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익어갑니다농촌은 지금 가을 수확에 한창입니다. 메주콩, 넝쿨콩, 팥을 거둬 털어서 껍질을 벗기고 햇볕에 말립니다. 햇볕이 좋은 가을 날에 할머니, 엄마, 아이들이 둘러앉아 햇볕에 늘어놓은 콩에 섞인 불순물을 주워냅니다.
훌라후프를 열심히 돌리던 손녀딸도 합세해 일을 돕습니다. 농촌에는 이렇게 가족이 협동해서 가을걷이 하는 정겨운 풍경이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학교 방과 후에 혼자서 학원으로 가거나 혼자 스마트폰 갖고 노는 일이 많습니다.
이에 비해 농촌에서 아이들이 정서적인 체험을 하는 것은 인성 발달에 매우 도움이 됩니다. 먹거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 식탁에 오르는지 알게 되면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고, 가족이 함께하는 일에 동참하면서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우리 동네 한 바퀴를 돌다가 귀촌 초기에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시던 이웃 형님댁을 잠깐 들렀습니다. 형님은 마침 논둑에 심은 팥을 거두어 일부는 마당에 말리고, 선풍기 바람에 검불을 날리고 있었습니다. 시골집 수리 하는 일을 도와주시고, 마당 대비자루 등을 얻어다 주시며 열심히 살라고 격려해주셨던 고마운 분입니다.
어느 아주머니는 집 앞에서 율무를 햇볕에 늘어놓고 막대기로 율무 단을 두들겨서 알갱이를 털어내고 있습니다. 농촌 아낙들은 틈나는 대로 집안 농사일을 하면서도 인근의 대농장 하우스에 가서 일하고 일당을 벌어 옵니다. 50대 젊은 사람들은 공장에 가서 일하면 한 달에 200만 원 이상 벌기 때문에 일요일이나 아침저녁으로 텃밭 일하면서도 부지런히 돈 벌러 다닙니다.
어느 농가에서는 껍질을 벗기지 않은 벼에 싹을 틔워 햇볕에 말려서 엿기름을 만들고 있습니다. 두부 콩을 까서 말립니다. 내년 6월 '이른 마늘'을 수확하기 위해 검정 비닐을 씌우고 마늘을 벌써 심는 동네 아주머니도 보입니다. 이분은 오랫동안 동네 부녀회장님을 하신 분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닙니다. 집 앞에 배추, 무, 파, 마늘을 심어서 먹거리를 재배합니다.
아래 할머니는 텃밭에서 기른 아욱을 경로당에서 국을 끓여 먹기 위해 나누신다고 합니다. 농촌에는 팔순을 훨씬 넘긴 할머님들이 손수 기른 채소를 이웃과 나누어 먹습니다. 어느 집 벽 옆에는 화목 보일러용 겨울 땔감을 미리 쌓아 놓았고, 들깨를 털고 난 단이 세워져 있습니다. 둘둘 말린 멍석이 농기계 위에서 쉬고 있는 풍경도 있습니다.
시골집 앞에는 다정하게 놀던 꽃닭 부부가 낯선 사람을 보고 잔뜩 몸을 움츠립니다. 신기하게도 수탉이 암탉을 작은 몸으로 가리며 경계 태세를 갖춥니다. 귀여운 토끼 가족들도 오손도손 모여 사람 구경을 합니다.
이웃집 앞마당의 항아리에서는 촌아낙의 손맛이 담긴 된장과 간장이 익어갑니다. 창고 처마 밑에 매달아 놓은 마늘이 탐스러운데요, 마늘 일부는 일 년 내 농가의 양념이 되고 나머지는 다음 해의 씨앗이 됩니다.
넓은 밭에 심은 쪽파는 김장철을 대비해 푸르게 자랍니다. 해질녘 동네 한 바퀴를 돌다가 경로당 앞을 지나갑니다. 봄, 가을 농번기에는 노인들도 농사일을 하느라 경로당에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농번기가 끝난 후엔 노인분들이 모여서 점심도 만들어 먹고 한가로운 시간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