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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딸인 마더리프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눈물이 나지 않는다. 고작 두 번 밖에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엄마를 잃은 마더리프의 엄마도 그다지 슬퍼하는 것 같지 않다. 마더리프의 엄마는 할머니와 성격이 맞지 않아 오래 전 집을 떠나 살았다. 할아버지도 예전에는 곱고 예뻤던 할머니가 지나친 잔소리로 할아버지를 피곤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할머니의 마지막 선물>은 할머니의 죽음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깨우쳐가는 이야기다.

남편과 딸도 좋아하지 않았던 어느 할머니

<할머니의 마지막 선물>(후스 키위어 지음 / 만서 포스트 그림 / 김연정 옮김 / 한겨레아이들 / 2008.10 / 9000원)
▲ 할머니의 마지막 선물 <할머니의 마지막 선물>(후스 키위어 지음 / 만서 포스트 그림 / 김연정 옮김 / 한겨레아이들 / 2008.10 / 9000원)
ⓒ 한겨레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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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리프의 엄마는 할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고집이 세고 지나치게 청결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할머니는 매사에 간섭이 심했다. 외삼촌은 일찌감치 집을 떠나 외국에서 생활하며 돌아오지 않는다. 할아버지는 온 몸이 굳어 움직일 수 없는 할머니를 위해 먼지 하나 없이 청소를 해야만 했다. 청소를 지켜보며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는 할머니에게 할아버지는 이따금 화를 내고는 했던 것을 후회한다.

"난 할머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어. 모든 자식들이 부모와 잘 지내는 건 아니야. 특히 자식들이 커 가면서 부모 자식 사이에 다시는 화해할 수 없는 다툼이 생기기도 해. 난, 할머니와 잘 지내보려고 노력했어. 하지만 잘 안 됐지."

'어떻게 자기 엄마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담!'

마더리프는 할머니와 사이가 나빴던 엄마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내 아들아이가 떠올랐다. 친정 엄마와 데면데면한 관계를 유지하는 내 모습이 제 친할머니와 끔찍이 사이가 좋은 아들아이에게 이상하게 비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모녀지간은 라이벌 관계라고 말하기도 한다. 엄마와 갈등이 생겼을 때 엄마는 '너도 시집가서 애 낳아봐라'라는 말을 하곤 했다. 그 말이 무슨 악담처럼 들렸지만 자식 낳고서야 엄마의 삶을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엄마와 그다지 친밀한 관계가 아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반해서 결혼을 했다. 할머니를 사랑하지만 어느 순간 고집스럽게 변해버린 할머니를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할머니의 죽음을 통해서야 할아버지는 깨닫는다. 할머니가 처녀 시절 지녔던 꿈이 좌절돼서, 밝고 자신감 넘치던 소녀가 고집스럽고 잔소리 심한 주부로 변했음을 말이다.

나는 네덜란드에서 살고 싶지 않았네.
그곳에서는 내가 바위처럼 굳어 가겠지.
그곳에서는 고상하게 살아가야 하네.
그곳에서는 모두들 느린 어조로 말하지, 열정 없이
밧줄 위에서 광대 춤을 추기에는 모두들 너무 점잖지.
여기서도 약한 사람들을 함부로 다루지.
하지만 어리석은 속물도 자신의 권리가 있어.
그렇게 슬프게 죽고 싶진 않다네.

어린 손녀 마더리프는 할머니의 시를 완벽하게 이해한다. 할머니는 자유분방하고 발랄했다. 탐험가 기질이 강했던 할머니는 자아를 버린다. 책을 읽는 대신 먼지 한 점 없이 집안을 청소하고 아이들을 완벽하게 기르기 위해 잔소리를 하는 엄마로 살았다. 그러면서 몸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굳어갔던 것이다.

할머니가 희생한 것, 요즘 여성이 포기해야 하는 것

할아버지는 아내에게도 아내만의 꿈이 있었는데 가정을 위해 자신의 꿈을 버렸다는 점을 알게 된다. 마더리프의 엄마도 이제 자신은 자신을 잘 안아주지 않던 엄마와 달리 마더리프를 자주 안아주겠다고 다짐한다.

이전에 곱고 순결했던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꿈을 버리고 자식과 남편 뒷바라지를 하며 살아간다. 그런 모습이 자식이나 남편의 눈에는 잔소리꾼으로 비치기도 한다. 가족들은 엄마가 주부로 완벽한 역할을 감당하면서 밖으로는 멋진 커리어 우먼으로 비쳐지길 바란다.

하지만 여성은 슈퍼우먼도 신도 아니다. 결국 대부분의 여성들은 자신의 꿈을 접고 가정과 자녀 그리고 남편의 그림자로 살아간다.

많은 엄마들이 좌절된 자신의 꿈을 자식이나 남편의 성공을 통해 '대리만족'하려 한다. 자아가 강한 여성일수록 자녀들을 일류대학에 보내려 학업 일정 스케줄을 짠다. 사교육을 시키고 일일이 간섭하는 엄마로 변해가는 이유이다.

가정을 이룬 여성에게 원하는 것은 서양이나 동양이 다르지 않다. 이전에는 현모양처가 바람직한 여성상이었다면 현대는 여기에 능력 있는 커리어우먼의 역할까지 더 요구한다.

이 책은 할머니의 죽음이라는 주제를 통해  부부와 자녀의 소통,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한 고민 등 우리 삶의 문제를 되돌아 볼 수 있게 만든다. 책장을 넘기면서 가족의 소중함이 가슴에 저절로 스미게 된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엄마나 할머니에게 하트를 넣은 문자 한 통 넣고 싶은 마음이 생겼는가. 그렇다면 당신도 할머니가 남긴 소중한 마지막 선물을 받은 셈이다.

덧붙이는 글 | <할머니의 마지막 선물>(후스 키위어 지음 / 만서 포스트 그림 / 김연정 옮김 / 한겨레아이들 / 2008.10 / 9000원)



할머니의 마지막 선물

휘스 카위어 지음, 김연정 옮김, 만서 포스트 그림, 한겨레아이들(2008)


태그:#할머니의 마지막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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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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