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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도의 알루미늄 빨래 건조대는 치명적인 무기일까
▲ [YTN 방송화면캡처] 이정도의 알루미늄 빨래 건조대는 치명적인 무기일까
ⓒ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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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 뇌사 사건으로 집주인 최아무개씨가 징역 1년6개월을 선고 받으며,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도둑이 안타까운 것인지 정당방위의 적정한 사회적 통념이 적용되지 않고 있는 것인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사건은 지난 3월 8일 새벽 3시가 조금 넘은 시각 일어났다.

강원도 원주시의 한 주택가에서 집주인 아들인 최아무개씨(21)가 친구들과 어울리다 새벽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거실에서 서랍장을 뒤지던 도둑 김씨(55)를 발견한다. 최씨는 김씨의 얼굴을 주먹으로 수차례 때렸다. 김씨가 도망가려하자 최씨는 그의 뒤통수를 발로 여러 차례 찼다. 이후 주위에 있던 알루미늄 빨래 건조대와 허리에 차고 있던 벨트를 풀어 김씨의 등을 수차례 때렸다.

당시 최씨는 1층에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있었고 어머니도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해 도둑을 제압하고 직접 경찰에 신고를 했다. 김씨는 응급실에 후송됐고, 5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의식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

그 후, 김씨의 보호자 역할을 한 형은 병원비(당시 2000만 원 이상) 등에 책임을 느끼고 자살을 했고, 이로 인해 김 씨의 유족인 조카는 피고인의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 당시 최씨의 상황과 김씨의 상황을 종합해 판단하면 올바른 선고일까. 판결문의 주요내용을 살펴보자.

춘천지법 원주지원 박병민 판사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집단·흉기등상해) 혐의
[정당방위 여부 판단] 피고인이 술을 마시고 사건 당일 새벽 3시 무렵에 귀가하였는데, 불을 켠 상태에서 절취품을 물색 중인 피해자를 발견하고 피해자를 제압할 목적으로 피해자를 때려눕힌 사실, 당시 피해자는 흉기 등을 전혀 소지하지 않았고 피고인을 만나자 그냥 도망가려고만 했던 사실, 피고인은 피해자가 계속 피고인을 피해 도망가려고 하자 쓰러져 있던 피고인의 머리 부위를 발로 여러 차례 걷어차고, 주위에 있던 빨래 건조대로 등 부위를 가격하였으며, 허리띠를 풀어 피해자를 때린 사실, 이로 인해 피해자는 의식을 잃어 응급실에 후송되었고 그로부터 5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의식이 돌아오지 않고 있는 사실(앞으로도 의식이 돌아올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한다)이 인정된다.

피고인이 이와 같이 절도범인 피해자를 제압하기 위하여 피해자를 폭행하였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이 아무런 저항없이 도망만 가려고 했던 피해자의 머리 부위를 장시간 심하게 때려 사실상 식물인간 상태로 만든 행위는 절도범에 대한 방위행위로서의 한도를 넘어선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방위행위는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없는 것이므로, 자기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어하기 위한 행위로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라거나, 방위행위가 그 정도를 초과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

[양형의 이유] 피해자가 새벽에 피고인의 집에 침입하여 물건을 훔치려고 했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이 피해자를 체포하기 위한 과정에서 아무런 저항 없이 도망가려던 피해자의 머리 부위 등을 심하게 때려 피해자를 사실상 식물인간 상태로 만든 이 사건 범행에 대해서는 피해자가 절도범이라는 사정을 아무리 고려하더라도 그 비난가능성이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

나아가 피해자의 보호자 역할을 한 피해자의 형은 피해자의 병원비(당시 2,000만 원 이상) 등에 책임을 느끼고 이 사건 이후 자살을 하였고, 이로 인해 피해자의 유족인 조카 ***은 피고인의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면 피고인에게 실형을 선고함이 불가피하다.

결국 정당방위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유에는 '방위행위로서의 한도'와 '사회통념상 용인되는 것'이 주요하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적절한 선이 누구나 용인할 수 있는 수준에서 안착되어 있는 것일까? 잠시 정당방위에 대한 종합법률정보의 용어풀이를 살펴보자.

