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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촉광으로 빛나던 나의 이등병 계급장(좌측)
 오만촉광으로 빛나던 나의 이등병 계급장(좌측)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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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갔다 왔나?"
"행정반 다녀왔습니다."
"엎어!"

D상병은 한마디 묻고는 다짜고짜 '겨늠대'라고 하던 쇠파이프로 내 엉덩이를 두들겨 댔다. 난 왜 맞아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20여 대 가량 맞으면서 자세를 흩트리지 않았다. 뒹굴면서 꾀병이라도 부리며 그 사람의 감정에 호소를 했다면, 덜 맞았을지도 모른다. 그냥 때리는 대로 맞고 싶었다.  

빰빠라 그리고 집합의 추억

요즘 군부대 크고 작은 사건들이 이슈가 되고 있다. 그러면 과거에는 그런 일이 없었고, 최근에 불거진 일들일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과거에는 더 심했다. 노출과 그렇지 않음의 차이겠다.

구타금지. 헛구호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허울 좋은 구호는 내가 군 생활을 하던 1980년대에도 있었다. 불시에 상급부대에서 검열도 나왔다. 지나가는 졸병 아무나 붙잡고 '너 바지 내려 봐!' 이런 식이었다. 허벅지에 멍이라도 보이면 '누구한테 맞았어?'라고 묻곤 했다. '넘어졌습니다.' 그때 난 내가 해야 할 말을 알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넘어졌기에 허벅지에 시커먼 멍이 드나?'라고 묻는 검열반원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그렇게 말해야 했던 건 고참병들의 교육 때문이었다. 어느 병사가 'A병장님한테 맞았습니다'라고 말한 결과, '때린 사람은 7일간 영창을 가고, 맞은 병사는 15일 영창생활을 했었다'는 고참병들의 이야기. (말도 안 되지만) 차라리 넘어졌다고 우기는 게 내게 손해가 없을 듯 했다.

'빰빠라'. 간부들이 병사들에게 저지르는 일종의 횡포였다. 영하 20도가 넘는 겨울밤. 심심한 당직사령은 전 부대원을 팬티 차림으로 연병장에 집합시켰다. 부대원 모두라야, 100명 남짓.

팬티 바람으로 나온 병사들의 위치는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추위를 피하기 위해 모두 살을 맞댄 상황. 맨 가운데엔 병장들이 위치했고 그 다음은 상병... 일병과 이등병들은 원을 둘러싼 주변에서 오들거렸다.

한 시간 쯤 지나 느릿한 걸음의 (하사관인) 주번사관은 물이 든 양동이를 들고 나왔다. 그러곤 돌아가며 조그만 바가지에 물을 담아 팬티 바람의 병사들에게 뿌렸다. 제대가 얼마 남지 않은 병장들에 대한 배려일까. 가운데 쪽으로 물을 뿌리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아무 죄도 없이 졸병이라는 이유로 변두리에 섰던 우리들만 물세례를 받았다.

그렇게 두 시간쯤 지나면 몸에 마비가 오기 시작해 결국 감각이 없어진다. '입실해서 빨리 해골 짱박아!'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내무반으로 뛰어 들었다. '따뜻함이 행복이었구나!' 얼었던 몸이 녹기가 무섭게 잠에 골아 떨어졌다.

누군가 내 머리에 세찬 충격이 가해졌다는 느낌에 눈을 떴다. 눈을 부라린 고참병이 철모를 들고 서있다. 그걸로 내 머리를 후려쳤었나 보다.

"이 새끼가 빠져 가지고, 빨리 포상으로 기어나가!"

이 고참병은 얼굴을 때리는 것으로 나를 깨웠었나 보다. 반응이 없자 화가 난 그는 옆에 있던 철모로 나를 내리쳤다. 이마에 무언가 흥건하게 흘러 내렸다. 그런 게 대수는 아니었다. '대체 빰빠라가 끝난 지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또 집합이야'라는 불만조차 사치였다.

'구름도 울고 넘는 곳, 하나포상' 

우리 모두는 맨 우측에 이등병 그 다음은 일병, 상병, 병장 순으로 섰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군번 순으로 정렬했다. 부엉이가 우는 것으로 보아 새벽 1시가 좀 넘은 듯했다. 그렇게 부동 자세로 20여 분이 지났을까. 말년 병장들이 히히덕 거리며 올라왔다.

"아까 빰빠라 원인이 뭐야? 니들이 꼭 말년 병장을 괴롭혀야 쓰겄냐? 병장들 이리 나와!"

