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제목이 왜 <대공습>으로 번역이 되었는지 도통 이해가 안 간다. 원제인 <인 투 더 화이트(In to the white)>만으로도 영화가 나타내고자 하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항공전투는 물론 그 흔한 총격전조차 볼 수 없는 영화인데….

어쨌든 수입 영화의 한국식 제목 붙이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좀 더 신경써야 할 부분이다. 영화의 질이나 감독의 역량과는 상관없이 엉뚱한 제목을 붙여 버리는 바람에 제대로 감상대에 오르지도 못하고 사장되어 버리거나, '괜히 보았다'는 실망감이 인터넷에 리뷰로 도배질되기도 하니 말이다.

설원에서 만난 독일군과 영국군

광활한 노르웨이의 산악지대로 추락한 독일과 영국 전투기 조종사들 사이에 벌어지는 정치적 이해관계, 혹은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내내 시비를 거는 신경전이 볼 만하다. 밤이 되면 기온이 영하 30도 이하로 떨어지고, 낮이 되어도 매서운 비바람에, 그들은 오도 가도 못하며 산등성이에 덩그러니 서 있는 오두막에 갇히고 만다.

영화 <In to the white>  2차 세계대전 노르웨이 상공에서 격추당한 영국과 독일 공군이 만나 벌이는 이야기. 세찬 눈보라를 피해 오두막에 자리잡은 초반의 좌충우돌을 이겨내고 이념도 이데올로기도 부술 수 없는 우정을 만들어낸다.

▲ 영화 2차 세계대전 노르웨이 상공에서 격추당한 영국과 독일 공군이 만나 벌이는 이야기. 세찬 눈보라를 피해 오두막에 자리잡은 초반의 좌충우돌을 이겨내고 이념도 이데올로기도 부술 수 없는 우정을 만들어낸다. ⓒ Eurimages


독일군 장교는 인질로 삼기 위해 영국 공군을 잡았고, 인질이 된 영국 공군은 제네바 협정 운운하며 식사와 잠자리 그리고 대소변 보는 일까지도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다.

독일군 장교와 사병은 나치의 운명을 깊이 받아들이며 자신들의 상처를 억누른 채 규칙과, 군령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반면 영국군은 좀 더 여유와 유머가 있고, 나름대로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환경이 전혀 다른 두 나라의 군인들이 만났다.

점령군은 총을 가진 쪽이다. 먼저, 총을 소지한 독일 장교가 오두막 바닥에 선을 그어 독일령과 감옥으로 나누는 장면이라든지, 식사할 때도 식탁을 독일령과 감옥 가운데 놓고 식사하는 등 외딴 오두막을 전장으로 만들어 버리고, 내내 이어지는 장면이 이 영화의 재밋거리 중 하나이다.

군인들은 무의미한 정치판의 희생양

그들의 화해는 우연한 기회에 만들어진다. 순록을 잡기 위해 나선 독일군과 영국군은 토끼를 사냥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진정성을 확인하게 되었다. 게다가 오두막 안에서는 땔감으로 쓰려고 기둥을 잘라내는 바람에 지붕이 무너지려 하는데, 이를 막기 위해 양쪽 장교는 의자를 놓고 기둥 대신 천장을 지탱한다.

이 두 명 모두 벌 서는 자세로 기둥 역할을 하다 대화를 나눈다. 독일군 장교의 아픈 가정사가 드러나고, 군인으로서 부하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괴감을 영국군 장교가 위로하면서 서로는 총을 놓고 친구가 된다. 그들의 대화 속에 이런 것이 있다.

"독일군은 전 유럽을 다 먹고 이제 중국까지 먹을 건가요? 말도 안 통하는데?"
"대영제국도 마찬가지 아닌가? 전 세계를 먹고 있는데 독일이라고 해서 그러지 못할 이유가 없잖나?"

"대체 독일군은 왜 노르웨이를 점령하려는 거죠?"

역사적으로 노르웨이의 자원은 타 국가들의 탈취의 대상이었다. 독일이 전 유럽을 지배하에 놓기 위해 현재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영국 또한 노르웨이를 자국의 관리 아래에 두어야만 막대한 산림자원과 지하자원을 활용할 수 있다.

그렇다. 전쟁은 총과 탱크와 전투기로 하지만, 정치적 압력에 의해 서류 한 장으로 한 나라를 수탈하는 것 역시 말없는 전쟁인 것이다. 여기까지 이르자 그들은 비로소 그들이 싸워야 할 대상이 자신 앞에 놓인 적군이 아니라 바로 이 매서운 눈보라라는 것을 깨닫는다.

