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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권은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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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을 공분케 했던 '윤 일병 사건'은 범행의 잔인성만큼이나 일그러진 우리 군 사법제도의 민낯도 함께 드러냈다. 당초 '기도폐색에 의한 질식사'라던 사인은 '구타에 의한 속발성 쇼크 또는 좌멸 증후군'으로 바뀌었고, 공소사실도 상해치사에서 살인으로 바뀌었다. 때문에 부검을 하기도 전에 서둘러 사인부터 발표해 놓고 수사를 여기에 꿰맞추려 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런 일은 어떻게 가능한 걸까? 현재 군 법무조직 체계를 보면, 사단장이나 군단장 같은 지휘관이 군 검찰부와 보통군사법원의 행정사무를 동시에 지휘·감독하도록 되어있다. 사건을 수사하는 헌병대 역시 동일한 지휘관에게 소속돼 있다.

사건 수사와 기소, 재판을 각각 담당하는 헌병, 군 검찰, 군 판사 모두 사단장이나 군단장의 부하들이라는 얘기다. 초동수사와 기소, 형 확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이 지휘관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기에, 마음만 먹으면 사건을 축소·은폐할 수 있는 길이 구조적으로 열려 있는 셈이다.

특히 군사법원법에는 헌병은 수사지휘에서 상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을 뿐, 상관이 부당한 수사 지휘를 했을 때 이에 대해서 다툴 수 있는 이의제기권도 없고, 상관의 수사지휘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규정도 전혀 없다.

헌병 수사관이 지휘관의 입김에서 벗어나 사건을 수사한다는 것이 애당초 불가능한 구조다. 심지어는 '행정경찰 업무에 대해서는 서울시장 혹은 도지사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는 사문화된 조항이 아직도 버젓이 '헌병령'에 명시되어 있는 실정이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권은희(새정치민주연합) 의원만큼 이 문제를 지적하는 데 적절한 인물은 없어 보인다. 일선 경찰서 수사과장으로서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을 수사하면서 '수사 독립성'의 문제를 그 누구보다 절감했던 까닭이다.

지난 17일 <오마이뉴스>는 권 의원을 만나 최소한의 독립성도 보장되지 않는 헌병 수사의 문제점을 비롯, 군 사법제도 개혁에 대한 견해를 들어봤다. 인터뷰는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 시간 가량 진행됐다. 다음은 권 의원과 나눈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최초 수사 상황과 다른 내용 발표되고 그에 따라 기소돼"

(윤일병 사건의) 가장 큰 문제는 최초의 수사 상황과 다른 내용이 발표되고 그에 따라 기소가 되었다는 것이다. 부실 발표가 이끄는 대로 헌병이 실제 수사 상황과 다르게 송치하고 실제 수사상황과 다르게 기소되었다
 (윤일병 사건의) 가장 큰 문제는 최초의 수사 상황과 다른 내용이 발표되고 그에 따라 기소가 되었다는 것이다. 부실 발표가 이끄는 대로 헌병이 실제 수사 상황과 다르게 송치하고 실제 수사상황과 다르게 기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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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일병 사건과 관련, 당초 피해자의 사인을 '기도폐색에 따른 질식사'로 단정하고 가해자들에게 상해치사죄를 적용했던 군 검찰이 지난달 사인과 공소내용을 변경했다. 윤 일병 사건 수사, 기소 과정에서 가장 잘못된 점을 꼽는다면.
"가장 큰 문제는 최초의 수사 상황과 다른 내용이 발표되고 그에 따라 기소가 되었다는 것이다. 부실 발표가 이끄는 대로 헌병이 실제 수사 상황과 다르게 송치하고 실제 수사상황과 다르게 기소되었다.

군 검찰이 뒤늦게 살인으로 공소장을 변경하고 사인 역시 변경했다. 그런데 제가 직접 공판에도 참여했지만 추가적으로 진행된 수사 사항은 없었다. 즉, 기존 수사 상황을 재판단해 사인을 변경한 것이다.

