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시간 중 갑자기 교수님께서 화면에 무언가를 띄우셨다. 여러분들에게 꼭 추천해주고 싶은 영화라며 틀어준 <5일의 마중> 예고편.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때도 상영됐다고 하던데, 나는 전혀 몰랐다. 학기가 시작되고 이것저것 바빠서 그랬나.

지난 8일 개봉한 이 영화는 이미 상영하는 곳이 몇 군데 없었다. 시험 기간임에도 꼭 보고 싶은 마음에 영화관으로 달려갔다. 금요일인데도 영화를 보러 온 사람은 몇 없었다. 그러나 중년의 부부, 혹은 친구끼리 영화를 보러 오신 분들이 눈에 띄었다. 젊은 사람은 나 뿐이었다. 그들은 입장을 기다리는 동안 감독인 장예모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장예모 감독을 많이들 알런지 모르겠다. 그는 1988년<붉은 수수밭>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으며 세계의 주목을 받는 영화계의 거장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영원한 뮤즈인 공리와 함께 7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평범하고 더욱 아름다운 이야기로 말이다.

<5일의 마중>은 중국 문화대혁명 시기를 배경으로 중국 작가 옌거링이 쓴 베스트셀러 <육범언식(陸犯焉識)>을 원작으로 한다. 내가 처음 봤던 장예모의 작품 <인생> 또한 문화대혁명 시기를 배경으로 했기에 그가 이번엔 어떠한 눈으로 중국의 역사를 카메라에 담아냈을지 궁금했다. 장예모라는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기대할 만했다.

상하이에서 교수로 일했던 지식인 루옌스(전도명 분)는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반혁명분자로 몰려 어린 딸과 부인을 둔 채 몇 십년 간 밖을 떠돌게 된다. 오랜 시간 만날 수 없었던 두 사람. 어느 날 당원들의 감시를 피해 남편 루옌스(전도명 분)가 집으로 찾아온다. 아내의 이름 한 번 불러보지 못하고 문 밖에서 노크만 하던 루옌스(전도명 분). 내일 아침 기차역에서 만나자는 말만 남기고 그렇게 다시 이별한다.

 기차역에서 남편을 기다리는 펑완위(공리 분)

기차역에서 남편을 기다리는 펑완위(공리 분) ⓒ '5일의 마중' 스틸컷


다음 날 기차역에서 루옌스(전도명 분)와 펑완위(공리 분)는 서로를 애타게 기다린다. 그리고 드디어 서로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루옌스(전도명 분)를 잡기 위해 달려오는 당직자들을 본 펑완위(공리 분). 사무치게 그리워했던 사람의 얼굴을 어루만질 새도 없이 멀리서 외쳐야만 했다.

"도망쳐요, 루옌스!"

그게 사랑하는 사람을 온전히 알아볼 수 있는 마지막일 줄 그녀는 알았을까.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무죄를 인정받은 루옌스(전도명 분)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기차역으로 마중나온 딸 단단(장혜문 분). 자신의 꿈에 도움이 되지 않는 아버지였기에 그토록 미워하고 증오했던 아버지와 처음으로 함께 하는 순간이었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태어난 단단은 당대 중국의 사회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하나의 실체다. 군사학교 소녀들의 역동적인 발레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장예모의 중국 역사에 대한 섬세한 연출력을 나타낸다.

집으로 돌아온 루옌스(전도명 분)는 아내를 향해 반갑게 웃어 보이지만 아내는 더 이상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 펑완위(공리 분)는 앞에 있는 루옌스(전도명 분)에게 말한다.

"남편이 5일 날 돌아와요."

그녀는 그렇게 자신에게로 돌아온 남편을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었다. 이 영화의 큰 수확은 바로 루옌스 역의 전도명이 아닐까 싶다. 영화 초반부에 그저 꼬질꼬질한 중년의 아저씨로 보이던 그가 영화에 빠져들수록 그렇게 잔잔한 울림을 일으킬 줄 누가 알았을까.

 시간이 흘러 여전히 남편을 마중나가는 펑완위(공리 분)와 그의 남편 루옌스(전도명 분)

시간이 흘러 여전히 남편을 마중나가는 펑완위(공리 분)와 그의 남편 루옌스(전도명 분) ⓒ '5일의 마중' 스틸컷


그는 루옌스 그 자체였다. 자신을 잡아가라 신고한 딸을 이해하는 아버지, 눈 앞의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아내를 여전히 지켜주고 싶은 남편…. 장예모의 렌즈 속에서 전도명은 눈이 부시도록 빛나고 있었다.

기다려 본 사람은 안다. 기다림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 일인지. 그러나 그 외로움보다는 '만남에 대한 기대'가 더 크기에 사람들은 오늘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닐까. 펑완위(공리 분)에게 기다림은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그리고 깨달았다. 기다림의 결과는 중요치 않다.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는 그 과정 자체가 그녀에겐 중요하고 의미있는 것이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일어날 수가 없었다. 불이 켜지자 눈물을 훔치는 관객들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 울고 있었다. 누군가 <5일의 마중> 리뷰에서 적어놨던 말이 생각났다. '길고 긴 여운을 깰 자신이 없는 영화'. 저 백발의 노부부는 언제까지 저 앞에서 오지 않을 펑완위(공리 분)의 마음 속 그 사람을 기다려야 하는 걸까. 격동하는 중국의 역사 속 한 부부의 먹먹한 이야기. <5일의 마중>이었다.

5일의 마중 공리 전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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