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유럽의 나라들을 한 장의 티켓으로 기차를 탈 수 있는 유로패스
 유럽의 나라들을 한 장의 티켓으로 기차를 탈 수 있는 유로패스
ⓒ 오창균

관련사진보기


"유럽 배낭여행 가고 싶지 않아?"
"갈 수만 있으면 가고 싶지. 우리 둘이서?"
"결혼하면 신혼여행으로 갈 수 있잖아."
"난 결혼할 생각 없다. 하지만 유럽 배낭여행은 가고 싶네."

어느 날, 친구와 연인 중간쯤 애매한 관계인 K에게 불쑥 제안했다. 그녀도 싫지는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결혼을 생각하기에는 준비된 것들이 너무 없었고, 그것과는 별개로 결혼에 대한 생각이 둘 다 흐릿했다.

"내 딸이 좋아하는 남자면 나는 믿어"

1990년대 유행처럼 시작된 유럽 배낭여행에 대한 로망. 이를 이룰 방법은 결혼이 가장 현실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것 자체부터 현실이 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결혼과 유럽 배낭여행 그것은 희망 사항일 뿐, 현실이 되리라고는 믿지 않았다.

몇 년 동안 K를 만나면서, 그녀의 가족과 우연히 마주치는 일들이 있었다. K의 오빠도 그렇게 해서 알게 됐는데, 그가 결혼한다는 것이었다. 예식장에서 인사를 드리기보다는 집으로 그녀의 부모님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는 것이 예의 같았다.

"취업 준비를 하고 있지만, 아직 직장은 없습니다."
"괜찮아. 취업은 하면 되는 것이고, 내 딸이 좋아하는 남자면 나는 믿어."
"엄마, 그냥 친구야. 오빠를 알게 돼서 결혼식 전에 먼저 인사드린다고 온 거야."

당시 그녀 나이 27살. K의 부모님은 아홉수를 의식해 여자 나이 서른을 넘기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렇게 해서 결혼은 급물살을 타고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양가 부모님의 상견례가 있던 날, 결혼식 날짜는 신부 쪽에서 정하는 것이고, 예식장은 신랑 쪽에서 정하는 것이라며 아버지가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예식장 전단을 내밀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결혼은 두 사람이 새롭게 출발하는 삶이기에 우리 의지대로, 주체적으로 시작하고 싶었다.

 유럽배낭여행을 가려고 결혼했다는 말을 했었다
 유럽배낭여행을 가려고 결혼했다는 말을 했었다
ⓒ 오창균

관련사진보기


결혼은 평등하게 예물은 필요 없어

서울 영등포와 경기 의정부의 중간 지점을 전철 노선으로 확인해 보니 1호선 제기동 역이었다. 무작정 제기동 역에서 내려 예식장을 찾으러 다녔고, 처음 들어간 곳에서 예약까지 마쳤다. 결혼식 날짜는 1996년 9월 15일 일요일, 다음 주 추석 명절을 앞두고 있었다.

부모님은 예식 장소도 마음에 안 들어 했고, 더욱이 명절 앞두고 결혼을 하는 것은 아니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하지만, 이미 예약까지 마쳤다고 하니 포기한 듯 '알아서' 하라고 했다. 처가에서도 웨딩 촬영은 안 하더라도, 예물을 안 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며 반대했지만 완고하게 버텨냈다.

결혼 예물과 야외 촬영을 비롯한 웨딩 촬영을 포기한 것은 유럽 배낭여행의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것이었다. 물론 그런 요식 행위들을 우리 둘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여행사를 찾아가서 배낭여행에 관한 상담을 하고, 비행기 표와 기차로 여행할 수 있는 유로패스, 숙소 예약만 여행사에 맡겼다. 나머지 필요한 정보들은 책 한 권으로 부딪혀보기로 했다.

