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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의 결정을 목 빼고 기다릴 때, '일각이 여삼추 같다'고 한다. 특히 내가 결정을 내려야하는 일이 아니고, 누군가가 내려주는 판결을 기다리는 심정은 훨씬 더 초조하다.

큰 수술을 하고 세 번째 받은 정기 검진결과를 기다리는 필자의 심장은 날마다 오그라들었다. 정작 결과를 보러 병원에 가는 날은 무덤덤했다. "오그라든 심장이 새까맣게 졸아서 똥으로 나왔나봐"라는 농담을 남편에게 할 정도였다. 그렇게 심장이 없는 것처럼 아무 감정이 없었다. 머리는 하얀 새가 되어 날아가 버린 것 같았다.

필자가 귀촌을 결정한 데는 두 가지의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백세를 바라보시는 시아버님을 모시고 같이 오순도순 살아보고 싶어서 였고, 다른 하나는, 아픈 몸과 지친 마음을 쉬고 싶어서 였다.

지난 초여름 귀촌한 나는 날마다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다. 눈 뜨면 마당의 온갖 꽃과 풀들이 싱그러웠고, 밤이면 하늘을 수놓은 별들이 신비스러웠다. 그 분위기와 기분에 겨워서 여름내 마당의 풀을 뽑았다. 누가 시켜서 한 짓도 아니고 스스로 신이 나서 했다. 하루하루 집이 깔끔해지고 정리가 되어갈수록 뿌듯했다. 어느 날은 지나가시던 이웃의 할머니 한 분이 깨끗해진 우리집 마당을 보시고 말을 거셨다.

"마당에 제초제혔어?"
"아니요, 저희는 마당에 텃밭이 있어서 그런 거 안 해요."
"이 ~ 그렇구먼. 쉬엄쉬엄 햐, 그러다 병나."

그때 그 말씀을 들을 때는 그냥 지나는 말씀이 거니 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자 빨갛게 익은 구기자를 따고, 새까맣게 익은 까마중을 따는 재미가 정말 좋았다. '과유불급' 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 했던가! 나는 내 키보다 세 배는 더 긴 대나무 장대를 들고 익은 감을 골라 따기 시작했다. 장대가 너무 길고 무거워서 들기에 버거웠으나 홍시 맛에 푹 빠진 나는 내 눈에 '찜' 당한 홍시를 하늘의 별이라도 따는 기분으로 스릴까지 느끼며 땄다. 뒤에 다가올 재앙은 미처 생각지 못하고.

팔이 아팠다. 수술한 가슴은 더 아팠다. 날이 갈수록 통증은 더 심해져서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가슴에 통증이 얼마나 심한지 신음소리가 절로 나며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아무래도 재발한 것 같다며 애꿎은 남편만 괴롭혔다. 하지만 남편이 아닌 다른 가족이나 주위의 사람들은 눈치 못 채게 여상스럽게 생활했다.

병원에를 가자니 의사에게 들을 말이 무서웠다. 곧 정기 검진 날짜가 다가오고 있어서 그때 병원에 가면 된다는 미련스러운 고집 아닌 고집을 부리며 그냥 버텼다. 드디어 9월 30일, 정기 검진 날짜가 다가왔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병원으로 옮겼다. 서울 행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내가 살아 온 뒷자리는 깔끔하게 정리 했는지를 돌이켜보았다. 지저분한 것들은 모두 버리고 빨 것들은 세탁을 했는지,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욕먹을 짓은 하지 않았는지, 가족들 가슴을 아프게 하지는 않았는지,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잘 살 걸!

재발한 것 아니면 전이된 것으로 생각했기에 처음 수술할 때보다 훨씬 더 많은 회한이 들었다. 병원에서 여덟 시간에 걸친 검사를 마치고 서울 아이들이 사는 집으로 갔다. 아무렇지 않게 빨래를 하고 청소를 했다. 저녁에 퇴근한 딸과 아들은 피곤하다며 인사만 하고 자러 들어갔다. 늘 하던 대로 인데도 섭섭했다.

'나 좀 봐 주지. 말 좀 걸어 주지.'

검사결과를 기다리는 열흘이 그야말로 일각이 여삼추였다. 혼자서 주술처럼 중얼거렸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죽지 않으면 살겠지. 둘 중에 하나겠지.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의사가 죽이고 살리는 일이 아닌데도 결과가 나오기까지 환자는 생각만으로 천당과 지옥을 수없이 경험한다. 차라리 내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일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 의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기다리는데 왜 난데없이 포청천이 생각나는 걸까? 나는 피식 웃으며 남편에게 말을 걸었다.

"여보, 죄인이 포청천 입을 쳐다보는 심정이 이랬을 거야. 작두를 대령해라!"

남편이 그야말로 실소를 했다. 그러다 이내 안쓰러운 표정으로 내 등을 토닥였다. 드디어 의사의 입이 열렸다.

"이상 없습니다."

울던 아이에게 사탕 한 알을 주면 뚝 그친다. 두 알도 필요 없다. 심지어 사탕 한 알에 방그레 미소를 짓기도 하고 엉덩이춤을 추기도 한다. 의사는 나에게 사탕 한 알을 줬다. 딱 한 개의 사탕을!

아픈 몸을 너무 우습게 본 게 문제였다. 아프지 않다고 다 나은 줄로 착각하고 몸을 아끼지 않고 마구 쓴 결과였다.


태그:#재발, #과유불급, #사탕 한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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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시원한 청량제, 겨울에는 따뜻한 화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쓴 책 : 김경내 산문집<덧칠하지 말자> 김경내 동시집<난리 날 만하더라고> 김경내 단편 동화집<별이 된 까치밥> e-mail : ok_0926@daum.net 글을 써야 숨을 쉬는 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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