자신들의 코앞에 떨어진 생명도 지킬 수 없으면서 '나치'가 어쩌고 '제국'이 저쩌고 설레발치는 것은 제국주의나 나치즘 혹은 파시즘에서 만들어낸 홍보용 문구에 이용당하고 있는 것이다. 

서로가 정당화된 미션을 가지고 타민족과 타국가들을 점령했을 뿐이지 그 방법에 대해서는 깊은 고민이 없었다. 대영제국이라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역시 허울뿐인 '인도주의'와 '교화해야 할 많은 이교도' 를 대상으로 수많은 국가와 인종들의 생명을 살상했다.  

영국 사병이 부른 'Over the rainbow'

이처럼 우연찮게 같은 오두막을 사용하게 된 이들은 인간 대 인간으로서 서로를 이해하고 아픔을 조율하는 진실과 화해의 장을 만들어 낸다. 소통이란 자신의 전투기를 격추시켰던 적군마저도 포용할 수 있는 인간애 그 자체이다.

특히 영국군 병사가 부른 영화 <오즈의 마법사>의 테마곡 '오버 더 레인보(over the rainbow)'는 그들의 전쟁이란 것이 단지 잡을 수 없는 산 너머 무지개와 같음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그들 앞에 펼쳐진 노르웨이 산에서의 신비한 오로라는 치열한 전쟁과 정치적 야망의 그늘 속에서 그들이 놓치고 있는 것들을 보여준다.

무지개나 오로라나 모두 아름다운 자연현상이지만 만질 수는 없는 것이다. 단지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이 장면에 서 있는 네 명의 군인은 국가와 인종을 초월하고 그제서야 한 곳을 바라보며 자연에 경의를 표하고 있다.

영국군 병사가 'over the rainbow'를  부르는 장면 총을 거두고 마음을 나누게 된 양쪽 병사들은 함께 같은 곳을 본다. 노르웨이의 산악에서 볼 수 있는 오로라는 이들이 가질 수 없는 꿈일까? 영국군 병사가 소변을 보며 영화 <오즈의 마법사> 중 테마곡인 'over the rainbow'를 부르고 있다. 무지개 너머 이들이 찾아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 영국군 병사가 'over the rainbow'를 부르는 장면 총을 거두고 마음을 나누게 된 양쪽 병사들은 함께 같은 곳을 본다. 노르웨이의 산악에서 볼 수 있는 오로라는 이들이 가질 수 없는 꿈일까? 영국군 병사가 소변을 보며 영화 <오즈의 마법사> 중 테마곡인 'over the rainbow'를 부르고 있다. 무지개 너머 이들이 찾아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 Eurimages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영화에서 나오는 영국군 병사는 이후 전투 중 사망하게 되고, 독일군 장교와 병사는 캐나다의 포로수용소에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있다가 풀려나게 된다. 그리고 1977년 영국군 장교는 공식적으로 독일군 장교를 초청한다. 적군이 아닌 친구로서.

감독은 지독하게 춥고 매서운 바람과 차가운 눈발에 의해 그들을 오두막으로 가두어 놓는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은 오두막에서 벌어지는 군인들의 신경전, 그리고 지극히 사사로운 이야기로 채워간다. 반전이나 자극적인 장면을 원하는 관객이라면 지루하게 보일 수도 있으나, 꼭 그럴 필요는 없지 않은가? 인종과 국적이 다른 사람사이의 갈등을 이렇게 멋지게 풀어냈다니 감독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다.

참고로 이 영화의 주제라 할 수 있는 1939년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테마곡 '오버 더 레인보(Over the rainbow)'의 가사를 들려주고자 한다. 명화와 명곡은 시대와 나라를 초월하는 인류의 아름다운 유산이다

somewhere over the rainbow way up high
저 높은 무지개 건너 어딘가엔
And the dreams that you dream of once in a lullaby
자장가에서 한 번 들었던 곳이 있어요
Somewhere over the rainbow blue birds fly
무지개 너머 푸른 새들이 날아다니는
And the dreams that you dream of dreams really do come true
당신이 꿈꾸었던 것이 현실이 되는 그런 곳이 있어요

Someday I'll wish upon a star
언젠가 별님께 소원을 빌 거예요
and wake up where the clouds are far behind me
그러면 저 밑으로 구름이 보이는 곳에서 잠을 깰테죠
Where trouble melts like lemon drops
모든 근심들이 레몬방울처럼 사라져버리고
High above the chimney top
저기 굴뚝보다 더 높은 곳에서
That's where you'll find me
나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덧붙이는 글 본인의 블로그에 중복 게재됩니다.
http://blog.naver.com/office3000/220158629031
IN TO THE WHITE 오즈의 마법사 도로시 오버 더 레인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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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종교학 쪽에 관심이 많은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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