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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입사해서도 골프 잘 치고 술 잘 먹는 '한량 기자'로 살았다."

2012년 MBC의 170일 파업 중 해직되고 현재는 쿠르베 스피커 제작회사 'PSJ 디자인' 대표를 맡고 있는 박성제 해직기자의 말이다. 박 기자는 한때 이른바 잘 나가던 기자였다. 사교성이 좋아 MBC에서 두루 친분이 좋아 기자회장까지 했다. 그때까지 MBC 기자회는 단순한 친목단체였다.

그러나 2007년 의도치 않게 노조위위장이 되고 2008년 정권이 바뀌면서 그의 삶은 달라졌다. 그래도 임기는 무사히 마쳤다. 다시 기자로 복귀했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았고 2010년 김재철 사장으로 MBC 사장이 교체되었다. 그리고 2012년 노조 파업 중에 영문도 모른 채 해직되었다.

그 후 식탁 하나 만들 생각으로 공방에 나갔던 그가 거실에 놓고 평생 사용하려고 만든 스피커가 바로 쿠르베다. 박 기자는 얼마 전 해직기자에서 스피커 장인이 된 과정을 담은 책 <어쩌다 보니, 그러다 보니>를 발간했다. 지난 15일 책 출간 뒷 이야기를 들으러 양재에 위치한 박 기자의 청음실을 찾았다.

다음은 박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

"MBC에서 해직된 뒤 인생 2막을 열어준 영혼의 친구, 음악"

박성제 MBC 해직기자
 박성제 MBC 해직기자
ⓒ 이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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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에 <어쩌다 보니 그러다 보니> 출간기념 토크 콘서트를 하셨는데 어떠셨어요?
"원래 제가 책을 쓰고 싶어서 쓴 건 아니었어요. 출판사에서 편집하시는 분이 찾아오셔서 절 잘 아신다며 책을 내자는 거예요. 알고 봤더니 제가 활동하던 인터넷 동호회 회원이더라고요. 그래서 얼떨결에 책을 내고 난생 처음 북 콘서트라는 걸 해봤죠. 다행히 꽤 많은 분들이 와주셔서 잘 끝났습니다. 말하다 막히면 쿠르베 스피커로 음악을 들려주면서 진행했는데 청중들이 열심히 들어주시더라구요. 모든 것에 감사할 따름이죠."

- 분위기는 어땠어요?
"좋았어요. 청중들이 음악도 좋아하시고 최일구 선배가 도와주셔서 무겁지 않고 유쾌하게 풀었어요. 괜찮았던 것 같아요."

- 얼떨결에 책을 냈다고 하셨는데 처음 제의가 왔을때 어땠어요?
"제 얘기가 책으로 나올 만큼 재밌는 얘기일까라고 반신반의 했는데 출판사 쪽에서는 괜찮을 것 같다며 강력하게 말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써 본 거죠."

- 출간한 지 2주가 지나는데 반응은 어때요?
"나쁘지는 않은 것 같지만 베스트셀러에 오를 정도는 아닙니다. 읽어주시는 분들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좋죠. 주위에서는 생각보다 딱딱하지 않고 재밌게 술술 읽힌다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중간 중간 유쾌한 부분도 있고 약간 감동적인 부분도 있다고 평가하시는 것 같아요."

- 책을 쉽게 쓰셨던데 아무래도 기자 경력이 도움된 것 같아요.
"네 제가 20년 가까이 기자 생활을 했잖아요. 방송기자는 초등학생 중학생도 알아들을 수 있게 써야 하거든요. 훈련이 되어 있어서 쉽게 쓰는 건 자신있어요. 대신에 문체가 화려하다든지 멋을 내진 못해요."

- 현재 기자와 노조 위원장 그리고 스피커 사장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키워드를 뽑으면 음악인 것 같아요. 그래서 박 기자에게 음악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어릴 적부터 음악은 제 여가 생활의 거의 모든 것을 차지하는 중요한 취미였습니다. 노조위원장할 때도 그렇고 제가 쉴 땐 거의 음악을 틀어놓거든요. 음악을 너무 좋아하다 보니 오디오랑 스피커에 심취하게 되고 대학생 때도 아르바이트 하다 돈 생기면 세운상가 가서 중고 스피커를 샀어요.

