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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의 지난 16일 '개헌' 발언을 비중있게 보도한 <조선일보> 10월 17일자 4면
▲ 다시 돌아가는 개헌 시계 김무성의 지난 16일 '개헌' 발언을 비중있게 보도한 <조선일보> 10월 17일자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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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개헌' 발언은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발언 하루 뒤(17일)에 '부적절했다'며 박근혜 대통령에게 사과했지만, 역설적으로 발언의 시기와 장소가 '적절'했기에 그 정도로 끝날 수 있었다.

먼저 김 대표의 발언 시기에 주목한다. 이달 초, 한 언론에서 '개헌안'에 찬성하는 국회의원 수가 231명에 달한다는 보도가 있었고, 박근혜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개헌논의 자제'를 요청한 이후 해당 발언이 나왔다. 해당 보도와 박 대통령의 발언은 같은 날(10월 6일) 나왔다.

개헌은 국회의 권한에 속한다. 개헌안 발의와 의결 모두 국회에서 진행된다.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도 개헌 '발의'는 할 수 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우리 헌법은 개헌안을 의결할 수 있는 권한을 국회로 명시했다. 국회에서 제적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그 즉시 '국민투표'로 직행한다.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다. 그런데 231명, 압도적 3분의 2(200명) 이상이 지금 개헌에 찬성하고 있는 시점이다.

김 대표의 개헌 발언이 나온 장소도 주목된다. 중국 상하이다. 집권여당 대표의 일거수일투족이 노출되는 국내였더라면, 그 발언에 분노한 '살아 있는 권력'을 상대로 한 그의 해명은 좀 더 직접적, 구체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노출 강도가 훨씬 약한 상하이에서 한 발언이었기에 그는 '대통령 해외 순방'을 언급하면서 사과할 수 있었다. 그렇게 체면은 구겼지만 나름 최소한의 상처를 받고 '개헌 애드벌룬'을 띄우는 데 성공했다.

그렇다면, 개헌은 과연 성공할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은 60명 정도로 집계되는 소수의 친박 의원들로 개헌을 막을 수 있는가?

개헌 발언, 왜 김무성이 나섰나?

노 대통령이 2007년 1월 9일자 대국민 담화를 통해 '개헌안 발의' 의사를 밝혔다. 이를 보도한 <조선일보> 2007년 1월 10일 1면
▲ 노무현 대통령 "개헌 발의하겠다" 노 대통령이 2007년 1월 9일자 대국민 담화를 통해 '개헌안 발의' 의사를 밝혔다. 이를 보도한 <조선일보> 2007년 1월 10일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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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을 둘러싼 지금의 정치 환경은 무척 낯설다. 그동안에는 현직 대통령이 '이대로는 안 된다'면서 개헌을 언급하면 거센 비판을 받고는 했다. 현직 대통령도 주로 임기 초가 아닌, 차기 대권주자들이 활동하는 시점에 개헌을 언급했고, 이에 여야 대권후보들이 강하게 반발하고는 했다.

개헌에 가장 적극적인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2007년 1월 9일 '개헌 담화문'을 발표하고 "단임제는 대통령의 책임정치를 훼손하고 임기 후반기에는 책임 있는 국정운영을 더욱 어렵게 만들어 국가적 위기를 초래한다"면서 '4년 연임제 개헌안'을 발의하겠다고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당시 유력한 대권후보였던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참 나쁜 대통령"이라는, 뒤에 두고두고 회자되는 유명한 발언을 이 때 했다. 다른 유력 대권후보였던 이명박 전 서울시장 역시 '지금은 경제를 살려야 할 때'라면서 개헌한 논의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야당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히며 노 대통령의 '개헌안'은 상처만 입고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