말년들의 권위 때문일까. 아니면 그렇게 하는 것이 위계질서라 생각 했을까. 그들은 바로 아래 군번인 병장들을 구타하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유유히 내무반을 향해 내려갔다.

"상병들 엎어!"

말년에게 맞은 병장들은 상병들에게 분풀이를 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맞은 것 배 이상으로 구타를 가했다. 다음은 상병들이 일병에게 그 다음은 일병들이 이등병들에게... 한 시간이 넘는 공포의 시간. 당시 누군가 '네 소원이 무엇이냐?'라고 물었다면 난 서슴없이 '하루라도 안 맞고 사는 것, 그리고 단 10분이라도 내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여유'라고 말했을 거다.

"요즘 정말 군대 좋아졌다. 니들이 제대하고 사회 나가서 솔직히 뭐 할 거 있냐? 노가다 하느니 차라리 장기복무 신청해라."

인사계는 정신교육을 시킨다는 명목으로 전 부대원들에게 장기복무를 유도했다. 왜 그런 교육을 실시하는 줄 우린 익히 알고 있었다. 병사 한 명이 (장기복무인) '말뚝'을 박으면 인사계는 높은 점수를 받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부사관이라고 하는 장기복무 신청 경쟁률이 치열하지만, 당시엔 아무도 지긋지긋한 군 생활을 희망하는 사람이 없었다. 하사관(지금의 부사관을 당시엔 그렇게 불렀다) 다수는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너 영창갈래, 말뚝 박을래?"

정도가 심한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 선택의 수단은 딱 두 가지로 정해져 있었다. 다수는 사회 나가서 전과자로 사느니 장기복무를 선택했다. 그러니 그들은 군에 대한 애착이 있을 리 만무했다. 병사들 특히 졸병들을 데리고 노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았다.

D상병님 감사 합니다

어쨌든 국방부 시계는 돌았다. 말년 병장시절(우측 사납게 생긴 녀석이 본인임)
 어쨌든 국방부 시계는 돌았다. 말년 병장시절(우측 사납게 생긴 녀석이 본인임)
ⓒ 신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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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맨날 맞고 사느니 차라리 말뚝 박자!"

인사계의 교육이 끝난 후 남들 눈을 피해 행정반으로 들어갔다. 호랑이 같던 인사계가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나를 반겼다.

"평소 내가 본 너는 참 현명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내 생각이 틀린 게 아니었어. 허허허"

인사계가 내민 서류의 빈칸을 메우고 지장을 찍은 것으로 난 말뚝을 박았음을 선언했다. '이젠 하사관 교육을 가겠구나. 그러면 그 지긋지긋한 구타와 집합을 당하는 일은 없겠지...'라는 생각이 들자 이유도 없이 눈물이 흘렀다.

"군대가 그렇게 좋으면 말뚝 박아 새끼야. 안 말려 인마!"

내가 행정반에 들어갔다 온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매질을 그친 D상병은 내게 한동안 욕설을 퍼부은 후 담배를 권했다.

"너 평생 후회한다. 내 말 들어. 지금 다시 행정반에 가서 취하하고 이리로 와!"

행정반에 가서 취하한다고 말한 이후 결과가 어떨지 잘 안다. 고참의 인정어린 충고를 따르는 것이 답인 줄도 알고 있다. 순간을 모면하려는 내 비겁한 선택이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제가 조금 전에 판단을 잘못해서 장기복무를 신청했었는데요. 취소할까 합니다"
"이 새끼가 군대가 무슨 장난인 줄 알아?"

인사계로부터 사정없이 줘 맞았다. 그 이후 난 그 사람에게 완전히 찍힌 놈이 되었다. 사사건건 트집이고 그 결과는 늘 매질로 이어졌다.

지금 돌이켜 보면 당시 아무리 기합을 받고 구타를 당했어도 결정적인 어려움에 처했을 땐 모두 형제처럼 도왔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 하면 같이 아파했고, 훈련 도중 부상을 당했을 땐 '군기가 빠졌다느니'하면서도 따뜻한 위로를 건넸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군 사회 흐름의 변화겠지만 개인주의가 지나치게 팽배 하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만 불편해도 부모에게 사사건건 일러바치는 장병들도 있단다. 요즘 군대가 나약해졌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런 군 관련 소식을 접할 때 마다 안타까움이 앞선다. 군대의 생명은 전우애다. 서로 믿고 의지하는 끈끈함이 살아 있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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