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수 감독과 SK 와이번스의 파란만장했던 '8년 동거'가 막을 내렸다. SK 구단은 21일 보도자료를 통해 김용희 육성총괄과의 2년 계약을 체결하며 이만수 전임 감독과 결별을 선언했다.

이만수 감독과 SK의 인연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역 시절 '헐크'로 불리며 당대 최고의 스타플레이어로 명성을 떨쳤던 이만수는 현역 은퇴 후 한국야구인으로는 드물게 미국 프로야구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불펜코치로 활약하며 지도자로서 경험을 쌓았다. 이만수 감독의 스타성과 경력에 주목한 SK가 수석코치직을 제안하며, 이 감독은 1997년 삼성에서 현역 은퇴 이후 9년 만에 지도자로 금의환향했다.

김성근과의 '잘못된 재회'

 SK 이만수 전임 감독

SK 이만수 전임 감독 ⓒ 연합뉴스


당시 SK는 김성근 감독-이만수 수석코치 체제를 가동하며 성적과 재미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스포테인먼트'를 표방하던 시기였다. 리빌딩에 능한 백전노장 김성근 감독이 팀 재건의 초석을 닦아놓으면 2~3년 뒤 이만수 코치가 감독 수업을 거쳐 자연스럽게 지휘봉을 물려받는 수순이 당초 SK가 생각했던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성격도, 철학도, 세대도 전혀 다른 두 명의 지도자를 억지로 연결 시킨 것은 장기적으로 오히려 모두에게 불행의 씨앗이 됐다. 두 사람은 김성근 감독이 삼성 사령탑 시절이던 1991~1992년 사제지간으로 먼저 인연을 맺은 적이 있다.

김성근 감독은 이만수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홈런 세리머니를 금지 시키는 등 길들이기에 나섰다. 엄격한 원칙주의자였던 김 감독은 이미 선수 시절부터 이만수의 튀는 언행을 못마땅하게 여겨왔다. 김 감독이 성적 부진과 구단과의 갈등으로 2년 만에 물러나게 됨에 따라 두 사람의 첫 번째 인연은 짧게 끝났다.

두 사람의 진정한 악연은 감독과 수석코치로서 재회한 SK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김성근 감독은 SK 지휘봉을 잡을 때만 해도 '한물간 감독'으로 여겨졌지만, 부임과 동시에는 SK를 일약 리그 최강팀으로 발돋움시키며 '야신'으로 거듭났다. 이전까지 지도자 인생에서 우승 경험이 전무하던 김성근 감독은 SK에서 3번의 한국시리즈 우승과 1회의 준우승을 이끌어내며 구단이 생각했던 이상의 엄청난 성공을 가져다줬다. 한편으로 이는 동시에 새로운 갈등의 불씨 또한 가져왔다.

김성근 감독의 전성기는 역설적으로 이만수 수석코치에게는 암흑기였다. 수석코치는 보통 감독의 복심으로 일컬어지지만, 처음부터 김 감독의 의지와 무관하게 선임된 인사였던 이만수 코치는 김성근 감독과는 처음부터 정치적으로 공존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었다. 감독이 팀의 중심이 되는 '일본식 관리야구'에 기반을 둔 김성근 감독과, 선수가 중심이 되는 '미국식 자율야구'에서 영감을 받은 이만수 코치는 야구에 관해서도 물과 기름 같은 사이였다.

두 사람의 불편한 기류는 이미 2006년 김성근 감독이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만수 수석코치의 취임식에 참가할 때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김성근 감독은 훗날 인터뷰에서 "전례 없는 일(감독이 수석코치 취임식에 불려나오는 경우)이었다. SK 구단 측은 처음부터 이만수를 차기 감독으로 앉힐 계획이었다"며 불편했던 속내를 토로하기도 했다.