그로부터 7년의 시간이 흐른 2014년 가을 또다시 '개헌안'이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이번에는 국회에서 먼저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노컷뉴스>에서 국회의원 전수조사결과, 231명이 개헌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했듯이, 야당을 비롯한 여당의원의 상당수가 개헌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정당별 개헌 찬반의견을 보도하는 연합뉴스TV 10월 19일 화면. 지난 10월 6일 CBS노컷뉴스에서 보도한 자료를 재인용했다.
▲ 지금 상태면 '개헌 통과' 정당별 개헌 찬반의견을 보도하는 연합뉴스TV 10월 19일 화면. 지난 10월 6일 CBS노컷뉴스에서 보도한 자료를 재인용했다.
ⓒ 연합뉴스TV화면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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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야권의 차기 대권후보로 유력한 박원순 서울시장, 문재인 의원은 '대통령 중임제' 개헌에 찬성 입장이다. 여권의 유력한 차기 대권후보가 바로 이번에 개헌 애드벌룬을 띄운 김무성 대표다. 여야의 대권후보, 지도부가 한 목소리로 '개헌'을 언급하는 상황인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김무성, 문재인 등 여야 간판들이 전면에 나선 모양새가 됐다. 때문에 개헌 논의는 김 대표의 말처럼 "정기국회 후 개헌론이 봇물 터지듯 할 것이며 이를 막을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할 것이다.

국회에서 개헌특위가 설치될 가능성 역시 무척 크다. 헌법이 국회에 부여한 권한을 박 대통령이 '권력 누수'를 우려해 막으려 할 때, 행정부와 국회의 충돌도 예상된다.

박 대통령의 '엄명', 성공할 수 있을까

지난 10월 6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모두발언에서 박 대통령은 '경제'를 언급하며 '개헌 논의 등'에 대한 자제를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 박 대통령 "개헌 논의 등" 자제 요청 지난 10월 6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모두발언에서 박 대통령은 '경제'를 언급하며 '개헌 논의 등'에 대한 자제를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 청와대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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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간 표류하던 국회가 정상화돼서 이제 민생법안과 경제 살리기에 주력해야 하는데 '개헌 논의' 등 다른 곳으로 국가 역량을 분산시킬 경우 또 다른 경제의 블랙홀을 유발시킬 수 있습니다. 이제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국회도 경제 살리기와 국민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을 국정 최우선 순위로 삼아서 함께 힘을 모아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 박근혜 대통령 10월 6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 모두발언' 중

231명의 국회의원들이 개헌에 찬성한다는 보도가 나온 당일 오전, 박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 참석해 '개헌 논의' 등을 하지 말아줄 것을 국회에 요청했다. 형식은 부드러운 요청이었지만 '개헌 논의'라고 분명히 했다. 세 문장에서 박 대통령은 '경제'라는 단어를 세 번 언급했다. 개헌 논의에 대한 청와대의 전략적인 대응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 같은 발언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까닭은 박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에 변화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여의도 정치'와 관련해서는 철저하게 거리를 두는 통치 스타일을 보여줬다. 국정원 대선개입, 세월호 특별법 등 주요한 현안에 있어서 '국회에서 논의하면 그대로 따를 것'이라고 공언해 온 것이다.

물론 최근 '세월호 2차 협상안이 최종안'이라는 입장을 밝혀 여당에 가이드라인을 준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긴 했다. 하지만, 국회에 대해 논의 자체를 하지 못하도록 '엄명'을 내린 것은 2년간의 통치 스타일상 매우 유례가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엄명'은 성공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개헌은 대통령의 권한이 아닐 뿐더러, 보란듯이 집권여당 대표가 나서서 개헌론 깃발을 들었기 때문이다.

정기국회가 끝나는 시점이 '디데이'가 될 것이다. 이미 박 대통령은 '개헌 논의 자제 요청'이라는 형식으로 개헌 논의에 공식적으로 발을 담궜다. 집권여당 대표가 대통령과 맞서며 '개헌론'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했고 야당에서는 개헌논의 대환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개헌을 둘러싼 대통령과 국회의 격돌이 예상된다. 국정원 대선개입과 '세월호 7시간 미스터리' 등을 어렵게 헤쳐온 박 대통령, 그러나 이번에는 쉽지 않을 듯 싶다. 두 번의 위기 당시 적극적 우군으로 도움을 준 새누리당 국회의원 다수와 대립해야 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김무성 대표의 상하이 발언은 대통령과 여야를 아우르는 국회의 대격돌, 그 대결의 서막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태그:#김무성, #개헌,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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