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고(故) 이창훈 한국지엠 사무지회장 약력
1995 대우자동차 입사 
2000 사무노위 1기 대의원 
2003 사무노위 3대 사무국장 
2005 사무노위 4대 사무국장 
2005 사무지부 창립 발기인 및 사무국장 
2007 사무지부 2대 부지부장 
2008 사무노조 합법화 투쟁으로 정직 징계 
2011 사무지부 3대 지부장 및 한국지엠지부와 통합 완성 
2011 사무지회 3대 지회장 
2013 사무지회 4대 지회장
 고(故) 이창훈 한국지엠 사무지회장 약력 1995 대우자동차 입사 2000 사무노위 1기 대의원 2003 사무노위 3대 사무국장 2005 사무노위 4대 사무국장 2005 사무지부 창립 발기인 및 사무국장 2007 사무지부 2대 부지부장 2008 사무노조 합법화 투쟁으로 정직 징계 2011 사무지부 3대 지부장 및 한국지엠지부와 통합 완성 2011 사무지회 3대 지회장 2013 사무지회 4대 지회장
ⓒ 한만송

관련사진보기

이창훈(사진)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지엠지부 사무지회장이 지난 20일 끝내 운명했다.

고인은 지난 달 29일 노조 임원회의를 마치고 노조 간부들과 밤늦게까지 회사와 지역의 각종 현안 등을 논의했다. 30일 새벽 1시 30분께 귀가 길에 올랐으나 차량 전복사고를 당했다. 인적이 드문 곳이라 사고 후 바로 병원으로 후송되지 못하고 오전 6시께 운동 중인 주민 신고로 길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장기 출혈로 위중한 상태였으나, 긴급 치료와 자연지혈로 일단 고비를 넘겼다. 하지만 검사 결과 의식 불명, 장기 손상, 뇌출혈, 다수 골절 등 큰 부상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의식이 깨어나기만을 기다렸지만 상태는 악화됐고, 20일 오전 11시 40분에 끝내 운명했다.

고인은 1995년 대우자동차에 입사했고, 2000년 사무노위 1기 대의원으로 선출돼 노조 활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했다. 사무노위와 사무지부 사무국장과 지부장을 거쳐 2011년 사무지부와 한국지엠지부 통합 후 사무지회 3대 지회장으로 선출됐다. 지난해 9월 4대 지회장으로 또 선출돼 사무지회를 이끌어왔다.

고인은 특히 사무지회 지회장으로서 사무직 성과급 지급과 사무직에 대한 차별 철폐를 이끌어냈다. 또 생산직 노조와 사무직 노조 통합을 이끌어냈고, 한국지엠의 생산 물량 확보 등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유가족으로 부인과 아들(중2), 딸(초5)이 있다.

이 지회장의 사망 소식에 회사 동료들과 인천지역 노동계 인사들은 안타까워하고 있다. 인천지역 노동계 인사들과 한국지엠 동료들은 각종 SNS에 이 지회장을 추모하는 글을 올리고 있다. 한국지엠지부는 바로 장례대책기구를 꾸렸고, 노동조합장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 지부는 장례기간을 추도기간으로 선포하고 전 조합원이 추모 리본을 달게 할 예정이다.

장례위원원회는 정종환 한국지엠지부 지부장을 위원장으로, 최응진(수석 부지부장)·최기봉(부지부장)·김성민(정비부품지회장)·이범로(군산지회장)·박상일(창원지회장)씨를 공동부위원장으로 구성했으며, 전직 노조 위원장들을 고문으로 위촉했다.

공동집행위원으론 한홍진(사무지회 부지회장)·이병철(사무지회 부지회장)·김병준(사무지회사무국장)·서길석(지부 사무국장)·임봉규(정비부품지회 사무장)·김구진(군산지회 사무장)·신성목(창원지회 사무장)씨와 각 현장조직(의견그룹) 의장이 맡기로 했다. 아울러 장례 총괄 책임은 현진민(사무지회 수석부지회장)·김상대(사무지회 조직실장)씨가 맡기로 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사인천(isisa.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한국지엠, #한국지엠 사무지회, #이창훈, #한국지엠지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