유난히 가해자들이 피해자의 옆구리와 복부를 많이 때렸다는 진술은 기존의 수사상황에도 나와 있던 사실이다. 옆구리 가격이 비장 파열로 연결될 수 있고 비장 파열은 과다출혈을 일으킬 수 있는 요소인데, 부검감정서에는 비장에 열상이 있다는 사실, 내부에 복강혈이 발견된다는 내용이 이미 기재돼 있었다.

이는 지난 5월 2일, 군 검찰이 가해자들을 상해치사로 기소하기 전에 이미 다 수사된 내용들이다. 이런 점들을 놓고 보면 수사결과에 따라 처음부터 사인과 죄명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었음에도 (기도폐색에 의한 질식사라는) 발표에 따라 송치되고 기소된 것이다."

- 윤 일병 사건을 예로 들 때, 만약 이 사건을 군 수사기관이 아닌 경찰에서 수사를 했더라면 그 후 일련의 과정, 즉 사인번복과 공소장 변경 같은 일들이 없었다고 생각하시나.

"수사업무에 있어 경찰의 범죄수사규칙은 270개가 넘는 조문으로 이루어진 반면, 육군 헌병의 경우 업무규정에 겨우 17개의 수사에 관련된 조문을 두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매뉴얼에 따른 전문적인 수사를 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최소한 수사의 독립성을 담보할 수 있는 근거규정이 없다. 이러한 근거규정을 마련하는 것이 군 수사기관에 닥친 시급한 과제다."

- 지난 7일 국방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수사관의 이의 제기 절차 등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헌병대의 수사지휘 방식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경찰과 비교해 볼 때 헌병 수사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발표 승인권자, 보도에 권한이 있는 자가 수사결과를 지휘할 수 있는 것이 문제다. 지휘권자는 징계 형사책임 여부에 관여하고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모두 가지고 있다. 이러한 독점적인 권한을 제어할 수 있는 규정이 군 내부에는 전혀 없다.

특히 헌병이 그렇다. 군사법원법을 살펴보면 헌병은 수사지휘에서 상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경찰 수사에서 보면 상관의 명령이 아니라 수사업무를 하는 소속 상관의 수사지휘에 따르고, 이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게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헌병은 이의제기권이 없다. 상관이 부당한 수사 지휘를 했을 때 이에 대해 다툴 수 있는 이의제기권도 없고, 상관의 수사지휘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규정도 전혀 없다."

- 수사지휘에 대한 규정도 없고 수사관의 이의제기권도 없는데, 이런 상황은 어떤 문제점들을 낳는가.
"지난 대선당시 국정원 사건에서도 수사상황과 수사 발표 내용이 달라서 경찰 내부의 수사 독립성이 문제가 되었다. 이에 따라 경찰에는 2013년 12월 훈령 개정으로 수사이의제기 규정이 만들어 졌다.

범죄 수사 규칙에 '수사 지휘의 방식, 원칙적으로 서면으로 한다, 이의 제기 방식에 대해서 이의를 누구에게 제기한다' 이런 부분들이 전부 상세하게 규정돼 있다. 이런 규정들에 의해 그나마 내부의 수사권, 수사기능이 보장될 수 있는 것이다. 헌병 수사에도 이러한 규정들이 마련되어야 한다."

"군 사법개혁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사건의 은폐와 축소 반복될 것"

군사법원과 군 수사기관을 지휘관으로부터 독립시키고, 현재 운영되고 있는 관할관, 심판관 제도, 지휘관의 감경권을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 군 사법개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부실수사, 사건의 은폐와 축소는 계속 반복될 것이다
 군사법원과 군 수사기관을 지휘관으로부터 독립시키고, 현재 운영되고 있는 관할관, 심판관 제도, 지휘관의 감경권을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 군 사법개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부실수사, 사건의 은폐와 축소는 계속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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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말씀해 달라.
"이미 '군 수사단계의 독립성과 부당한 지휘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5대 개선방향'을 제시한 바 있다. 첫째, 헌병 업무 규정에 수사활동 관련 조문을 세부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 현재 17개 조문으로 이루어진 '육군 헌병업무규정'이 있기는 하지만 구체적 상황에 대한 규정이 미비하다.