김성근 감독이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주가가 높아지고 발언권이 커질수록 이만수 코치의 입지는 점점 줄어들었다. 김성근 감독은 SK를 지휘하는 동안 이만수 코치보다도 자신이 직접 데려온 일본인 지도자들을 더 중용했다. 김성근 감독 후반기에는 이만수 코치가 2군으로 두 번이나 인사 조치를 받기도 했다. SK 구단 내부에서는 감독실에서 김성근 감독에게 꾸지람을 듣는 이만수 코치의 모습을 목격했다는 이야기도 자주 들려나왔다. 2010년 한국시리즈 우승 직후에도 몸살 증세로 응급실에 실려 간 이만수 코치의 모습을 볼 수 없었던 것을 두고, 여러 가지 추측성 뒷말이 나오기도 했다.

영원한 평행선일 것 같았던 두 사람의 관계는, 2011년 김성근 감독이 SK 구단과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이만수 코치의 입지도 극적인 전환점을 맞게 된다. 재계약 문제로 구단과 갈등을 빚던 김성근 감독은 급기야 언론을 통해 SK 구단에 먼저 '시즌 후 재계약 포기' 선언을 하게 되고, 구단은 하루 뒤 경질로 맞대응했다.

김 감독은 재계약 논의과정 내내 구단 측이 차기 감독 후보로 내정되어 있던 이만수 코치와 자신을 두고 저울질하려는 태도에 환멸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예상대로 SK 구단은 당시 2군에 있던 이만수 코치를 감독대행으로 승격 시켰다. 국내 복귀 5년 만에 '감독 이만수'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순탄하지 못했던 '정권교체'는 곧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SK의 전성기를 이끈 김성근 감독에 대한 신뢰가 절대적이었던 일부 지지층은 구단의 처사가 '토사구팽'이라며 격렬히 반발했고 팬덤은 양분됐다. 이 과정에서 이만수 대행 역시 구단 측과 결탁하여 옛 스승이자 상사를 몰아낸 꼴로 비쳐지며 안티팬들의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여론을 파악하지 못한 이만수 대행의 경솔한 언행이 오해의 소지를 키운 측면도 있었다.

김성근 전 감독 또한 여러 언론 매체를 통하여 이만수 감독과 SK 구단을 직접적으로 비난하는 내용의 인터뷰를 통해 앙금을 내비치기도 했다. 급기야 홈경기 도중 이만수 감독과 SK 구단에 반대하는 일부 팬들이 그라운드에 난입하여 방화와 소요를 일으키는 불상사도 벌어졌다. 이러한 일련의 '정통성' 논란은 이만수 감독이 SK 지휘봉을 잡은 3년 반 동안 일관되게 팬들의 지지와 팀의 결속을 하나로 묶지 못하는 리더십의 한계로 작용했다.

감독 이만수, '이상'과 '현실' 사이

이만수 감독은 우여곡절 끝에 2011년 팀을 잘 추슬러 준우승을 거뒀고, 정식 감독으로 취임한 이듬해까지 무려 '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대기록을 일궈내며 SK의 전성기를 이어갔다. 비록 새로운 왕조로 등극한 삼성의 아성에 막혀, 전임자처럼 우승의 감격을 누리지는 못했지만 이만수 감독 시대의 SK 역시 여전한 강팀으로서의 위상을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만수 감독의 지휘봉을 잡은 이후의 SK는 서서히 리빌딩의 시기를 맞이하던 팀이었다. 2007년부터 매 시즌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아왔던 후유증이 누적되며 SK는 이미 이만수 감독이 지휘봉을 잡을 때부터 적지 않은 부상자들이 속출하는 상황이었다. 우승 멤버들도 FA와 트레이드 등으로 하나 둘씩 팀을 떠났다. 강도 높은 스파르타 훈련과 스몰볼에 익숙해져 있던 기존의 SK 야구가, 자율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이만수 감독의 스타일로 갑자기 바뀌는 과정에서 혼란을 겪은 부분도 있었다.

