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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근리 학살터를 간 적이 있었다. 쌍굴 여기저기 남아있는 무수한 총탄의 흔적에 이유도 모르고 미군에 의해 몰살당한 이들의 피맺힌 눈물과 한이 아직도 어려 있는 것 같았다.

제주 4·3의 현장도 그렇지 않았을까. 많은 제주도 사람들이 '빨갱이'라는 낙인을 받고 무차별하게 학살당했다. 노근리 학살 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오랫동안 자신들의 이야기를 가슴에 묻어두고 살았다. 제주 4·3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역시 그날의 아픔을 가슴에 묻고 숨죽이며 살아왔다.

이 책, 제주 4·3의 상처를 고스란히 담았다

<노래하며 우는 새>(송재찬 지음 / 권정선 그림 / 우리교육 / 2006.02 / 7000원)
▲ 노래하며 우는 새 <노래하며 우는 새>(송재찬 지음 / 권정선 그림 / 우리교육 / 2006.02 / 7000원)
ⓒ 우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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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며 우는 새>는 제주 4·3의 상처를 고스란히 지닌 채 외할머니 손에 성장한 작가의 자전적 성장 소설이다. 작가는 자신은 원하지도 겪지도 심지어 보지도 못한 제주 4·3의 희생양이다. 아버지 사진조차 본 적 없이 외가에서 홀로 자랐다.

작가는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오래된 상처를 드러내 보이는 것은 4·3의 진실을 좀 더 정확하게 알고 싶고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4·3을 바르게 아는 것이야말로 작가 자신의 바른 정체성을 되찾는 길이고 역사를 제대로 들여다보는 일임을 서문을 통해 밝힌다.

이념과 상관없는 순박한 주민들이었다. 4·3 권력자들이 이들에게 이념의 굴레를 씌워 서로 죽고 죽이게 만든 참혹한 비극의 역사다.

주인공 송준용은 외삼촌과 이모들 그리고 외할머니의 손에 성장한다. 외가에서 부모 이야기를 하는 것은 금기였고 아버지는 사진조차 남아 있지 않다. 소년은 성장하면서 자신의 탄생이 제주 4·3의 비극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4·3 당시 넓은 집을 지니고 살던 외가는 뭍에서 온 경찰들의 임시 숙소로 사용됐다. 당시 일본에서 공부하다 돌아 온 어머니에게 한 눈에 반한 경찰이 있었다. 좌익 활동을 한 혐의로 목숨이 위험해진 외삼촌을 살려주는 조건으로 그는 어머니에게 결혼 승낙을 받아낸다. 4·3 사건이 마무리 되면서 소년의 아버지가 뭍으로 돌아가게 되자 외할머니는 손자와 딸을 뭍으로 보내지 않는다. 소년의 아버지는 아들만이라도 데려다 키우게 해달라고 애원하지만 외할머니는 그 청을 거절한다. 결국 소년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뭍에서 각각 재혼을 해서 살게 된다. 소년은 외할머니 손에 성장하게 된다.

외할머니는 소년의 아버지가 결혼을 하기 위해 외삼촌을 좌익으로 몰았다고 생각한다. 집안에서 소년의 부모 이야기와 4·3은 입에 담아서는 안 되는 이야기다. 소년은 성장하면서 엄마와 일본에서 같이 공부했던 4·3 피해자 '기무르 하르방'으로부터 4·3의 진실에 대해 듣게 된다.

일본은 패망하기 전 제주도에 정예군 7만 명을 두고 제주 곳곳에 인공 동굴을 만들어 격납고로 사용한다. 일본군은 동굴 곳곳에 어뢰정과 비행기까지 숨겨 둔다. 미군이 제주도에 상륙하면 제주도민 20만 명을 총알받이로 내세우고 일본군은 끝까지 싸운다는 '결 7호 작전'을 수립한다. 다행히 '결 7호 작전'이 실행되기 전 일본은 패망한다. 항복을 선언한 일본군은 일본으로 돌아간다. 그 자리를 미군이 들어와 차지하자 자치를 원하던 제주도민들의 반발이 거세진다. 

