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혼수 접시가 원반으로 보인다. 뒷통수 조심해라! 

행사 끝난 지 하루 만인 일요일부터 하늘이 꾸물꾸물하더니, 이틀 내내 가을비가 내렸다. "더치페이하기 딱 좋은 날씨네." 요런 패러디로 유명세를 탄 영화 <신세계> 대사에 빗대면, 이런 날씨는 "기증하기 딱 좋은 날씨네"이다. 누가 뭘 공짜로 준다고 해도 밖으로 나가기 성가신 날씨에 부러 기증을 하러 간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게 들리지만 집까지 몸소 찾아와 책, 옷, 장난감 등등 애물단지들을 처리해준다면 고려해봄직하다.

공공박스(oobox.kr). 가끔 땡땡박스, 영영박스로 오해를 사는 공공박스는 집으로 찾아가는 기증연계 서비스이다. 누구나 옷장, 찬장, 베란다, 창고 등등 집에는 버리기는 아깝지만 쓸 일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계륵 같은 물건 있다. 결혼 20년차, 혼수로 해왔던 귀한 접시가 원반으로 보이고 어느 순간 코골며 자는 남편의 뒷통수가 과녁이랑 혼동이 될 때, 명색이 시어머니가 해주신 물건인데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럴 때 공공박스를 이용하면 유용하게 사용할 분들과 중매를 해줄 수 있다.

추수의 계절 가을을 맞아 장터가 얼마나 풍성하고 넉넉했는지 더 이상 표현할 수 있는 사진이 있을까? 공공박스 수레가 슬슬 나서기 시작한다.
▲ 공공박스 시동을 걸다 추수의 계절 가을을 맞아 장터가 얼마나 풍성하고 넉넉했는지 더 이상 표현할 수 있는 사진이 있을까? 공공박스 수레가 슬슬 나서기 시작한다.
ⓒ 강북자원순환네트워크

관련사진보기


기증하기 딱 좋은 날씨네

공공박스는 풀어 말하면, 강북구에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재사용매장과 강북구사회적경제지원단 등이 함께 뜻을 모아 만든 강북자원순환네트워크(이하 강자네)의 기부문화 활성화 서비스이다. 강북구를 중심으로 시범 운영하고 있는데, 활성화되기만 한다면 주위 다른 구로 확장하겠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다. 내가 기증한 물건을 어떻게 하면 사회적가치를 가진 곳에 보낼 수 있는지 클릭 몇 번이면 가능하다. 막연히 기증하면 좋은 일에 쓰이겠지, 하는 데에서 한 말 더 나아가 동참하면서 자연스럽게 기증의 의미와 재사용의 가치를 체득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문제는 어떻게 주민들의 동참을 끌어내는지 하는 점이다. 아직은 그리 알려지지 않아 주민들의 참여율이 높은 편은 아니다.

"장터하기 딱 좋은 날씨네." 18일(토) 아침 9시,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아래, 강북구 북서울 꿈의숲 점핑분수대 주변으로 쫙 펼쳐진 초록색 천막 40동을 보면서 나온 말이다. 강북구 대표 장터라 할 수 있는 '더불어사는세상 꿈의장터' 이른바 더사세장터다. 이날 장터에 나오겠다고 한 주민이 120팀에 달해 제비뽑기해서 선별해야 하나, 행사진행팀은 고심을 하기도 했다. 올해 마지막 장터라 신청자들을 모두 받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렇다면 주민들과 직접 만나 공공박스를 홍보하기 딱 좋은 때이다.

