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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의 애환을 담은 KBS <개그콘서트>의 종영코너 '편하게 있어'(2013.08.04.~2014.05.25)에 직장인들은 '폭풍 공감'했다. 회식을 마치고 상사의 집에 간 부하 직원은 일찍 귀가하고 싶지만, 상사는 "편하게 있어"를 연발하며 더욱 힘들게 한다. 우여곡절 끝에 직장을 구했지만, 상사에게 치이고 후배에게 쫒기며 늘 동분서주한다. 카드 값과 보험료, 대출금 이자로 순식간에 사라지는 통장 잔액. 가족 앞에서도 어깨를 펴지 못하고 갈수록 왜소해진다. 이렇듯 누구나 공감할 만한 직장인이 겪는 애환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기자주

한 직장인의 지갑. (자료사진)
 한 직장인의 지갑. (자료사진)
ⓒ 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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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회사는 20일과 25일에 월급을 지급한다. 공무원들은 보통 20일이 월급날이다. 항상 똑같이 적용되는 날짜지만 처지에 따라 그 시간의 느낌은 크게 다르다. 

희한하게도 월급을 주는 쪽에서는 월급날이 너무 빨리 돌아와 원망스럽다. 하지만 월급이 입금되자마자 며칠 내에 돈이 다 빠져나가는 월급쟁이에게, 월급날은 정말 늦게 온다. 아무리 월급이 '사이버머니'가 되어 버렸다고 해도, 만난 지 불과 며칠이나 됐다고…. 그야말로 통장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곳이다. 수많은 출금 흔적을 보면 그나마 '마이너스'만 되지 않으면 다행이지 싶다.

월급이란 늦게 주고 싶어 미룰 수 있고, 빨리 받고 싶어 앞당길 수 있는 흥정의 대상이 아니다. 법으로 정해진, 일정 기간 제공한 노동의 대가다. 직원은 성실히 일하는게 의무이고, 회사는 제때 월급을 주는 것이 의무이자 책임이다. 갑자기 월급이 나오지 않았다고 상상해보라. 월 단위로 돌아가는 모든 봉급생활자들의 패턴은 곧바로 깨지고 만다.

월급이 밀리기 시작하면서...

신혼 초, 사회 초년병 시절이었다. 새로 입사한 건설회사는 큰 규모치고는 참 가족적인 분위기로 느껴졌다. 하지만 그 느낌은 딱 거기까지였다. 끔찍한 악몽을 경험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입사 6개월이나 지났을까? 제 날짜보다 조금 밀려 지급되던 월급이 몇 달씩 밀리기 시작했다. 의욕적으로 시작한 직장 생활은 기대와 달리 점점 지쳐갔다.

사장의 친인척 직원들이 가장 먼저 짐을 싸 회사를 떠났다. 견디다 못한 동료들이 한두 명 더 나가자 사무실 분위기는 냉랭해졌다. 이후 3개월 뒤 설 연휴가 다가왔다. 그해 겨울은 내 인생에서 가장 춥게 느껴졌다. 5개월째 밀린 월급이 나오기를 기다렸지만... 빈손으로 가족들을 만날 생각을 하면 한숨부터 나왔다.

내가 무슨 자원봉사자도 아니고, 이젠 그만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여기서 그만 두면 그나마 밀린 월급도 못 받을까봐 그러지도 못했다. 아마도 내 빚쟁이 인생은 이때부터 시작되었으리라. 월급이 아무리 통장에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이라지만, 그것마저 없어지자 비로소 인생의 쓴맛이 시작됐다.

신용카드 이미지
 신용카드 이미지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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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피폐해지고 정신은 산만해지고 한숨으로 땅이 꺼지고…. 생활비로 쓴 카드빚은 어느새 밀린 월급의 두 배 이상으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다행히 남은 직원들끼리 노무법인을 통해 소송을 진행했고, 반 년 가까운 시간 끝에 승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장은 그동안 재산을 이미 다 빼돌리거나 타인 명의로 돌려놓아 밀린 월급을 받는 일은 정말 산 넘어 산이었다. 사회초년생 시절이라 밀린 월급에 대한 트라우마는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끔찍하게 남아 있다. 