"우리 제주도에도 미국 군인들이 들어왕 모든 걸 차지했저(했어) 제주도 사름들은 우리끼리 잘 헐수 있는디도 자꾸 간섭허는 거라. 미국 사름들은 좌익을 빨갱이라고 허며 아주 싫어했저. 미군정에 반대허는 사름들은 다 좌익이다 빨갱이다 했저. 경허지만(그렇지만) 진짜 빨갱이는 별로 엇어서(없었어) 경헌디도 자꾸 그런 눈으로 보는 거라.

그뿐이 아니여. 제주도 사름들은 못 믿겠다는 건지 '서북청년단'이라고 이북 사름들을 끌어들여서 경찰을 돕도록 했저 육지 경찰들꺼지 불러들여 제주도에서 좌익 뿌리를 뽑겠다고 헤서, 어느 편이 옳은지 알 수 엇시(없이) 어수선했지. 좌익도 우익도 자기들이 옳다며 목청을 높이던 때였지. 좌익이라는 사름들을 막으려는 미굼정이나 서북청년의 활동도 활발해졌지. 그 바람에 좌익이 아닌 사름들까지 고통을 받은 거라.

미군정도 그렇지만 서북청년의 포악이 하늘을 찔렀저. 자기들이 북한에서 공산당한테 당헌 화풀이를 제주도 사름에게 허겠다는 건지 경찰보다 더 설치면서 다녔저. 다른 사름들은 어떻게 말헐지  모르지만 나는 미군정이 나쁘다고 생각헌다. 그리고 거기에 붙어 권력의 끈을 잡으려고 한 정치인들도 나빠. 그들 눈에 제주도 사름들이 사름겉이(사람같이) 보이지 않은 거야." (본문 중에서)

변하지 않은 정부, 제주 4·3과 세월호가 겹쳐보이는 이유

제주 4·3은 치욕스러운 범죄의 역사다. 정부는 군대를 동원하고 이념이라는 족쇄를 채워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했다. 4·3의 비극이 남긴 상처는 아물지도 제대로 정리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해군 기지 건설을 밀어 붙이고 있다. 끝없는 비극의 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개인의 권력과 부를 먼저 챙기는 부역자들이 정치와 경제를 쥐고 흔드는 까닭이다.

4·3을 증언하는 이야기에 세월호가 오버랩 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얼마 전 서북청년단의 부활을 꿈꾼다는 사람들이 세월호를 잊지 말자는 노란 리본을 모두 떼어내겠다며 당당하게 기자회견을 열었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 아는 것이 왜 개인의 정체성과 연관이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는 증거다. 제주 4·3에서도 양민 학살의 선봉에 섰던 것이 바로 이들 '서북청년단'이었다.

세월호는 또 다른 4·3이나 다름없다. 세월호라는 이름의 비극에서도 권력자들은 거짓, 숨김, 눈가림, 입막음을 동원해 반성 없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는 일, 성역 없는 조사를 통해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는 일은 반복되는 비극을 끊어내는 일이다. 진실을 기억하는 이들, 진실을 증언하는 이들, 진실을 기록하는 이들이 남아 있는 한 진실은 침몰하지 않을 것이다.

"4·3 사건이 없었이면 너 같은 아이도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일 거여. 지금은 모두 높은 사름들이 무서워서 쉬쉬 허지만 언잰가는 모든 사실이 드러날 거라. 아주 높은 사름이 대통령 겉은 사름이 나서서, 나라가 잘못되어서 이렇게 많은 세주 사름들이 죽었습니다. 억울허게 죽었습니다. 모두 나라 잘못입니다. 허고 사과허는 날도 이실지(있을지) 모르주(모르지)." (본문 중에서)

덧붙이는 글 | <노래하며 우는 새>(송재찬 지음 / 권정선 그림 / 우리교육 / 2006.02 / 7000원)



노래하며 우는 새

송재찬 지음, 권정선 그림, 우리교육(2006)


태그:#제주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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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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