MBC 들어가서는 월급을 받으니까 좀 더 비싼 것을 사는 식으로 스피커를 많이 써봤어요. 그러다보니 취미였던 음악과 오디오가 해고된 다음에 새로운 길을 걷게 해주는 계기가 된 거죠. 그리고 이제는 스피커를 직접 만들게 됐으니 이제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제 인생의 2막을 열어준 '영혼의 친구'라고 할까요."

- 아내의 응원과 지지가 현재의 박 기자를 있게 해준 것 같아요.
"맞아요. 아내는 저를 많이 응원해줘요. 제가 해고됐을 때도 불평하거나 걱정하지 않고 모든 게 잘 될 거라고 용기를 북돋워 주곤 했어요. 내가 할 일이 없어서 집에서 뒹굴거릴 때에도 잔소리를 안 하더라고요. 그러다 공방에 나가서 식탁을 만들어 보라고 했거든요. 그래서 공방에서 가구를 만들다가 스피커 개발에 도전한 거죠.

쿠르베를 디자인할 때도 네모난 스피커를 만들지 말고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아름다운 모양으로 만들어보라고 조언했죠. 물론 어떻게 하라고 디자인까지 코치한 건 아니지만 그게 큰 도움이 됐어요. 여자들, 아내들이 좋아할 만한 스피커를 고민하다 곡선과 원으로 스피커를 만들어야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거죠."

- MBC 동료들은 처음에 뭐라고 해요?
"제가 공방 다닌다니까 심심하니 하나보다 생각하다가 갑자기 스피커를 만들어서 사업을 하겠다니까 다들 놀랐죠. 잘 될까 걱정들을 많이 했어요. 지금은 응원을 많이 해주면서도 돌아오길 기다리죠."

 박성제 MBC 해직기자
 박성제 MBC 해직기자
ⓒ 이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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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르베가 처음 나왔을 때는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와 같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그렇죠. 쿠르베는 제 분신같은 존재입니다. 처음 해직기간 동안 지루함과 스트레스를 잊기 위해 스피커를 만들었죠. 그러다가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나만의 스피커를 만들어 보자는 욕심에 쿠르베를 개발하게 됐습니다. 처음엔 상품화 하겠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고 그냥 평생 거실에 놓고 함께 할 작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막상 만들어 놓고 보니 주변에서 이왕이면 주문 생산을 해보라고 권유들을 많이 하셔서 용기를 내서 사업을 하게 됐죠. 만약 처음부터 상품화를 염두에 두고 개발했다면 지금보다 좀 더 타협한 디자인이 나왔을 거예요. 왜냐면 만들기 쉬워야하니까. 지금 디자인은 보기에는 예쁜데 여러 가지가 복잡하고 제작해서 파는데 여러 어려움이 있어요. 손이 정말 많이 가죠. 그러나 처음에 그렇게 시작했기 때문에 그냥 계속 하는 거죠. 대량 생산 하긴 어려워요."

- 처음 주문 받았을 때 기억 나세요?
"그럼요. 기억하죠. 신기했어요. 그리고 이게 가격이 고가인데도 사겠다는 분이 나타나니까 신기했어요. 처음엔 거의 남기지 않고 원가만 받았죠. 그러다가 사업자 등록을 하게 됐고 조금은 남아야 활동을 할 수 있으니까 가격을 조금 올렸어요."

- 사업자등록을 하고 어려움도 겪었다고 들었어요.
"사업자 등록을 했으니 사장이잖아요. 그런데 스피커를 만들려면 외국에서 부품을 수입해야해요. 인터넷에서 카드로 결제해야 하는데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은행가서 물었더니 한도가 400만 원이래요. 400만 원 가지고 어떻게 부품을 주문하냐고 항의했어요. 그랬더니 '고객님은 사업을 이제 시작해서 매출이 얼마 안 되니까 카드 한도가 적다'는 거예요.

