다 더 긴 생명력으로 우리의 사람 살이를 다 기억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평소 의식하지 않고 살았지만, 순간 공감이 됐다.

생각해 보니 내 고향의 모든 것을 지켜준 것도 나무였다. 학교에 가면 느티나무가 반겨줬다. 학교에서 집으로 갈 때도 그 나무가 배웅해줬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살갑게 맞아주는 게 그 나무다. 

삶의 무늬 새겨진 나무들

'담양수목길 위에 인문학 탐방' 두 번째 프로그램이 25일 담양 관방제림에서 열렸다. 탐방 참가자들이 숲길에서 고규홍 나무칼럼리스트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담양수목길 위에 인문학 탐방' 두 번째 프로그램이 25일 담양 관방제림에서 열렸다. 탐방 참가자들이 숲길에서 고규홍 나무칼럼리스트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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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그냥 나무가 아닙니다. 나무에는 우리 삶의 무늬가 다 들어있어요. 오래된 나무일수록 옛사람의 흔적이 새겨져 있고요. 사람보다 먼저 이 땅에 자리 잡은 게 나무이고요.

사람보다 더 오래 살림살이를 지켜준 버팀목이 나무입니다. 단순히 그늘만 제공해준 게 아니라 우리 삶의 지주 역할을 해왔어요."

나무를 주제로 칼럼이나 에세이를 쓰고 있는 고규홍 나무칼럼리스트. 고 씨가 25일 열린 '담양수목길 위에 인문학 탐방' 프로그램 참가자들에게 흥미진진한 나무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나무를 주제로 칼럼이나 에세이를 쓰고 있는 고규홍 나무칼럼리스트. 고 씨가 25일 열린 '담양수목길 위에 인문학 탐방' 프로그램 참가자들에게 흥미진진한 나무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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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교수의 나무 이야기에 귀가 절로 쫑긋해진다. 숲길을 걷는 내내 고 교수 옆을 바짝 따르게 만들었다. 그의 나무 이야기가 흥미진진했다. 그는 숲길을 걷다가 중간중간 멈춰서 나무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를 이어갔다.

"농경사회에서 나무는 귀중한 역할을 했습니다. 하늘이 주는 만큼만 먹는 시대였잖아요. 모든 소원도 하늘에 빌고요. 그런데 하늘이 너무 멀어요. 그래서 하늘과 가까운 나무를 찾은 겁니다. 나무를 매개로 하늘에 소원을 전달하는 거죠. 나무는 이렇게 하늘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해왔습니다."

당산나무가 그 매개체였다는 게 고 교수의 설명이었다. 대신 듣고 전달해주는 위탁자였다고. 고 교수의 나무 이야기는 계속됐다. 그는 옛사람들이 아들을 낳으면 심은 소나무와 딸의 시집 밑천으로 삼기 위해 심은 오동나무, 정치적인 좌절을 딛고 다시 피어날 것을 기대하며 심은 동백나무 이야기도 짧게 들려주었다.

담양 관방제림의 가을날 오후. 관방제림을 찾은 여행객들이 숲길에 놓인 나무의자에 앉아 쉬고 있다.
 담양 관방제림의 가을날 오후. 관방제림을 찾은 여행객들이 숲길에 놓인 나무의자에 앉아 쉬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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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열린 '담양수목길 위에 인문학 탐방'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관방제림 숲길을 걷고 있다.
 25일 열린 '담양수목길 위에 인문학 탐방'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관방제림 숲길을 걷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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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숲길, 힐링 그 자체

경남 남해의 어부림은 바람을 막아 바닷가를 따뜻하게 해서 물고기를 모아들이려는 의도로 나무를 심은 숲이라고 했다. 담양의 관방제림은 강물의 범람을 막아 농사를 편하게 짓기 위한 실용적인 의미로 심었다고 했다. 

고 교수의 나무 이야기를 들으며 숲길을 계속 걸었다. 고목으로 서 있는 느티나무나 푸조나무, 팽나무 한 그루 한 그루에서 세월의 무게가 절로 느껴진다. 우리의 살림살이를 다 기억하고 보듬느라 마디 굵어진 나뭇가지 하나까지도 달리 보인다. '나무는 그냥 나무가 아니'라는 고 교수의 말이 뇌리에서 맴돈다.

가을날 주말의 관방제림 풍경. 25일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이 천변 숲길을 따라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있다.
 가을날 주말의 관방제림 풍경. 25일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이 천변 숲길을 따라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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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날 주말 오후의 관방제림 풍경. 연인들끼리 천변을 따라 자전거를 타거나 나무의자에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다.
 가을날 주말 오후의 관방제림 풍경. 연인들끼리 천변을 따라 자전거를 타거나 나무의자에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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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끝에서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소리도 귓전을 즐겁게 해준다. 재미난 이야기를 들으며 걷는 숲길에서 마음도 넉넉해진다. 몸도 마음도 호사를 누리는 가을날 한낮이다. 언제라도 좋은 관방제림 숲길과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이다.

관방천과 관방제림의 가을 풍경. '담양수목길 위에 인문학 탐방' 프로그램이 열린 25일 오후 모습이다.
 관방천과 관방제림의 가을 풍경. '담양수목길 위에 인문학 탐방' 프로그램이 열린 25일 오후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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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담양수목길 위에 인문학 탐방’은 지난 9월26일 시작됐다. 문순태 소설가와 함께 걸었다. 고규홍 나무칼럼리스트와의 탐방은 두 번째로 마련됐다. 세 번째 탐방은 오는 11월 8일에는 나희덕 시인과 함께 걷는다.



태그:#관방제림, #고규홍, #담양수목길, #메타세쿼이아가로수길, #인문학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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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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