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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인천 서구 녹청자 박물관을 방문했다. 2층 체험전시실에선 물레를 돌려 도자기를 빚는 이들의 진지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기자도 이한상(47) 학예연구실장의 안내로 물레질을 해 접시 하나를 만들어봤다.

녹청자 도요지, 골프장에 더 있을 수도

정규과정 교육프로그램 실습중인 수강생들.
 정규과정 교육프로그램 실습중인 수강생들.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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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서구 경서동 녹청자 도요지(도기를 굽던 가마터)는 1970년 6월 국가사적 211호로 지정됐다.

"1965년 처음 발굴을 시작했어요. 서구 경서동 일대에서 도자기 조각들이 발견돼, 그 당시 인천시 주관으로 국립중앙박물관과 인천시립박물관이 공동 발굴을 시작했죠."

네 차례에 걸쳐 발굴했는데 발굴된 가마터는 고려시대에 여러 번 증·개축한 흔적이 나타났다. 심층발굴이 요구됐지만, 발굴된 가마 뒤편에 바로 도로가 나 있어 발굴지역을 확대하지 못했다. 도요지가 국가사적으로 지정받기 몇 개월 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수도권에 골프장을 만들어 외국 바이어들을 접대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문화재가 묻혀 있을 가능성이 농후한 지역이 골프장으로 만들어졌다. 1970년 부평 시-사이드(C-side) 컨트리클럽으로 개장한 골프장은 1985년 인천국제컨트리클럽으로 개명했다.

"이곳이 예전엔 갯벌이었고, 가마터는 바다에 가까운 능선에 위치했어요. 가마가 초기에는 경사면을 이용하지 못하고 구멍을 파서 기물을 넣고 장작으로 덮어서 불을 때다 보니 높은 온도까지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발견된 이 가마터는 경사가 20도 정도 되는데 그 경사를 이용해 열이 위로 올라가니까 효율적으로 높은 온도를 활용해 구울 수 있었죠. 이 가마는 도자기의 경사진 도침을 사용해 수평을 맞추는 구조로 돼 있는 고려시대 대표적 '토축요'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반지하식으로 능선에 구덩이를 길게 파 아치 부분만 쌓아올렸어요. 지면을 팠으니까 단열이 더 잘 됐죠."

이 실장의 설명을 들으니, 선인들의 지혜에 새삼 위대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럴수록 발굴을 더 진행하지 못한 아쉬움이 내내 남았다.

서민들의 도자기, 녹청자

1965년 발굴 당시 전문가들은 녹청자를 청자의 전 단계로 인식했다. 1980년대에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면서 12세기 정도에 사용한 녹청자로 보기 시작했다.

"고려청자라고 하면 일반인들이 주로 알고 있는 비색 청자를 얘기하는데 왕실이나 고위관료들이 주로 사용했죠. 녹청자의 수요층은 지방 관아나 작은 사찰 등, 주로 평민층입니다."

수요 계층만의 차이가 아닌 도자기의 성질도 많이 다르다. 주재료인 흙도, 청자는 정제된 반면 녹청자는 정제 과정을 생략하다 보니 이물질들이 들어가기도 한다. 유약의 색깔도 다르다. 청자는 옥색과 녹색에 가깝다면, 녹청자는 갈색에 가깝고 색채도 훨씬 다양하다.

"도자기 겉면을 보면 거친 흙이 섞여 있어 녹청자를 조질청자라고 부르기도 했어요. 어감이 좋진 않죠. 초기 청자로 분류했다가 아닌 걸로 의견이 모아지자, 주목을 받지 못한 안타까움이 있죠. 특이한 건 조선시대가 되면서 청자는 분청과 백자로 바뀌는데, 녹청자는 조선시대까지 계속 존재했다는 거예요."

흡사 서민들의 모습을 닮은 녹청자는 생명력뿐만 아니라 투박하고 거친 맛이 오히려 흙의 성질을 잘 살려 미학적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이곳에서 제작됐다고 추측할 만한 것들이 경기도 일산이나 용인 지역의 묘에서 부장품으로 나왔어요. 경기도 일대에서는 여기서 만든 걸 쓰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체험을 위주로 한 박물관

물레를 이용해 도자기를 만들고 있는 수강생들.
 물레를 이용해 도자기를 만들고 있는 수강생들.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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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청자 박물관은 2002년에 개관했다. 인천에서 문화유산이 잘 보존되고 있는 강화와는 달리 서구 지역에는 문화재가 거의 없다. 서구는 지역민들에게 좋은 녹청자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박물관을 '경직된 곳'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친숙한 공간으로 만들고자 애썼다.

"옛 경서동사무소를 리모델링해 개관하다보니 관람객이 늘어나면서 어려움을 느꼈어요. 처음엔 사료관으로 출발했어요. 1층은 전시실, 2층은 체험실로 운영했는데 체험하러 오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2010년에 지금의 박물관을 신축해 재개관했습니다."

지금의 녹청자 박물관 1층에는 역사전시실과 기획전시실이 있다. 2층은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 강의실이 있다.

