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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9월 3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43회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9월 3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43회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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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니 별일도 다 있다. 내가 박근혜 정부를 응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공무원 연금을 개혁한다고 나서니 말이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대한민국 상위 1%가 총 배당소득의 72.14%, 10%가 93.48%를, 이자소득은 상위 1%가 44.75%, 10%가 90.65%를 가져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직은 완전치 못한 자료이기는 하나, 한마디로 대한민국 국민의 90%는 임대료나 배당금, 이자 등등을 얻을 수 있는 재산이 거의 없다는 얘기다.

배당소득과 이자소득은 불로소득이다. 불로소득이 없으면 근로소득으로 살 수밖에 없다. 일해서 먹고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일자리를 얻지 못하면, 혹은 늙어서 일하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굶어 죽거나 빌어먹거나 죽지 못해 살아야 한다.

일하지 못하면 굶어 죽을 재산없는 90%

국민연금에 가입한 이들은 사정이 좀 나을 것이다(국민연금제도는 국민건강보험과 함께 과거 권위주의 정권이 저지른 일 가운데 거의 유이한 칭찬거리다). 2013년 현재 가입자는 2000만 명이고, 330만 명이 연금을 수령하고 있는데, 20년 이상 가입자의 평균 수령액이 84만 원이라고 한다. 늙어서는 그렇게 씀씀이가 많지 않다. 평균 정도 받는 사람도 근근이 입에 풀칠은 하며 살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가입자는 이에 훨씬 미치지 못할 것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공무원들은 은퇴 후에도 국민연금이 아니라 공무원연금을 받는다(선생님들이나 군인들도 은퇴해서는 사학연금, 군인연금으로 특혜를 받는다). 2013년 현재 공무원연금 수령자는 35만 명인데 20년 이상 가입자 평균 연금 수령액이 219만 원이다. 국민연금과 차이가 커도 너무 크다. 정무직은 평균 315만 원인 반면 일반직은 159만 원이라고 일반직의 불만이 많은데 그래도 국민연금에 비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이런 식이라면 기초노령연금(20만 원)이 제대로 실현된다 하더라도, 대한민국은 연금만으로도 계급사회를 이루게 된다. 같이 늙어가는 사이인데도 왕족(자산계급)은 빼고라도 귀족(공무원연금자), 상놈(국민연금 가입자), 천민(기초연금 수령자)계급으로 확연히 갈라진다. 이걸 고치자면 공무원들은 항변한다.

'많이 낸 만큼 많이 받는 것이다.'
국민연금 가입자들도 그만큼 많이 내고 많이 받을 기회를 달라.

'현직 때의 적은 보수를 보상받는 것이다.'
국민경제가 폭발적으로 팽창할 때의 옛날 얘기다. 지금 국민들의 대부분은 그만큼의 보수를 받지 못하고 있고 직장조차 없는 사람들도 수두룩하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억지 항변들

'좋은 인재들이 공무원을 지망하지 않을 것이다.'
걱정 붙들어 매시라. 설사 공무원연금 자체를 없앤다 해도 공무원 지망자는 여전히 차고 넘칠 것이다.

'열악해진 노후보장을 보충하기 위해 부패가 만연할 것이다.'
그건 범죄다. 차원이 다른 문제다. 또한 공무원연금과 상관없이 대한민국 사회 일각에는 이미 공무원부패가 만연해 있다. 

'공무원연금은 국가가 공무원에게 약속한 것이다.'
세상에 변치 않는 약속이란 없다. 상황이 바뀌면 당연히 약속도 바뀌어야 한다. 공무원연금 지탱하느라 국민들 등뼈가 부러진다.

연금구조가 어떻고 수급률이 어떻고 세부적인 문제를 떠들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헷갈리기 쉽다. 구체적인 개혁의 방법론과 개혁방향에 관한 논란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국민연금 개혁문제는 재정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불평등의 고착화에 관련된 문제라는 사실이다. 반드시 개혁해야 하며 궁극적으로 국민연금과 통합해야 한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대표최고위원실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이완구 원내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날 김 대표는 공무원연금 개혁에 대해 "더 이상 공무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모두의 문제가 됐다"며 "그동안 박봉과 어려움 속에서 근대화의 주역으로 일해온 전·현직 공무원들이 다시 한 번 애국심에 호소한다"고 말했다.
▲ '공무원연금 개혁' 논의하는 김무성-이완구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대표최고위원실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이완구 원내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날 김 대표는 공무원연금 개혁에 대해 "더 이상 공무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모두의 문제가 됐다"며 "그동안 박봉과 어려움 속에서 근대화의 주역으로 일해온 전·현직 공무원들이 다시 한 번 애국심에 호소한다"고 말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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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처음부터 공무원연금을 폐지하는 수준으로까지 갈 수는 없을 것이다. 공무원연금 내에서의 불평등도 상당하므로 일단 하위직·일반직은 일체 손대지 말고 고위직만 대폭 손질을 함으로써 전체적인 불평등 수준을 낮춰야 할 것이다. 제도개혁의 대상자도 국민연금 개혁 때처럼 3~5년씩 시차를 두고 늘려 나아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최종 목표점은 모든 연금의 통합이다. 연금과 관련해서는 온 국민이 평등해야만 그제야 공무원들은 (국민) 전체의 수준을 더불어 높이는데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공무원연금은 탄생 이후 그 이해당사자인 공무원들이, 그중에서도 특혜층인 고위 공무원들이 관리해 왔다. 불평등 구조가 고착되고 더욱 강화되어 왔다는 혐의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자세히 알지도 못하고, 알아도 내 일이 아니라고 치부하는 장삼이사들일지라도 공무원연금으로 인한 우리 사회의 불평등구조를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다. 그래서 청와대가 움직이고 뒤늦게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내 이름으로 하자"며 숟가락 들고 나선 것이다. 세금도 제대로 걷지 않으면서 나랏돈을 펑펑 써대는, 통 크고 배짱 두둑한 이 정부가 고작 몇 조 짜리 재정문제에 새삼 머리 싸매고 덤벼들지는 않을 터이다.

그렇다면, 청와대와 당이 앞 다투어 나서고 야당이 '반대'로 적극 나서지 않으면 공무원연금 개혁이 성공할 수 있을까. 아니 당장 성공하지 않더라도 제대로 된 방향으로 들어설 수나 있을까.

고양이 목에 방울 다는 격인 공무원연금 개혁

박근혜 정권의 많은 잘못에도 불구하고 나는 공무원연금 개혁만 잘 하더라도 이 정권을 우호적으로 다시 볼 의사가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혹은 다행스럽게도-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 사회의 불평등구조를 해소하는 작업은 박근혜 정권의 철학-그런 것이 있더라도-과는 근본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관료사회는 힘이 세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격이다. 자칫 잘못하면 정권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 더구나 세월호 참사 발생과 수습과정에서 보듯 박근혜정권은 관피아 척결이라는 레토릭만 부르짖을 뿐 결국 관피아와 일심동체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아무리 어리석어도 제 목에 칼을 댈 만큼 어리석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공무원들이 볼 때는 흉내만 내고, 국민이 볼 때는 대단하게 무슨 일을 한 것처럼 포장만 한 채-또는 그렇게 보도만 한 채- '공무원연금 개혁쇼'는 흐지부지 마무리될 것이다. 기득권세력은 늘 그렇게 국민을 속여 왔고 국민은 늘 그렇게 속아 왔으니까.


태그:#공무원연금, #국민연금, #박근혜, #김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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