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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7월 일본의 진보언론 신문 <아카하타>는 커다란 특종을 하나 한다. 원전문제와 관련된 것으로 중단된 원전의 재가동을 요구하는 주민들의 여론이 조작됐다는 것이었다.

규슈 전력의 겐카이 원전은 3·11 대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안전에 문제성이 부각되면서 가동이 중단됐다. 그러나 일부 주민들은 일본 경제산업성이 주최한 '설명 프로그램'에서 전력의 안정화를 위한 재가동을 요구했다.

하지만 신문 <아카하타>는 원전 재가동 여론이 조작됐음을 밝혀냈다. 전력회사 규슈전력이 조직적으로 직원들을 동원하고, 돈을 써서 메일을 보내게 하는 방법으로 거짓 여론을 조성했다. 안전은 뒷전으로 생각한 전력회사의 파렴치하고 부도덕적인 행동이 고스란히 드러난 경우였다.

<아카하타>의 특종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연이어 빛을 발했다. 2011년 8월에는 플루서멀 계획의 이면을 폭로했다. '플루서멀'은 플루토늄이 포함된 연료를 연소시키는 방식이다. 플루토늄은 일반 상업용 원전에서 사용한 핵연료를 재처리해서 추출해 낸다. 방사능 수치가 우라늄보다 훨씬 높아서 사용할 때 작업자의 피폭량이 증가한다. 주변 방출시 주민 건강에 중대한 문제를 끼칠 수가 있다.

전력회사는 이런 위험한 계획에 찬성의견이 많도록 유도했다. 거액의 보상금을 미끼로 지방자치단체들이 계획을 수용하게 하고 전력회사 직원들을 동원해 여론을 조작했다. 원전의 이면에는 온갖 조작과 거짓이 담겨 있었던 셈이다. 신문 <아카하타>는 심층취재를 통해 이를 정면으로 고발한다.

원전 회사 돈 받고 홍보기사 써주는 언론도 한 통속

원전을 둘러싼 원자력마피아의 커넥션을 고발하는 <일본원전대해부>
 원전을 둘러싼 원자력마피아의 커넥션을 고발하는 <일본원전대해부>
ⓒ 당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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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진보언론이 밝혀낸 복마전 같은 원전 사업을 고발하는 책이 있다. 도서 <일본 원전  대해부>는 원전 사업에 대한 고발장이다. 원자폭탄 피해국이 어떻게 원전국가가 됐는지 그 배경부터 시작해 이후의 진행과정을 공개한다.

일본의 원전사업은 정치권력과 언론, 재계가 결탁해 주민들을 볼모로 잡은 것이었다. 일본 원전의 배후에는 정계의 실력자부터 언론사 사주, 경제단체 대표 등이 자리하고 있었고, 이들은 막대한 홍보비를 사용하며 원전 사기의 맨 앞에서 활약한다. 

원자력발전을 추진하기 위해 학교교육이나 언론에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일본 원자력문화진흥재단에는 여론대책 매뉴얼이 있다. 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다.

"정전은 괴롭지만 원자력은 싫다는 이기적인 소리를 하는 것이 대중이다."

<일본 원전 대해부>에서 소개하는 문건에는 아래와 같은 표현들이 있다.

"반복하고 반복해서 홍보할 필요가 있다. 신문기사도 독자들은 3일이면 잊어버린다. 반복해서 기사로 쓰게 되면 홍보효과를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시키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원자력에 호의적인 문화인을 포섭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코멘테이터로 매스컴에 추천할 수 있도록 한다."
"사고가 났을 때 이를 홍보의 찬스로 인식하고 이용해야 한다."
"사고시에 홍보를 할 때는 해당 사고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그 주변에 관한 정보도 흘릴 것. 또한 이때라는 듯이 원전의 필요성 및 안정성에 대한 정보도 흘리도록 한다."
"여름이든 겨울이든 전력소비량의 피크(Peak)시기는 화제가 된다. 필요성 홍보를 위한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문건은 원자력의 필요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역설한다.

"전력회사나 관련기관의 광고에 반드시 원자력은 3분의 1은 원자력이란 문구를 삽입하도록 한다. 크기를 작게 해서라도 어디든 집어넣도록 한다. 어떤 형태로든 머릿속에 남게 된다."
"방사능이 있다는 것은 누구라도 알고 있다. 원자력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가며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좋다."

여기에 예시된 수법들은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원전반대여론이 확산되던 때 원전추진세력 편에 섰던 미디어들이 떠들던 내용과도 일맥상통한다.

이 재단은 매년 원자력 홍보 교육예산으로 60억 엔이라는 막대한 자금을 쓴다, 언론은 그들에게 광고비를 받아 홍보 기사를 써주기도 한다. 반대 운동이 일어나면 '공산당계 반대파'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것도 이들의 방식이다. 