"우리 박물관의 특징은 체험학습을 위주로 한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는 점입니다. 도자기를 전공하신 선생님들이 상시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전국적으로도 이런 박물관이 많지 않아요."

상설 교육프로그램은 크게 두 가지다. 성인 대상 도예 정규과정을 월 단위로 운영하는데, 주중 평일 낮시간대에 수업한다. 다른 하나는 하루 체험학습. 주중에는 학생들이 단체로, 주말에는 가족 단위로 참가한다. 방학에는 학생 50명을 모집해 3일간 물레 성형을 하고 유약을 발라 가마에 넣어 굽는 특강을 한다.

기자가 방문한 날에도 수강생들이 창작에 몰두하고 있었다. 수강을 문의하러 온 방문객은 '대기자가 많다'는 대답을 듣고 돌아가야만 했다. 수강생 작품 전시회를 1년에 한 번 열기도 하는데, 도록을 보니 실력이 뛰어난 것 같았다.

"3년 이상 계속 수강하는 사람이 많아요. 꾸준히 배운 사람들은 전문 도예가의 실력에 버금가기도 하고요. 작품들을 집에서 사용하거나 지인들에게 선물로 주기도 합니다."

수강생들은 '이곳에 와서 작업하면 모든 걸 잊고 몰입할 수 있어 좋다'고 한다. 전공자는 거의 없지만 꾸준하게 만들어 개성 있는 작품으로 개인전을 여는 수강생도 있고, 공모전에서 입선하는 이도 있다.

이 실장은 예술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도예에 관심을 가졌고, 대학도 도예과에 입학했다. 그에게 도자기의 매력을 물었다.

"30년 넘게 도자기를 만들어왔는데, 지금도 어려워요. 도자기는 서툴게 만들어도 그 나름의 흙의 질감이 느껴지는 아름다움이 있어요. 자신의 노동으로 흙을 빚고 모양을 만들어 완성품이 나오잖아요. 노동의 결과로 작품 하나가 나오는 거니까 그 의미가 크죠. 도자기를 '흙과 불의 예술'이라고 해요. 거기에 수분이 엄청난 영향을 줍니다. 왜냐면, 도자기를 만들려면 수분이 있는 점토를 사용하는데 수분이 증발하면서 부피가 줄어 깨지기도 하거든요. 조건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어 예상과 다른 결과물이 도출되기도 하는데, 그게 매력일 수도 있고요."

우리 찻그릇에 담긴 여유(餘裕)

이한상 학예연구실장.
 이한상 학예연구실장.
ⓒ 김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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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청자 박물관은 인천아시안게임을 기념해 '우리 찻 그릇에 담긴 餘裕(여유)'라는 기획전(2014.9.17.~11.16.)을 열고 있다.

"차(茶) 문화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많은 나라에서 발달했어요. 마시는 방법도 다양해, 발효시키거나 분말로 마시기도 하고, 잎을 우려마시기도 하잖아요. 아시안게임 기간에 인천을 찾은 선수나 관광객에게 보여주면 흥미롭지 않을까, 하는 고민에서 기획했습니다."

우리나라 청자는 차 문화가 발달하면서 덩달아 발달했다. 장식기법의 하나인 상감기법의 청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깔을 내는 건 고려청자다'라고 중국인들이 감탄할 정도의 높은 수준을 뽐낸다.

"운학(雲鶴: 구름과 학) 무늬의 찻잔이 있는데요, 고려시대 사람들은 그 무늬를 좋아해 맑은 차를 마시면서 '찻잔이 하늘을 담고 있어 하늘을 마셨다'고 표현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고진영 학예연구사의 설명이다.

서구는 인천아시안게임이 열리는 기간에 경기장과 녹청자박물관 등을 오가는 셔틀버스를 운행했다. 이 덕분에 많을 때는 하루에 관광객 200~300명이 녹청자 박물관을 찾기도 했다. 연간 이용객 평균 3만 7000여 명에 견주면, 인천아시안게임 기간에 상대적으로 많이 방문한 것이다.

지역 도예가들에게도 좋은 공간으로 활용되기 위해 녹청자 박물관은 내년 사업으로 두 가지를 준비하고 있다. 하나는 국립중앙박물관과 협의해 출토 유물들을 확보하는 것이다.

"우리 박물관은 출토 유물이 20여점밖에 안 돼요. 1965년에 발굴이 끝난 후 출토 유물 50 상자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가져가 보관하고 있어요. 출토 유물을 영구 임차해 전시하는 게 가장 큰 목표입니다."

다른 하나는 지역 도예가들을 지원하는 것이다. 녹청자 박물관에서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도예가들을 위해 매해 전시를 진행했다. 서구청과 협의해 기념품도 만들고, 판매용 도자기 카탈로그를 만들 때 도예가들의 작품을 싣기도 하는 등 다양하게 지원했다.

내년에는 인천에 있는 도예가들의 현황을 파악하고, 신진 작가를 발굴해 전시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녹청자 박물관이 도예가들에게 좋은 공간으로 활용됨과 동시에 작가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덧붙이는 글 | <시사인천>에 실림



태그:#녹청자 박물관, #경서동, #녹청자, #도요지, #이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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