장터를 차로 돌 수는 없는 노릇, 짐수레와 재생자전거를 꾸며서 재사용 친환경 공공박스 합체 자전거를 만들었다. 지도 역시 행거를 활용해 이동성을 높였다.
▲ 공공박스가 달린다! 장터를 차로 돌 수는 없는 노릇, 짐수레와 재생자전거를 꾸며서 재사용 친환경 공공박스 합체 자전거를 만들었다. 지도 역시 행거를 활용해 이동성을 높였다.
ⓒ 강북자원순환네트워크

관련사진보기


더불어사는세상 꿈의장터 

그렇다면 강북구주민들과 자원순환을 주제로 만날 수 있는 가장 크면서도 마지막 행사에서 어떻게 알릴 수 있을까. 장터 배치도를 보니 둥글게 자리잡은 천막 구성 자체로 딱 강북구 지도다. 정말 똑같냐? 따져 물으면 할 말 없지만,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장터 구성이 딱 지역 사회적경제 축약판인 셈이다. 주민들이 강북구 중앙에 있는 오패산인 양 분수대를 가운데 놓고 빙 둘러 자리를 잡고, 그 밖으로 자활센터, 마을기업, 마을모임 등등 사회적경제를 이루는 단체 20곳 넘게 있다. 그중에 재사용 가게는 말할 것도 없고, 수제 목공탁자도 팔고, 100% 국산콩으로 만든 두부도 팔고(알콩달콩즉석두부), 방치되었던 자전거도 고쳐서 팔고(그린페달), 청년예술단체(문화예술커뮤니티 동네형들)도 있고, 유기농으로 키운 유정란과 닭죽(겨자씨들의 둥지)은 최고였고, 강북마을방송국에 동네 스타들의 공연도 이어졌다.

재사용운동을 알리는 방식은 다양하다. 과자봉지, 라면봉지로 나비를 접는 되살림아티스트 '생활의 달인' 장복자 전 전국녹색가게운동협의회 대표가 체험과 전시를 맡았다.
 재사용운동을 알리는 방식은 다양하다. 과자봉지, 라면봉지로 나비를 접는 되살림아티스트 '생활의 달인' 장복자 전 전국녹색가게운동협의회 대표가 체험과 전시를 맡았다.
ⓒ 강북자원순환네트워크

관련사진보기


나름 형태를 갖추었다고 보고, 의미 부여도 거창하게 했으니 홍보할 꼴을 갖춰야 한다. '44로 돌아온 당신의 방심한 틈을 노리는 66의 흔적, 옷장을 열고 공공박스 기증!', '"오늘만 먹고 내일부터 뺄래." 당신의 다이어트, 땀 빼지 않고 실천하는 방법', '"아들놈 키가 10cm나 컸지 뭐요. 허허." 말로 하지 않고 교양 있게 자랑하기' 처럼 눈에 쏙 들어오는 문구 20개를 뽑아 현수막을 만들어 천막마다 달았다. 장터에 오면 보기 싫어도 보는 식이다. 물건을 팔겠다고 온 사람들 머리 위에 기증하란 얘기를 써놨으니 기가 찰 노릇일 수 있지만, 오늘 나온 대부분 참가자들이 가족, 연인, 친구 단위로 즐기러 온 판매자이자 소비자이고 또 기증자이기도 하다.

문구 하나에도 삶의 애환이 드러나도록, 참가자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도록 고심을 거듭했다.
▲ 공공박스 현수막 혹은 포스터 혹은 문구 하나에도 삶의 애환이 드러나도록, 참가자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도록 고심을 거듭했다.
ⓒ 강북자원순환네트워크

관련사진보기


공공박스가 왔어요. 날이면 날마다 오느냐, 그럼요, 와요.

실제로 공공박스 트럭이 강북구를 돌며 기증을 받듯이, 이들 사이를 누비면서 공공박스가 돌면 되겠다 싶었다. 장터 규모가 크다 한들 천막 사이를 차가 다닐 수는 없는 일이다. 강자네 공공박스는 참가자가 배정받은 부스(고유 번호)를 가정집이라 상상하고, 그 자리에서 편하고 쉽게 공공박스(oobox.kr)를 참여할 수 있도록 마이크를 잡고, 특별 제작한 공공박스 수레를 끌고 다녔다. "공공박스 기증 받습니다. 기증을 하고 싶다, 하실 때는 돌아다니는 공공박스를 부르면 달려갑니다. 기증처를 정하시면 오늘 이 자리에 같이 참여한 재사용가게에 싱싱하게 직송 배달합니다."