제가 '부품을 사게 해줘야 매출이 오르지 않겠느냐, MBC 다닐땐 한도가 천만 원이 넘는 카드를 썼다'고 했더니 '그건 MBC 계실 때라 그렇죠'라고 하더라고요. 충격을 받았죠. 결국 떼를 써서 한도를 올리긴 했는데 자영업이 만만치 않다는 걸 느꼈어요. 저처럼 회사 다니다가 그만두고 자영업 하시는 분들 많잖아요. 그런 분들이 겪을 곤란한 일이 많겠다고 생각했어요.

홍보도 만만치 않았어요. 치킨집을 열어도 전단지를 돌리잖아요. 저도 그런 거처럼 브로슈어를 만들었어요. 가만히 있으면 사람들이 안 오잖아요. 그래서 어딜 가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큰 레코드숍을 돌아다녔어요. 100부씩 가져다 놓으니까 잡상인인 줄 알고 쫓아내더라고요."

"선배 사업 망했으면 좋겠다는 후배의 말, 가슴 아파"

- 한 후배가 '사업이 잘 되면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 망하길 바란다'는 말을 했는데 그토록 기자로 돌아오길 기다린다는 말이잖아요. 그 말을 듣고 울컥 했을 것 같아요.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이런저런 고초를 겪고 있는 후배들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많이 아픕니다. 오죽하면 내 사업이 잘 안 됐으면 좋겠다고 하겠어요. 그만큼 힘들단 얘기죠. 전 처음엔 화도 났지만 오히려 해고된 지 오래 돼서 지금은 마음이 평온한 상태에요. 회사 내에는 아직도 힘들어 하는 후배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게다가 MBC뉴스에 대한 신뢰도가 많이 떨어졌다는 얘기를 들으니 더욱 힘들겠죠."

- 1970년대 <동아일보>에서 해직되고 오랜 언론 운동을 해오신 성유보 선생님이 지난 8일 심장마비로 별세 하셨잖아요. 성유보 선생님과의 추억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2008년 여름에 이명박 정권이 정연주 KBS 사장을 해임시키려고 할 때 KBS 앞에서 촛불문화제를 하다가 성유보 선생님과 함께 경찰서에 잡혀간 일이 있어요. 당시만 하더라도 매일 길바닥에 계셨지만 건강하셨어요. 하룻밤을 유치장에서 함께 보냈는데 선생님이 70년대 동아투위 시절 유신정권과 싸우다 해직되고 고생하던 얘기를 해주시더라고요.

실제로 감옥도 다녀오시고 그 후에도 여러 번 경찰서에 끌려가셨던 분이라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시더군요. 아침에 사모님이 찾아와 '또 경찰서 왔냐'고 하시면서 아무렇지 않게 말하시더군요. 힘들게 사시면서도 유쾌하게 겪어내시는 게 보기도 좋고 '저렇게 사는 게 정말 힘든 건데'란 생각을 했죠."

- 시대는 다르지만 똑같은 해직 언론인의 입장에서 성유보 선생님의 별세 소식이 다른 기자들하고 다를 것 같아요.
"제가 상가에도 가고 장례식도 참여했는데 가슴이 먹먹하더라고요. 왜냐면 돌아가시기 전에 <뉴스타파> 하고 인터뷰한 게 있어 봤어요. 거기서 선생님이 '국민의 눈으로 사물을 봐야지만 기레기란 소리를 안 듣는데 지금 그게 안 되니까 언론이 기레기 소리를 듣는 거다'라고 하시더라고요. 마지막까지 언론 자유를 외치셨는데 그 분이 꿈꾸시던 언론 자유를 끝내 보지 못하고 눈을 감으셨다고 생각하니 후배로서 죄송하고 송구스럽습니다."
 

- 쿠르베가 있어도 MBC로 돌아가고 싶어하시는데 단순히 해직이라는 불명예스러운 타이틀 벗기 위한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이미 명예회복은 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2012년 파업과 관련된 여러 재판에서 계속 이기고 있거든요. 재판부가 '2012년 파업은 불법이 아니라 정당했다. 공정방송을 위한 파업은 정당하다'고 인정했기 때문에 전 당당해요. 물론 완전한 복직이 이루어지려면 대법원 판결까지 받아야 하기 때문에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MBC는 제가 20년 청춘을 바쳐서 일해온 고향 같은 곳입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건 당연하지요."