제21조 정당방위 (正當防衛)
①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② 방위행위가 그 정도를 초과한 때에는 정황에 의하여 그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
③ 전항의 경우에 그 행위가 야간 기타 불안스러운 상태 하에서 공포, 경악, 흥분 또는 당황으로 인한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행위가 필요한 정도를 넘으면 과잉방위(過剩防衛)가 되어 위법성을 조각하지 못하게 된다.

정당방위에 대한 풀이와 판결문의 사정을 고려했다는 부분을 종합하여 판단하면, 결국 최씨의 경우 방위행위가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 과잉방위가 되어 위법성을 조각하지 못하며, 당시 재판부는 형의 자살과 유족의 탄원까지도 고려했다고 사료된다.

그러면 또 다른 의문점이 생긴다. 과잉방위의 정도는 어느 수준일까? 피해자의 주변상황은 어느 정도 고려해야 할까? 이전에 있었던 판례를 통해 사회통념상 용인되는 수준을 알아보고자 한다.

대법원 2001. 5. 15. 선고 2001도1089 판결[상해치사]
【판시사항】
이혼소송중인 남편이 찾아와 가위로 폭행하고 변태적 성행위를 강요하는 데에 격분하여 처가 칼로 남편의 복부를 찔러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그 행위는 정당방위나 과잉방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사례

【판결요지】
이혼소송중인 남편이 찾아와 가위로 폭행하고 변태적 성행위를 강요하는 데에 격분하여 처가 칼로 남편의 복부를 찔러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그 행위는 방위행위로서의 한도를 넘어선 것으로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없다는 이유로 정당방위나 과잉방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사례.

【이유】
피고인과 변호인의 상고이유를 함께 본다.
기록에 의하면, 피고인은 피해자(1962년생)와 1987. 11. 21. 혼인하여 딸(1990년생)과 아들(1994년생)을 둔 사실, 피해자는 평소 노동에 종사하여 돈을 잘 벌지 못하면서도 낭비와 도박의 습벽이 있고, 사소한 이유로 평소 피고인에게 자주 폭행·협박을 하였으며, 변태적인 성행위를 강요하는 등의 사유로 결혼생활이 파탄되어 1999년 11월경부터 별거하기에 이르고, 2000. 1. 10.경 피고인이 서울가정법원에 이혼소송을 제기하여 그 소송 계속중이던 같은 해 4월 23일 10:40경 피해자가 피고인의 월세방으로 찾아온 사실, 문밖에 찾아온 사람이 피해자라는 것을 안 피고인은 피해자가 칼로 행패를 부릴 것을 염려하여 부엌에 있던 부엌칼 두 자루를 방의 침대 밑에 숨긴 사실, 피고인이 문을 열어 주어 방에 들어온 피해자는 피고인에게 이혼소송을 취하하고 재결합하자고 요구하였으나 피고인이 이를 거절하면서 밖으로 도망가려 하자, 피해자는 도망가는 피고인을 붙잡아 방안으로 데려온 후 부엌에 있던 가위를 가지고 와 피고인의 오른쪽 무릎 아래 부분을 긋고 피고인의 목에 겨누면서 이혼하면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고, 계속하여 피고인의 옷을 강제로 벗기고 자신도 옷을 벗은 다음 피고인에게 자신의 **를 빨게 하는 등의 행위를 하게 한 후, 침대에 누워 피고인에게 성교를 요구하였으나 피고인이 이에 응하지 않자 손바닥으로 뺨을 2-3회 때리고, 재차 피고인에게 침대 위로 올라와 성교할 것을 요구하며 "너 말을 듣지 않으면 죽여버린다."고 소리치면서 침대 위에서 상체를 일으키는 순간, 계속되는 피해자의 요구와 폭력에 격분한 피고인이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에서 침대 밑에 숨겨두었던 칼(증 제1호, 길이 34㎝, 칼날길이 21㎝) 한 자루를 꺼내 들고 피해자의 복부 명치 부분을 1회 힘껏 찔러 복부자창을 가하고, 이로 인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장간막 및 복대동맥 관통에 의한 실혈로 인하여 그 자리에서 사망에 이르게 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피고인이 이와 같이 피해자로부터 먼저 폭행ㆍ협박을 당하다가 이를 피하기 위하여 피해자를 칼로 찔렀다고 하더라도, 피해자의 폭행ㆍ협박의 정도에 비추어 피고인이 칼로 피해자를 찔러 즉사하게 한 행위는 피해자의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위행위로서의 한도를 넘어선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고, 따라서 이러한 방위행위는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없는 것이므로, 자기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어하기 위한 행위로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라거나, 방위행위가 그 정도를 초과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피고인의 이 사건 범행은 정당방위 또는 과잉방위에 해당하지 아니하므로, 항소를 제기하지 아니한 피고인의 정당방위 주장에 대하여 원심이 직권으로 판단하지 아니하였음을 탓하는 상고이유는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므로 상고를 기각하고, 상고 후의 구금일수 중 일부를 본형에 산입하기로 하여 관여 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이규홍(재판장) 송진훈(주심) 윤재식 손지열