개시도 못했는데, 저건 뭐지? 하는 눈치다. 이럴 때는 멘트를 바꿔줘야 한다. "기증을 하시면 유기농설탕으로 만든 솜사탕을 무료를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공공박스 연필을 드립니다!" 그냥 가면 1천원을 내고 나무젓가락 솜사탕을 받지만, 공공박스 주소가 적힌 연필을 들고 가면 무료로 만들어주기로 재생자정거를 판매하는 '그린페달'과 사전에 얘기를 해놓은 바다. "기증품을 받을 재사용매장은 지역에서 장애아동 지원, 일자리 창출 등 사회적가치를 실현하는 곳입니다. 여러분의 참여가 솜사탕처럼 지역을 풍성하게 만듭니다."

돌지 않아도 따뜻하게 기증은 이어졌다. 참고로 기증은 자발적이었다! 소녀가 꼭 쥐고 있는 인형은 무사히 되돌아갔다.
▲ 주차한 공공박스에도 기증이! 돌지 않아도 따뜻하게 기증은 이어졌다. 참고로 기증은 자발적이었다! 소녀가 꼭 쥐고 있는 인형은 무사히 되돌아갔다.
ⓒ 강북자원순환네트워크

관련사진보기


아이들이 탄다, 어른들이 본다!

장터를 여기저기 도는 와중에 마침 어머니 한 분이 관심을 보였다. 기증 1호다. 어른 키만하게 뽑은 '강북구사회적경제안내도'를 끌고 왔다. 이 지도는 말처럼 강북구 안에 재사용매장을 비롯해 사회적경제를 이루는 단체가 어디에 있는지 발품을 팔아 조사해서 만든 지도이다. "수유1동에 사세요? 그럼 근처 어디에 재사용매장이 있는지 찾아보세요." 지도에 재사용매장은 어딘지 찾아보고, 그곳이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 곳인지 침이 튀게 설명을 했다.

운동화 한 켤레를 기증한 이 소년의 선택이 마대자루로 6포대에 이르는 기증의 릴레이를 이루었다. 기증의 첫 발, 기증의 첫 신발이다.
▲ 기증의 첫 발을 떼다 운동화 한 켤레를 기증한 이 소년의 선택이 마대자루로 6포대에 이르는 기증의 릴레이를 이루었다. 기증의 첫 발, 기증의 첫 신발이다.
ⓒ 강북자원순환네트워크

관련사진보기


그렇게 빈 수레에 신발 한 켤레를 달랑 싣고, 부스로 돌아왔다. 하지만 초조하지 않다. 초반부터 승부가 날 리가 없다. 기증은 장터 막판에 이뤄지기 마련이다. 자전거에 수레를 달고, 장터를 돌았다. 그 모양새가 재미있어 보였는지, 아이들이 쪼르르 와서 타보겠단다. 오늘은 공공박스 자전거 타기 딱 좋은 날씨가 아닌가. 빙빙 돌기만 해도 홍보이기도 하지만, 시민운동은 이처럼 재미가 있어야 한다.

그렇게 깜박 잊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타고 다니다 온 공공박스 수레를 보니 뭔가가 실려 있다. 오호!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만선의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오후 1시가 넘어가면서 가만히 세워놔도 기증품을 들고 찾아오기 시작했다. 오는 족족 노트북을 들고 가서 공공박스 홈페이지를 소개하고 직접 시연하도록 유도했다. 클릭! 한 번에 팝업 창이 뜨고, 주소, 연락처, 물품, 기증날짜를 적으면 끝!이라 아이들도 곧잘 따라한다. 심지어 공원으로 운동 나왔다가 눈이 마주친 멕시코 교환학생 처녀와도 손짓발짓 마임으로 설명하니 뭔 말인지 이해하고 실제로 해본다. (아쉽게도 외국어대학교 기숙사에 있어, 공공박스가 가지 못한다고 설명을 했다고 생각한다.)

