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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순천 남산중학교 도서부 학생들이 진행하는 <책읽는 라디오>코너에 출연했다. 왼쪽부터 임은아, 류지혜, 최현
 지난 18일 순천 남산중학교 도서부 학생들이 진행하는 <책읽는 라디오>코너에 출연했다. 왼쪽부터 임은아, 류지혜, 최현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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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혜원 작가님! 저는 요번에 라디오 방송을 같이 하게 될 최현이라고 하는 학생입니다...(중략)... 저는 16살이고요. 좀 통통하게 생긴 여학생이랍니다. 안경을 쓰고 있어요(시력이 나쁘답니다 ㅠㅠ). 순천 남산중학교에 다니고, 도서부에서 황왕용 선생님 그리고 친구들과 같이 활동하고 있어요.

음... 그리고 같이 방송하게 될 친구들도 소개해 드릴게요. 총 두 명이 있는데 한 명은 키가 작아요. 조용하고 침착한 아이랍니다. 이름은 임은아예요! 또 한 명은 저희 셋 중에서 제일 키가 커요. 이름은 조혜숙이고 은아처럼 조용하답니다~ 선생님도 소개해드릴까요? 이름은 황왕용이고요, 남자 쌤이에요. 외모는... 채소에 비유하자면... 약간 호박? 닮은 것 같기도해요ㅋㅋㅋ'

발랄한 메일 한 통... 이 아이들이 만나고 싶었다

한 달쯤 전이다. 메일함에 반가운 메일 한 통이 도착해 있었다. 순천 남산중학교 최현 학생이 보낸 메일. 귀여움과 천진함 그리고 솔직함이 듬뿍 담겨있는 글을 보니 빨리 만나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순천 남산중학교 독서부 친구들을 직접 만난 것은 지난 18일. 2013년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가 열렸던 순천만 정원 내에 설치된 공동체라디오인 미니 FM 순천만 방송 부스에서였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는 도서부 지도교사인 황왕용이고요. 이쪽부터 최현, 임은아, 류지혜, 박유빈, 조혜숙 학생입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이미 지난 5월과 6월에 한 번씩 방송을 한 경험이 있지만 아직도 떨리는지 친구들의 표정은 다소 긴장돼 보였다.

아름다운 순천만정원에 자리한 지역 미니FM 순천만FM 방송부스
 아름다운 순천만정원에 자리한 지역 미니FM 순천만FM 방송부스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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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방송이 처음이에요. 작가가 되고 싶어서 방송을 꼭 해보고 싶은데 처음이라 너무 떨려요. 연습은 많이 했는데 막상 시간이 다가오니 가슴이 두근거려 죽겠어요."

"저는 오늘이 세 번째고요. 저도 첫 방송엔 무지 떨었거든요. 무슨 소리를 했는지도 모르겠고, 막 실수도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나아지더라고요. 지혜가 처음이라 긴장을 많이 했는데 선생님이 도와주실 거죠?"

책을 읽고, 토론하고, 방송 원고를 쓰는 일 모두를 스스로 하고 있다는 순천 남산중학교 독서부 친구들. 비록 긴장은 하고 있지만 잘 해보겠다는 의지만큼은 누구보다도 대단해 보였다.

"책을 읽고 토론하고 기획해서 라디오 방송을 만든다니까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지요. 하지만 조금씩 흥미를 갖기 시작하더라고요. 순천만 FM이라는 지역 미니 FM 방송에서 아이들이 만드는 라디오에 관심을 가져주셨고, 이렇게 귀한 시간을 내주셔서 방송을 하게 된 겁니다. 처음엔 제 도움 없이 아이들 힘만으로 만들어질 수 있을까 했는데 공연한 우려였더라고요. 기특하게도 정말 잘해요."

독서부 아이들을 지도하는 황왕용 선생님의 자부심도 대단했다. 아이들이 만들어 온 방송용 큐시트를 보니 황 선생님의 자랑이 이해가 되었다. 중학생들이 만든 것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잘 짜인 원고였다.

원고부터 방송까지, 모두 아이들의 힘으로

"안녕하세요? 행복한 습관, 즐거운 몰입, 2014년 순천만 정원 순천만 미니FM 92.5MHz <소리 나는 책, 책 읽는 라디오> 진행을 맡은 임은아입니다. 오늘은 평범한 주부에서 작가가 되신 김혜원 작가님을 모시고 이야기 나눠볼 텐데요, 그전에 함께 진행할 친구 조혜숙 학생과 최현 학생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혜숙이랑 은아와 함께 독서부에서 열혈 활동을 하고 있는 최현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번 방송을 합해서 총 3번 출연을 하고 있는데요, 이번에는 독서부를 지도하고 계시는 선생님의 도움 없이! 저희끼리만 라디오를 진행해 보려고 합니다. 라디오 방송을 듣다가 이상한 부분이 있더라도 그냥 눈감고 넘어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하"

첫 방송이라 긴장한 탓인지 혜숙이의 목소리가 작고 떨리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방송을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소녀처럼 깔깔 웃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호기심 가득한 질문을 던지고... 가끔 실수로 살짝 얼굴을 붉히기도 하면서 그렇게 방송은 물 흐르듯 흘렀다.