이 판결에 따르면 피고인의 옷을 강제로 벗기는 등의 의 행위와, 또한 가위로 무릎 아래 부분을 긋고 목에 겨누는 행위 등은 방위행위로서의 한도를 넘어서는 사유가 될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또한 이런 행위에 저항하기 위해 숨겨두었던 칼로 찔러 대항하는 것은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없는 것이라 추측된다. 과연 이것이 정당하게 용인되는 수준의 통념일까? 비슷하지만 위와 다르게 정당방위에 해당하는 사례 또한 살펴보자.

대법원 1989.8.8. 선고 89도358 판결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강간치상,강제추행치상]
【판시사항】
강제추행범의 혀를 깨문 행위가 정당방위에 해당된다고 본 사례

【판결요지】
갑과 을이 공동으로 인적이 드문 심야에 혼자 귀가중인 병여에게 뒤에서 느닷없이 달려들어 양팔을 붙잡고 어두운 골목길로 끌고 들어가 담벽에 쓰러뜨린 후 갑이 음부를 만지며 반항하는 병여의 옆구리를 무릎으로 차고 억지로 키스를 함으로 병여가 정조와 신체를 지키려는 일념에서 엉겁결에 갑의 혀를 깨물어 설절단상을 입혔다면 병여의 범행은 자기의 신체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에서 벗어나려고 한 행위로서 그 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와 그 목적 및 수단, 행위자의 의사 등 제반사정에 비추어 위법성이 결여된 행위이다.
【이유】
(이하생략)

대법관   윤관(재판장) 김덕주 배만운 인우만

결국 건장한 남성 두 명이 공모 공동하여 피해자를 추행하려 한 것은 방위행위로서의 사유가 될 수 있으며, 또한 혀를 깨무는 행위는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상하다. 도리어 더욱 보수적인 판결이 최근에 이루어졌고(2001년 사례), 정당방위가 인정된 사례는 그보다 좀 더 과거(1989년 사례)에 이루어졌다.

사회통념상 용인되는 수준이라는 것은 더욱 좁아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넓어지는 것 아닌가? 마찬가지로 최씨와 김씨의 사례도 정당방위가 용인되지 않은 것은 사회통념이라는 것이 점점 더욱 좁아져가는 현상을 나타내는 증거가 될 수 있지 않나 싶다.

'도둑 뇌사' 사건의 경우, 누리꾼들 사이에선 피해자 도둑도 안됐다는 생각도 들지만 보호받을 법익을 보호받지 못할 법익이 침해했다는 의견 역시 지배적이다.

과연 우리 사회가 용인할 수 있는 정당방위의 통념을 적정한 선에서 공감하고 있는 것일까? 피고인이 피해자로 처지가 뒤바뀌는 것은 어디까지 고려해야 할까. 위의 판례에서 보았듯이 그 수준이 적정하지 않다면 지금 당장 공론화가 시급한 사항이라 생각된다.


태그:#도둑뇌사, #정당방위, #판결, #실형, #징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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