운동 왔다가 난데없이 강북구 지도를 보고 있는 멕시코 처자. 한국온 지 3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다.
▲ 멕시코 여인 봉변 당하다 운동 왔다가 난데없이 강북구 지도를 보고 있는 멕시코 처자. 한국온 지 3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다.
ⓒ 강북자원순환네트워크

관련사진보기


공공박스에 차고 넘치는 기증의 물결

부스참가자로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동네 친구 김도연(13 강북구 수유동) 양과 정수빈(13 강북구 수유동) 양이 두 손 가득 옷가지를 들고 왔다. 장사에는 소질이 없는지 모르겠지만 생각만큼은 아주 꽉 찬 친구들이다. "오오~ 이렇게 많이 기증하는구나. 가지말고 잠깐 어디 사니?" "요기 요기요." "저도요." 동네에 '함께웃는가게'라는 재사용가게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수익금으로 장애를 가진 친구들을 위한 기금으로 쓰인다는 건 몰랐단다.

재사용 경제도 이해하고, 남은 물건은 기증도 하고, 동네에서 재사용매장을 찾아보고, 마무리로 공공박스와 찍고~
▲ 판매기증의 아름다운 순환이여 재사용 경제도 이해하고, 남은 물건은 기증도 하고, 동네에서 재사용매장을 찾아보고, 마무리로 공공박스와 찍고~
ⓒ 강북자원순환네트워크

관련사진보기


장터가 끝날 즈음, 스피커를 손으로 들고 다니자니 무거운 참에 잘 되었다며, 장터지기가 공공박스 수레를 빌려갔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장터 마감을 알려야 하는데, 자꾸만 되돌아온다.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이 자꾸만 수레에 물건을 싣는단다. "무거워서 끌고 다닐 수가 없네." 공공박스가 장터를 도는 내내, 의류, 장난감, 책, 신발, 모자, 시계 등등 먹거리를 제외하고 장터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물품이 수레에 담겼다. 그 수량만 500여 점에 이르니, 정리하는 데에 엄두를 못내고 있다. 기증 받은 물건은 정성스레 분류를 하고, 예쁘게 정돈하여 널리 자랑을 한 뒤에, 장터에 참여해 수고한 녹색가게, 마을꿈터, 민들레가게, 함께웃는가게에 전달할 것이다.

기증을 하면서 한 컷! 기증을 어디를 통해서 했는지 기증 사진을 들고 한 컷!
▲ 찍고 또 찍고 기증을 하면서 한 컷! 기증을 어디를 통해서 했는지 기증 사진을 들고 한 컷!
ⓒ 강북자원순환네트워크

관련사진보기


공공박스 홈페이지를 열고 지역주민들과 만나는 자리가 이날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 정도 호응을 얻을지 예상하지 못했다. 어느 장터이든 행사를 마무리할 즈음이면 운영부스에 기증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공공박스 서비스를 알고, 의미를 공유하고, 동참할 수 있었다는 데에 가슴이 뜨겁다. 얼마나 많은 주민들이 집으로 돌아가 공공박스를 검색하고 클릭해서 글도 읽고, 기사도 보고 또 실제로 동참할 지는 두고 볼 일이다. 아무쪼록 공공박스의 가치에 기꺼이 기증으로 호응을 해주신 주민들에게 정말로 감사드린다. 분명한 점은 자원순환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실천하기 위해 꼭 필요한 서비스라는 점이다. 돌아보면 10월 18일은 기증품 주고받기에 좋은 날씨였다. 공공박스는 비가 오는 날도 눈이 오는 날도 돌고 돈다.*

* 강북자원순환네트워크(공공박스 기증 문의 070-8879-0083) : 녹색가게, 마을꿈터, 민들레가게, 살림, 아름다운가게, 행복플러스, 함께웃는가게, 강북구교복지역생산공동구매추진단, 강북구사회적경제지원단 등

덧붙이는 글 | 공공박스(oobox.kr)란?

어떤 물건이든 기증이 가능하다는 의미에서 '공공'이며, 공공은 공공성[퍼블릭public], 자원순환(∞)을 의미한다. 집에서 공공박스(oobox.kr)로 들어가 클릭만 하면 일정에 따라 집으로 직접 기증을 받으러 가는 서비스 방식이다. 공공박스를 통해 기증한 물건은 복지, 나눔, 장애인 일자리 창출을 위한 기금으로 쓰일 예정이다.



태그:#공공박스, #OOBOX, #자원순환, #재사용가게, #더사세장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