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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를 하지만 처음에는 장사가 목적이 아니었어요."

어느 골목에나 특이한 카페 하나쯤은 있는 세상. 하지만 운영 철학까지 특별한 카페는 흔치 않다.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카페 '상상언저리'는 회원을 모집하고 후원을 받는다. 평소에는 여느 카페처럼 일반 고객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고, 틈틈이 짬을 내 회원들과 만나며 교류의 장을 만든다.

지난 2011년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 반대 시위 때 결성된 청년회와 지역의 시민들이 자체적으로 뜻을 모아 후원금을 걷기 시작해 지난해 4월 카페 문을 열었다. '소비와 소모의 문화가 아닌, 관계 지향적 문화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였다.

현재 가입된 회원들은 30여 명으로 매달 소액의 회비를 내고 저마다 소모임을 만들어 봉사활동에 참여한다. 활동은 하지 않고 후원만 하는 이들도 50명 남짓이다. 활동을 전제로 하는 정회원들은 매달 첫째 주 토요일마다 마포구에서 독거노인들을 위한 반찬봉사를, 둘째 주 토요일에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쉼터인 '나눔의 집'에서 봉사활동을 한다.

도시농업 모임에선 정회원들끼리 어떤 작물을 심을지 정한 뒤 텃밭을 일궈 키운 작물을 나눠 먹기도 한다. 한 달에 한 번 날을 잡아 회원들끼리 모여 작은 만찬회도 연다. 시민 사회단체들의 회의, 피로연과 각종 잔치들도 이곳에서 열린다.

오는 26일 오후 3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돕기 홍대 뮤지션 자선 공연이 이곳에서 열린다. 상상언저리에서 공연이 열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홍대를 주 무대로 하는 인디뮤지션 강아솔, 차빛나, 섬섬옥수, 도마, 서예린, 티셔츠밴드의 윤민석 등이 재능기부 형식으로 참여한다.

2030 뮤지션들의 재능기부... 수익금 전액 '나비기금'으로

오는 26일 오후 세시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상상언저리 카페에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돕기 홍대 뮤지션 자선공연이 열린다.
 오는 26일 오후 세시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상상언저리 카페에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돕기 홍대 뮤지션 자선공연이 열린다.
ⓒ 상상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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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정해진 관람료 없이 관람객 스스로가 감동한 만큼 돈을 지불하는 '감동 후불제'로 진행한다. 공연 수익금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아래 정대협)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나비기금'에 전액 기부된다. 나비기금은 2012년 콩고 내전과 베트남 전 성폭력 피해자들을 돕겠다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88), 길원옥(86) 할머니의 뜻에 따라 발족한 기금이다.

공연을 기획한 김아람(29)씨는 "매달 한 번 나눔의 집을 가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쌓인 게 공연 기획의 계기가 됐다"며 "할머니들께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기 위해 유엔을 등을 방문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비용을 후원금으로 마련하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서 이번 공연을 실행에 옮겼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수익금 기부뿐 아니라 매달 상상언저리 후원자들이 내는 회비의 7%를 나비기금으로 전달할 예정이다. 더불어 "수요집회에 학급 단위로 오는 학생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 단순한 현장학습을 넘어 피부로 와닿는 역사라는 것을 알고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말했다. 젊은 사람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더 깊게 알았으면 한다고도 덧붙였다.

"매주 일본대사관 앞에서 여는 수요집회가 몇 해 전에 기네스북에 올라간 거 아세요?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집회래요. 지금은 할머님들 연세도 많으시고, 이제 55분 남으셨어요. 매달 봉사하러 나눔의 집에 가면 정말 소녀 같은 감성의 할머니가 항상 계세요. 근데 당뇨 합병증도 있으시고, 요즘 부쩍 건강이 안 좋아지셔서 마음이 아파요."

"젊은 사람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더 깊게 알았으면 해요. '텔레비전에서 보기는 했지만 잘은 몰라', 이런 식이니까. 하지만 여전히 이 문제는 진행 중이에요. 봉사하러 간다고 했을 때 나눔의 집 측에서 '(봉사하러 오는 사람 중에) 덩치가 크거나 키가 큰 남자가 있냐'고 묻더라고요. 할머니들께서 (그런 남자는) 무섭다고 말씀하신대요. 당시의 상처가 아직도 남아 있구나 싶어 가슴이 아팠죠."

"사과받지 못한 그 삶들... 모두가 좀 더 위안받기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돕기 자선공연에 출연하는 음악인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티셔츠밴드 윤민석, 섬섬옥수, 서예린, 강아솔, 도마, 차빛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돕기 자선공연에 출연하는 음악인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티셔츠밴드 윤민석, 섬섬옥수, 서예린, 강아솔, 도마, 차빛나.
ⓒ 상상언저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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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 오르는 출연자들의 각오도 여느 공연과 다르다. 그림과 시 낭송을 맡은 인디뮤지션 서예린씨는 재능기부로 출연을 결정한 이유에 대해 "취지가 좋고, 공감하던 바도 있었다"며 "이건 돈을 떠나서 인간 대 인간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소속사 없이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인디뮤지션들은 무료로 재능을 기부하는 행사에 선뜻 참여하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다. 한 번 출연을 결정하면 유사한 성격의 공연을 기획하는 주최 측으로부터 연달아 재능기부 제의를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출연료를 지급하는 공연이라면 재능기부 사실이 출연료 교섭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전업 뮤지션이라면 생업과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다.

그는 "상상언저리가 그간 (사회적으로) 좋은 움직임들을 보여왔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결정"이라고 했다. 더불어 개인적인 아픔을 겪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지점들을 찾을 수 있는 기회라 여겼다고.

"보통 개인적인 아픔이나 고통이 찾아올 때마다 뭔가를 그리거나 쓰곤 했어요. 할머니들과 나는 서로 살아온 삶은 다르지만 그때 내가 빼앗겼던 행복들을 생각했죠. 그러니까 당시 할머니들이 빼앗겨야만 했던 것들에 감정이입이 되더라고요. 사과받지 못하고 돌려받지 못한 그 삶들, 그걸 극복하는 과정에서 서로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이를 통해서 모두가 좀 더 위안을 받았으면 하죠."

서예린씨는 이번 공연에서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그림도 함께 전시한다. '작은 행동이 큰 기적을 만든다(Small movement, Great miracle)'는 제목의 작품이다. 눈썹을 그릴 때 쓰는 아이라이너로 작업했다. 파도를 의미하는 문양들 한가운데에는 다이아몬드로 형상화한 노란 리본이 그려져 있다. 진실은 언제나 빛나며 결국 물 위로 떠오른다는 의미로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제작했다.

서씨는 "고통스러운 하루하루 속에서도, 그것을 끝내 극복해가는 어떤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며 "(이번 공연이) 모두가 보고 공감하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는 뜻을 밝혔다.


태그:#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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