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이 11일 경기도 고양시 국가대표 야구훈련장에서 열린 선수단 미팅에서 팀 해체 결정을 선수들에게 알린 뒤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다.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이 지난 9월 11일 경기도 고양시 국가대표 야구훈련장에서 열린 선수단 미팅에서 팀 해체 결정을 선수들에게 알린 뒤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다. ⓒ 연합뉴스


2015년 프로야구 FA(프로야구의 자유계약 선수제도) '최대 어부' 김성근 감독. 그에게 'FA 최대어'라는 호칭이 너무 소박하다. 그래서 최대어를 기르는 '최대어부'라는 수식어가 그 앞에 붙는다.

삼성의 배영수, 안지만, 윤성환, SK 최정, 김강민, LG의 박용택, 롯데의 장원준 등 각 구단에서 관심을 보일 만한 선수들이 올 시즌을 끝으로 FA 자격을 얻는다. 그래도 2015년 프로야구 FA 최대어, 아니 FA 최대 어부는 김성근 감독이다.

FA의 대어 기르는 최대 어부 김성근 감독

그는 SK 와이번스 감독 시절 3번의 한국시리즈 우승과 1번의 준우승을 이끌었다.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SK는 곧 KS (코리안 시리즈)를 의미했다. 다른 팀에게는 절대 만나고 싶지 않은 무적의 팀이었다. 큰 점수 차로 이기고 있어도 타자에 따라서 즉각 투수를 교체했다. 잦은 번트 작전과 압박적인 수비를 하기 때문에 재미없는 야구의 표본으로 불리기도 했다. 경기가 끝나면 다른 팀의 팬들은 김성근표 짠물 야구에 불만을 제기하기 바빴다. 그만큼 그가 건재한 인천 야구는 '최고'였다.

기아 타이거즈에게 한 번의 우승을 내주기는 했지만 한국시리즈에서 SK 와이번스는 막강했다. 끌려가고 있어도 결국 마지막에는 지지 않을 것 같은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2009년 한국 시리즈, 기아 타이거즈 나지완이 터뜨린 9회 말 끝내기 홈런이 그래서 더 극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팀을 떠나지 않는 한 누구도 SK 와이번스를 최고의 자리에서 끌어내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김성근 감독뿐만 아니라 팀의 선수들도 막강해졌기 때문이다.

김성근 감독이 떠난 인천 야구는 생각보다 더 빠르게 무너졌다. 그동안 노(老) 감독은 독립 야구단인 고양 원더스에 머물렀고, 팀이 해체된 지금은 프로야구 해설가로, 강연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그라운드만큼 그에게 잘 어울리는 곳은 없다. 그것은 야구팬과 선수들 심지어 구단 프런트까지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프로야구 감독으로의 복귀는 그렇게 쉽지 않았다. 김성근은 팬들과 선수들이 원하는 감독이지만 구단 관계자와 프런트가 환영하는 감독은 아니기 때문이다.

기대되는 그의 행보

언론에 알려진 것처럼 프로 구단에서의 직접적인 감독 제안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프로 야구 준플레이오프 일정보다 더 뜨거운 것은 김성근 감독의 최종 행선지다. 기아 타이거즈는 선동열 감독과 재계약을 발표했고, 아직 감독 자리가 비어 있는 곳은 한화 이글스, SK 와이번스, 롯데 자이언츠 구단이다. 확인되지 않은 김성근 감독의 목격담이 퍼지기도 하고, 각 구단 홈페이지는 팬들의 간절한 바람으로 가득 채워졌다.

'김성근이 죽어야 김성근의 야구도 끝난다'고 했다. 그가 머문 자리에는 확실한 결과와 눈에 띄게 성장한 선수들이 있다. 구단 프런트가 가장 껄끄러워하는 감독, 선수들을 혹사하기로 악명 높은 감독, 관계자들과 밥 한 번 같이 먹지 않는 냉정한 감독이라는 소리를 들을지 몰라도 김성근은 야구로 모든 것을 증명한다. 2015년 프로야구 'FA 최대어부' 김성근 감독의 내일을 응원한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김성근 감독 김성근 한화 김성근 SK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