- 이런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지만 가문 혹은 집안에서 쫓겨난 것과 같아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을 것 같은 생각도 들 법한데요.
"아니요. 저는 집에서 쫓겨났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집에서 쫓겨났다면 당연히 돌아가기 쉽지 않겠죠. 김재철이란 사람이 억울한 누명을 씌워서 저를 MBC에서 몰아낸 것이죠. 지금은 김 사장이 없잖아요. 현재 경영진도 저희와 소송하지만 당연히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봐요. 집으로 돌아간단 느낌으로 기다리고 있어요."

"MBC에서 쫓겨난 거 아냐... 당당하게 내 집으로 돌아가고파"

 박성제 MBC 해직기자의 책 '어쩌다 보니, 그러다 보니'
 박성제 MBC 해직기자의 책 '어쩌다 보니, 그러다 보니'
ⓒ 푸른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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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월요일 이상호 기자가 2심에서도 무효판결 받은 것을 어떻게 보세요.
"당연한 거죠, 물론 이 기자는 파업하다 해고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희와 재판은 따로 하지만 그가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았는데 재판부는 '설사 그런 면이 있다 하더라고 해고는 과하다'고 판결했어요. 저희의 경우는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킨 것도 없고 더구나 파업이 정당했다고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이 기자와 함께 돌아가겠죠."

- 2심은 어떻게 되어가나요?
"내년 초쯤 결론이 날 것 같아요."

- 최강욱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는 "세월호 참사 보도로 MBC가 공영방송의 지위를 잃어 가는 것 같다"면서 "회생 가능성이 안 보인다"고 생각하던데...
"세월호 보도를 계기로 '기레기'라는 용어가 많이 확산됐잖아요. 비단 MBC 뉴스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MBC, KBS 같은 공영방송을 비롯해서 많은 언론들이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언론 본연의 책무를 다시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반성하는 움직임도 있구요. 회생 가능성이 안 보인다는 말은 걱정과 우려에서 나온 말이라 봅니다. 저는 아직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 책 <어쩌다 보니, 그러다 보니> 책 뒷면 추천사에 JTBC 손석희 앵커가 '나중에 같이 경쟁하자'고 쓰셨던데...
"손석희 선배가 만드는 JTBC뉴스와 제가 복귀해서 MBC뉴스에서 나름 역할을 하게 되어 경쟁한다면 행복하겠죠. 선의의 경쟁이 될 거예요. 그쪽엔 손 선배가 있고 훌륭한 기자도 많지만 MBC도 훌륭한 기자들이 많아요. 보도국을 떠난 기자와 해직 기자들이 돌아가면 손 선배 같은 스타 앵커는 없지만 베테랑 기자들이 많이 있어서 재밌는 경쟁이 될 거예요."

- 검찰이 세월호 사고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에 대해 의혹을 제기한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 지국장을 불기속 기소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결국 표현의 자유 문제예요. 언론의 자유는 다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자유라고 말하잖아요. 예를들어 어떤 언론이 대통령과 관련된 보도를 했는데 그게 맘에 안 든다고 국가기관이 처벌을 하려는 것 자체가 문제죠. 저는 기본적으로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에 해당하는 언론보도에 대해 국가기관이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 기소를 하는 데 대해 강력히 반대합니다.

광우병 문제를 보도한 <PD수첩>에 대해서도 농림부 장관이 명예훼손으로 고소해서 PD들을 체포하고 재판에 넘겼지만 결국 모두 무죄를 받았지 않습니까? 대통령이나 장관, 정치인들이 허위보도로 명예가 훼손됐다고 생각한다면 충실한 반론을 제기하면 됩니다. 그것도 모자란다면 민사재판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겠죠.

외국에서는 보도 잘못해서 민사재판에 걸려서 배상액이 커지면 언론사 망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렇게 하면 되죠. 그러나 공권력을 동원해 언론인을 기소하고 재판하는 행위는 구시대적 발생이죠. 그만큼 그 나라가 언론자유가 보장이 안 되는 후진국이라는 걸 스스로 증명하는 거라고 봅니다.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거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영광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이영광의 언론, 그리고 방송이야기'(http://blog.daum.net/lightsorikwan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박성제, #쿠르베,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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