그런데 일본의 사례라고 보기에는 우리에게도 너무 낯익은 장면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일본의 사례 속에서 똑같은 모습의 한국 원자력 홍보가 떠오른다. 그만큼 한국의 원전 추진은 일본의 사례를 그대로 베끼고 있다. '일본 원전 대해부'를 '한국 원전 대해부'로 간주해 읽어도 어색하지 않다.

최근 <뉴스타파>의 지난 11일 보도에 따르면 <조선일보> 등은 원자력문화재단으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고 특집기사부터 인터뷰, 동정기사를 실었다. 일본의 원자력문화진흥재단 역할을 한국은 이름이 비슷한 원자력문화재단이 맡고 있는 셈이다.

수명이 끝난 노후 원전 '고리1호기'와 '월성1호기' 폐쇄를 요구하는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9월 17일 오전 서울중구 20층짜리 프레스센터 외벽에 대형 현수막을 내걸고 내려오는 액션퍼포먼스를 벌였다. 대형현수막을 내걸고 건물 외벽을 타고 내려온 회원 2명은 대기하고 있던 경찰에 연행되었다. 환경운동연합은 전국에서 매월 1회 '탈핵행동의 날'을 지속적으로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수명이 끝난 노후 원전 '고리1호기'와 '월성1호기' 폐쇄를 요구하는 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9월 17일 오전 서울중구 20층짜리 프레스센터 외벽에 대형 현수막을 내걸고 내려오는 액션퍼포먼스를 벌였다. 대형현수막을 내걸고 건물 외벽을 타고 내려온 회원 2명은 대기하고 있던 경찰에 연행되었다. 환경운동연합은 전국에서 매월 1회 '탈핵행동의 날'을 지속적으로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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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원전 중단됐지만 일본 전력난 없어"

후쿠시마 원전사고에서 보듯, 원전은 궁극적으로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한다. 그런데도 원전추진론자들은 온갖 거짓 홍보를 일삼으면서도 사고에 제대로 된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피폭국가였던 일본이 원자력 국가가 된 이면에는 온갖 이권과 얽혀 있는 기득권 세력이 있다. 책은 일본의 사례지만 한국의 상황도 자세히 파헤쳐보면 별반 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부산에 인접한 고리원전은 노후화 된 시설의 안전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자칫 사고가 날 경우 한반도의 남쪽에 엄청난 재앙이 닥칠 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원자력마피아의 입김은 강하다. 가동을 중단해야 할 원전의 수명 연장을 추진한다. 홍보방식뿐만 아니라 대외적로 강조하는 안전 문제는 일본의 방식과 똑같다.

삼척은 지난 9일, 원전 유치 찬반 주민투표에서 대다수가 반대표를 던졌다. 원전 건설에 제동이 걸린 분위기였지만 정부는 주민투표의 법적 효력을 부정하며 예정대로 원전 건설을 강행할 태세다. 지난 13일 열린 국정감사에서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삼척의 주민투표 결과를 수용할 수 없고 정부 입장대로 삼척원전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일본의 원자력문화진흥재단과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는 한국원자력문화재단.홈페이지에 이해 확산, 신뢰 제고, 에너지 교육 등의 주요 사업을 소개하고 있다.
 일본의 원자력문화진흥재단과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는 한국원자력문화재단.홈페이지에 이해 확산, 신뢰 제고, 에너지 교육 등의 주요 사업을 소개하고 있다.
ⓒ 한국원자력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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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추진의 이면에 어떤 커넥션들이 있는지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일본 원전 대해부>를 읽다보면 지금 한국의 상황을 대략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일본 원전 대해부>는 지난 2011년 일본에서 나온 책이다. 이를 한국어로 번역해 옮긴이는 일본에 거주하는 저널리스트, 홍상현 기자다. 한국 일간지에서 근무했던 그는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로서도 활동하고 있다. 일본의 사회과학 월간지 <게이자이>(經濟)의 필진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국내외 방송·언론사의 의뢰를 받아 활동하는 해외취재전문 저널리스트다.

지난 9월 말께,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후쿠시마 원전의 가동이 중단됐지만 일본의 전력난은 생기지 않았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며 "원전이 없으면 큰 위기가 찾아온다고 호들갑을 떨던 게 사실은 사기에 다름없다"고 말했다. 이어 "원전마피아의 이권과 종속의 구조를 좀 더 깊이 파고 들어가는 내용의 책도 올해 안에 변역해 출간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덧붙이는 글 | <일본원전대해부>(신문 <아카하타> 편집국 지음 / 홍상현 옮김 / 당대 / 2014.04 / 1만 3000원)



일본 원전 대해부 - 누가 원전을 재가동하려 하는가

<신문 아카하타> 편집국 지음, 홍상현 옮김, 당대(2014)


태그:#일본원전대해부, #홍상현, #아카하타, #원자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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