추석 명절을 앞둔 탓인지, 실제로 결혼식은 우리밖에 없었다. 예식장을 전세 낸 듯, 시간에 쫓기지 않고 여유 있게 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피로연에서 발생했다. 양가에서 하객 수 300명을 예상하고 뷔페식을 예약했는데, 결혼식이 우리뿐이라서 예약된 인원수만큼만 식사가 준비된 것이었다. 다행히 근처에 큰 식당이 있어서 큰 탈 없이 겨우 한숨 돌리고서야 결혼식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이탈리아의 콜로세움 경기장에서
 이탈리아의 콜로세움 경기장에서
ⓒ 오창균

관련사진보기


호텔 스위트룸 서비스 포기할 수밖에

결혼 휴가와 추석 명절 휴무를 붙이고, 회사의 여름휴가까지 보태서 15일간의 유럽 배낭여행을 위한 첫걸음을 뗐다. 그 시작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특급 호텔의 스위트룸이었다. 아내가 다니던 증권회사 상사의 도움으로 호텔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받으며 휴식을 취하고, 다음날 파리로 출국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친구들과 맥줏집에서 가볍게만 끝내기로 한 뒤풀이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고, 결국 나이트클럽을 가서야 끝이 났다. 그동안 결혼 준비 때문에 쌓인 스트레스와 긴장이 풀리면서 술을 마신 아내는 호텔로 돌아와서는 세상 모르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호텔 방문을 두드리는 악동 친구들을 물리치느라 신경전을 벌이는 등 한바탕 난리를 겪었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아침 조식을 기대하며 여행 짐을 한 번 더 확인해 봤다. 웨딩 촬영을 포기하고 산 캠코더의 전원이 들어오지 않았다. 여행의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물건이 고장이라고? 공항 도착까지 호텔에서 제공 받기로 한 각종 서비스가 중요하지 않았다. 모범택시를 타고 부리나케 용산 전자상가로 달렸다.

"배터리 장착이 올바로 되지 않았네요. 밑에서부터 위로 올리면서 장착합니다."

허탈한 마음보다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대여섯 시간을 공항에서 대기하다가 비행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날아 올랐을 때, 비로소 결혼과 유럽 배낭여행이 현실로 다가왔다.

결혼 10주년에 다시 가자고 약속한 배낭여행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한 배낭여행은 오스트리아, 독일, 이탈리아를 돌아보는 여행이었다. 각 나라마다 이런저런 에피소드도 많았다. 추석 명절을 하루 앞두고 인사는 드려야 할 것 같아서 국제 전화를 걸었다. 버럭하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수화기 넘어 아내에게까지 들릴 만큼 컸다.

"추석에 집에 못 온다고? 그게 뭔소리냐. 결혼하고 명절 때 집에 안 오는 것이 뭔 경우냐."
"보름 동안 여행을 다니기 때문에 추석 때 못 간다고 분명히 말씀드렸잖아요."
"그래? 네 엄마도 모른다고 하는데, 너 알아서 해라."

보름간의 유럽 배낭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공항에 내렸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면 첫날은 처가로 간다는 관습에 따라 처가로 가면서 집에 안부 전화를 드렸는데, 아버지의 버럭 잔소리를 또 들어야 했다.

"뭔소리여, 오늘 온다고 해서 음식 해놓고 기다리는데... 벌써부터 처가에 잡혀 사는 거냐."

당황한 아내는 시댁으로 바로 가자고 했지만, 먼저 처가를 들러서 인사만 드리고 차려진 음식을 먹는 둥 마는 둥, 바로 의정부로 달렸다. 아버지는 애써 담담한 얼굴이었지만, 서운한 감정이 있는 듯했다. 면세점에서 사온 양주를 내놓았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앞에서
 파리 루브르 박물관 앞에서
ⓒ 오창균

관련사진보기


"이거 박정희가 좋아했던 술입니다. 아버지도 한번 드셔 보세요."
"아따, 세상 좋아졌다. 내가 이런 술도 마셔보고, 피곤할 텐데 일찍들 자라."

결혼 10주년이 되면 아이들과 유럽 배낭여행을 함께 가자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약속했었다. 아득히 멀게 느껴지던 결혼 10주년을 넘기고 여덟 해가 지나도록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해마다 잊지 않고 챙기던 결혼기념일도 10년이 지나면서는 뒤늦게야 기억을 하면서 살고 있다. 그래도 부부의 '인연'을 잊지 않고 소중하게 생각하며 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잔치,어디까지 해봤나요. 공모글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농사도 짓고, 농사교육도 하는 농부입니다. 소비만 하는 도시에서 자급자족의 생산을 넘어서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농부의 길을 가고자 합니다. 흙에서 사람냄새를 느꼈을때 가장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