이만수 감독도 코치 시절과는 전혀 다른 사령탑으로서의 시행착오를 겪었다. 이만수 감독 부임 이후 도입한 체성분 테스트에서 주축 선수들이 대거 탈락하며 차기 시즌 준비부터 지장을 받는 사건이 발생했다. 일부 선수에 대한 높은 의존도로 혹사 논란이 나오기도 했다.

팀의 또 다른 포수 출신 레전드 박경완의 은퇴 과정이나, 주축 선수들이 FA자격만 얻으면 팀을 떠나는 것을 두고 이만수 감독과 선수들과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팀컬러를 변화하는 과정에서 강한 수비와 불펜으로 대표되는 SK 야구만의 색깔이 흐릿해졌다는 비판도 늘 따라다녔다. 선수와 코치 시절과는 또 다르게, 감독으로서 이만수 감독 특유의 솔직한 언행은 잦은 구설수에 오르기 일쑤였다.

SK에서의 마지막 시즌이 된 2014년은 이만수 감독에게는 고난 그 자체였다. 전 시즌 7년  만에 4강 진출에 실패하며 입지가 급격히 위축된 가운데 이만수 감독은 FA 정근우의 이탈로 인한 전력누수까지 겹쳐 힘겨운 행보를 예고했다.

이만수 감독의 지도력에 직접적으로 흠집을 남기는 사건도 여러 차례 발생했다. 지난 6월 팀의 포수 조인성의 트레이드 문제를 둘러싸고 구단과 갈등을 빚었다. 이만수 감독은 자신의 의사가 무시된 채 이뤄진 트레이드에 분개하며 "소통이 없는 야구는 좋은 야구가 아니다"며 구단의 처사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외국인 선수 대란도 치명타였다. 잔부상과 부진으로 2군행을 통보 받은 루크 스캇은 자신의 기용 문제로 이 감독에게 폭언과 항명을 일삼다 퇴출 당했다. 또 다른 외국인 투수 로스 울프는 개인 사정으로 팀을 이탈하여 미국을 돌아간 후 귀국을 거부했고, 트레비스 밴와트는 팔꿈치 통증으로 자진 하차를 선언했다가 번복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시즌 끝까지 정상적으로 완주한 외국인 선수는 한 명도 없었다. 이는 구단 측의 관리 부실과 함께, 이만수 감독 역시 선수 장악력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평가를 자아내기 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만수 감독은 시즌 중반 한때 8위까지 추락했던 팀을 추슬러 막판 4강경쟁으로 끌어올리는 뒷심을 발휘하기도 했다. 최종전에서 명암이 엇갈리기는 했지만 4강에 진출한 LG와의 승차는 불과 1게임이었다. 시즌 내내 부상 선수들의 속출과 외국인 선수의 연이은 악재로 반쪽짜리 전력에 불과한 SK를 이끌고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저력은 유종의 미로 충분했다.

SK 구단이 이만수 감독과 결별한 것은 어느 정도 예고된 수순이었다. 어차피 올해를 끝으로 계약이 만료되는 데다 일단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로 인하여 재계약에 대한 명분이 약해진 상황이었다. SK 그룹 내부에서는 이미 4강 여부와 무관하게 시즌 중반부터 이만수 감독의 교체 쪽으로 무게가 기울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이만수 감독이 SK에서 쌓은 업적과 공헌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만수 감독의 리더십에 대하여 회의적인 팬들이 적지 않았다. SK로서도 마침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 그동안 많은 흠결과 논란거리를 남긴 이만수 감독을 계속 안고 가기에는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이만수 감독이 SK에 부임하면서 처음 꿈꿨던 '메이저리그식 야구'는 결국 미완성의 실험으로 1막을 내리게 됐다.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레전드 출신으로 줄곧 팬들의 사랑만을 받는 데 익숙한 야구인이었던 이만수 감독에게, SK에서의 지난 8년은 그야말로 천당과 지옥을 오고갔던 시간이었다. 다시 야인으로 돌아간 헐크가 지도자로서 재기할 수 있는 기회는 과연 돌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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