일 시킬 땐 그렇게 부리더니...

지난 12일 방송된 KBS <개그콘서트> '렛잇비'(송필근, 박은영, 이동윤, 노우진)는 '가족같은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들의 고충을 노래로 표현했다. 송필근은 "가족같은 분위기, 최고의 복지환경, 사원을 먼저 생각하는 회사"라고 신규 채용 공고를 노랫말로 불렀다.

그러나 부하직원들은 "낚시질 낚시질~"이라고 반문하며 "사장을 먼저 생각하는 회사"라고 입을 모았다. 또 부장에게 "내가 사랑하는 거 알지?"라는 뜻밖의 고백을 받았지만, 결국에는 "일 다 해놔"라는 말을 남기고 퇴근하려 한다. 또 "가족끼리 어딜 가느냐!"라며 직원들에게 회식을 제안한다. 부하 직원들은 할 수 없이 부장의 말에 따라야만 했다.

흔히 '가족같은 회사'라는 말은 직원 관계가 끈끈하고 우애가 깊어 단단하게 뭉칠 수 있는 조직이라는 의미로 쓴다. 가족같은 회사? 참 좋은 말이다. 하지만 엄연히 따진다면 직장은 돈을 버는 곳이지, 결코 집이 될 수 없다.

가족같은 회사란 직원과의 약속을 지키는 회사 즉, 월급 제 때 주는 회사다. 회식 많이 시켜준다고 쉽게 가족같은 회사라고 말하면 안 된다. 사장이 직원들을 자상하게 대한다고 해서 가족같은 회사는 더더욱 아니다. 그건 경영자의 개인적인 취향이자 스타일일 뿐이다.

오리려 일 시킬 땐 '가축'처럼 부리고, 월급이 밀리면 '우리는 가족'임을 유난히 강조하는 회사도 있다. 월급 안 주는 사장들의 상투적인 수법 중 하나가 "나도 정말 힘들다, 오죽하면 안 주겠느냐"고 하는 하소연이다. 오직 본인의 고통만 이야기한다. 직원의 고통은 이미 안중에 없다.

직원이 노동관청 이야기라도 꺼낸다면 오히려 "억울하다, 내가 그렇게 잘해줬는데... 가족같이 생각했는데..."라고 항변한다. 정말이지 가족같은 회사라면서, 가족끼리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아도 월급쟁이의 삶은 늘 팍팍하다. 치솟는 물가 속에 오르지 않는 것은 오직 월급 아니던가.

포악한 사장이라도 월급 꼬박꼬박 챙겨주는 회사는 다닐 수 있다. 하지만 가족같은 회사라도 월급 약속 못 지키는 회사는 결코 다닐 수 없다.

"나도 힘들다"는 사장... 직원들은 생계가 달려 있다

한 회사가 경영 악화로 폐업위기에 처하자 거래처 줘야 할 밀린 돈은 미루고, 우선 사장 집과 차부터 팔고 카드대출까지 받아 직원들 퇴직금과 밀린 급여를 해결했다. 원룸을 전전하던 사장은 마음을 굳게 먹고 그 다음해에 다시 재기하고 회사를 열었다. 그러자 그때 나갔던 직원들이 모두 스스로 다시 돌아왔다. 이런 게 진정한 가족같은 회사다.

월급은 직장인들의 피와 땀과 눈물의 대가다. 그러기에 절대 건드리지 말아야 할 마지막 보루다. 직원 월급을 건드리는 순간 이미 그 회사는 존재가치를 상실한 것이나 다름없다. 일 시킬 땐 시키고, 줄 것은 제대로 주는 회사에 매력을 느끼지 않을 직장인은 아마 없으리라. 줄 돈 제대로 주는 게 직원들을 잘 챙기는 길이고, 그게 가족같은 회사다.


태그:#월급, #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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