책 속에 등장하는 장애를 가진 아이나 그들의 부모 혹은 형제가 되어 그들의 입장에서 쓴 글들을 읽어주는 '내가 만일' 코너는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정말 마음으로부터 장애아와 그들의 가족과 공감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기 때문이다.    

순천 호수정원. 영국의 유명한 정원디자이너 찰스젱스가 디자인한 정원.
 순천 호수정원. 영국의 유명한 정원디자이너 찰스젱스가 디자인한 정원.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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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현 학생이 써주셨네요.

제목은 '내가 만약 세준이 누나가 된다면'입니다. 한 번 읽어볼게요.

내 앞자리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세준이를 생각해 본다.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그려주고 있는 내 동생. 동생이 태어나고 나서 나는 약간의 찬밥 신세가 되었지만 또 다르게는 아주 멋있고 그림을 잘 그리는 동생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맨 처음 본 동생은 아주 자그맣고 힘겨워 보였는데 벌써 이렇게 커서 내 모습을 그려주고 있다. 지금보다 조금 더 어렸을 때는 동생이 밉기도 하고 동생이 장애인이라고 놀림을 받을 때는 창피해서 울기도 많이 울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후회가 된다.

내 앞에서 나를 그리면서 저렇게 멋있는 얼굴로 진지하게 바라보는 세준이를 볼 때마다 약간의 미안한 마음이 든다. 세준이랑만 놀고 나는 안 놀아주는 엄마, 아빠를 보고 나는 질투심에 괜히 세준이에게 화를 낸 적도 있다. 그랬던 나를 생각하면 아직도 얼굴이 붉어진다.

세준이가 내 동생으로 와 준 것 만으로도 큰 축복이었는데... 세준이만으로도 힘들 텐데 나까지 사춘기 때 말썽만 부려서 엄마에게 너무 죄송하다. 항상 세준이 생각, 엄마 생각보다는 내 생각을 더 한 것 같다. 곧 있으면 엄마가 들어오실 텐데 엄마를 위해 집이라도 치워놓고 세준이랑 놀아줘야겠다. 정말 정말 잘생기고 귀여운 우리 동생, 아직도 예쁘고 멋있는 엄마, 가족의 큰 힘이 돼 주신 아빠, 그리고 세준이의 누나인 나! 모두 파이팅!"

순천 남산중학교 도서부에 박유빈, 조혜숙, 류지혜, 최현, 임은아
 순천 남산중학교 도서부에 박유빈, 조혜숙, 류지혜, 최현, 임은아
ⓒ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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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병 이겨내는 힘

고등학교 입학 준비와 코앞의 중간고사, 선행학습... 종일 학원, 학원, 학원으로 이어지는 삶을 사는 도시의 중학생들은 '중2병'이라는 몹쓸 병(?)에 걸리곤 한다. 순천 남산중학교 독서부 학생들은 사뭇 다르다.

높은 가을 하늘을 만끽하며 넓은 순천만 정원에 앉아 책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꿈과 미래를 이야기한다. 참으로 비교되는 장면이다. 불행한 것은 마땅히 중학생으로 누려야 할 것들을 누리고 바라는 것을 꿈꾸고 있는 순천중학교 독서부 학생들이 특별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가을.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그 시절부터 아니 내가 알지 못하는 그 이전보다 더 오래된 때부터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했다. 대한민국의 중학생들이여! 이 가을 동안만이라도 교과서와 참고서, 휴대폰과 컴퓨터를 잠시 밀어두고 마음에 드는 책을 한 권 사 들고 자연으로 나가보지 않겠는가. 그렇게 책 속에서 '중2 병'을 이겨낼 꿈도 찾고, 희망도 찾고, 재미와 행복도 찾아보면 어떨까.

지금도 그것을 실천 중인 순천 남산중학교 도서부의 임은아, 류지혜, 박유빈, 최현, 조혜숙 파이팅. 더불어 앞으로 실천하게 될 대한민국의 모든 중학생 파이팅!


태그:#순천 남산중학교, #순천남산중학교 도서부, #순천만FM, #책읽는 라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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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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