둘째, 군 수사시 지휘에 대한 이의제기를 업무규정에 명문화 시켜야 한다. 셋째, 군 수사시 수사대상의 인권보호 규정을 확대해야 한다. 넷째, 성폭력 사건 수사 및 피해자 보호규정이 마련되어야 하고, 다섯째 검시규정이 만들어져야 한다.

또 현재는 군 검찰에 대한 명령·감독권이 지휘관에게 있는데, 차제에 국방부 소속으로 군검찰 조직을 일원화해서 군 검찰의 수사권을 독립시키는 방안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헌병은 수사경찰업무와 행정경찰업무를 맡고 있는데 수사경찰업무 만큼은 군 검찰에게 헌병에 대한 지휘권을 보장해주고, 지휘권의 행사방법, 이의제기 방법을 규정해 '견제와 균형'의 방법으로 군 수사의 독립성을 확보해야 한다."

- 국방부 국감에서 50년 전에 개정된 '헌병령'이 지금까지 한 번도 바뀌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고 지적하셨다.
"헌병령은 헌병의 조직과 헌병에 대한 지휘·감독, 헌병의 지위에 따른 직무를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대통령령의 성격을 가진 헌병령이 1949년 제정된 이후 1961년 한 차례 개정을 거친 후 지금까지 한 번도 개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헌병 조직이 운영되는 실제와도 맞지 않고 시대의 변화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헌병령에 따르면 헌병의 행정경찰업무에 관하여는 서울시장과 도지사의 지휘를 받도록 되어 있는데 지금의 현실과는 전혀 다르게 규정되어 있다. 그래서 국감장에서도 '이 자리에는 박원순 시장이 나오셔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려고 했다. (웃음)

더 큰 문제는 헌병조직의 규모와 군 수사기관이라는 헌병업무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헌병업무의 법적 근거가 명확해야 하는데 구시대 유물인 헌병령 외에 헌병 업무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기본적인 법령조차 존재하지 않고 정비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헌병 수사의 전문성과 투명성을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 윤 일병 사건뿐 아니라 최근 군에서는 각종 사건·사고가 잇따르고 있어 국민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제도적 개선방안을 제시하신다면.

"큰 틀에서 보자면, 폐쇄적인 군을 열고 외부전문가들이 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진정한 국방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국방부는 지난 2005년부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병영문화 개선을 위한 종합대책을 내놓았지만, 진정한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병영문화 개선을 이끌어 갈 지휘관들이 의지를 가져야 진정한 병영문화 개선이 이루어 질 것이다.

피해자 신고제도도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현재도 상관 면담, 소원수리제도, 국방 헬프콜 등의 제도들이 있지만 신고자의 신원이 보호되지 않아 추가적인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많고, 신고를 해봐야 제대로 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해서 현재 신고제도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실질적 조치들이 취해질 수 있도록 군옴부즈만 제도를 도입하거나 민간인이 포함되어 독립적으로 감시 및 신고가 가능한 기구를 설치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국방부에 '인권국'을 설치해야 한다. 현재 국방부 인권관련 부서는 인사국 병영정책과, 법무관리관실 인권과, 여성정책과 등 3개의 과로 나뉘어 있어 인권컨트롤 타워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 부서의 내부감시 예방기능을 충실히 하기 위해 인권국을 신설하고, 인권국이 인권컨트롤타워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부실수사, 사건 은폐·축소 유혹을 근원적으로 배제하기 위해서는 군 사법제도 개혁이 필요하다. 군 사법제도는 군의 폐쇄성을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제도다. 수사단계부터 재판단계까지 지휘관이 모든 명령·감독 권한을 가지고 있어 공정하게 사건이 처리되기 어려운 구조다.

군사법원과 군 수사기관을 지휘관으로부터 독립시키고, 현재 운영되고 있는 관할관, 심판관 제도, 지휘관의 감경권을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 군 사법개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부실수사, 사건의 은폐와 축소는 계속 반복될 것이다."


태그:#권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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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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