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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강이 있었다

엄마가 말했다. "선재야, 너마저 감옥에 보내면 엄마는 죽어." 한참 뒤에 선재가 대답했다. "엄마, 세상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살고 싶어요."

어떤 강연에 참석했다가 밑도 끝도 없이 우연히 보게 된 영화의 어느 장면에서 내 절제선이 무너졌다. 얼굴은 벌써 눈물과 콧물 범벅. 죽어도 아들을 군대에 보내야 하는 엄마와 죽어도 군대에서 빠져야 하는 아들의, 오직 대한민국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참 기묘한 이야기. 옴니버스영화 <어떤 시선>의 마지막 작품, 양심적 병역거부를 다루고 있는 민용근 감독의 '얼음강'은 그렇게 훅! 어퍼컷을 치며 내게 들어왔다.

그리고 한참 뒤 나처럼 연극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시민들과 연극판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꾼들이 한곳에 모여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간이 인간으로 살지 못하는 참 기묘한 이야기들'을 죄 묶어서 넋두리 축제를 한판 벌여보겠다고 전전긍긍할 때. 나는 그 얼음강을 떠올렸다.

어떤 사람은 성노동자를 생각했다. 다른 누군가는 형제복지원을, 삼성반도체 피해자들을, 혹은 성소수자를 떠올렸다. 언젠가 녹아 흐를 것이지만 꽁꽁 언 채 절대 녹지 않을 것처럼 버티고 있는- 수천 갈래의 얼음강과 그 위에서 봄을 기다리는 수많은 인간들을 우리는 가능한 많이 떠올렸다.

그리고 마침내. 이 모든 사연들로 만든 참 기묘하고 믿기 힘든 인간이야기의 축제가 시작됐다. 대한민국 최초의 종합인권연극축제이다.

인권연극제 보도자료 공식 배포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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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초의 종합인권연극제

초청공연 <빨간시>와 시민인권연극단의 <얼음강>을 시작으로 10월 17일부터 11월 15일까지 한 달간 인권연극제에 올려지는 연극들은 무려 19편. 국내에서는 아직 한번도 이렇게 다양한 인권연극들이 하나의 축제로 무대에 올려진 적이 없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연극을 보러 올 것인가, 혹은 얼마나 호소력 있게 이 묵직한 이야기들을 펼칠 것인가, 또는 어떻게 아마추어 시민들과 전문 연극인들 사이 전문성의 편차를 줄일 것인가 등이 내 주된 관심사였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머지 않아 아마도 이런 고민들은 짐작보다 중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미쳤다.

인권연극제가 분명히 대답해야 하는 질문은 오직 두 개뿐이다. 얼마나 진실되게 '그들과 수많은 그들로 이루어진 우리의 이야기'를 펼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외딴 섬처럼 고립된 인권담론과 대중을 연결 짓는 유의미한 시도가 될 것인가?

얼음강을 두드린다

대중으로부터 외면 당하고 있는 대한민국 사회의 인권담론들을 전혀 새로운 소통의 장으로 끄집어 내려는 이 몸짓을 나는 꽤 절절하게 바라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무엇을 통해 평가할 수 있는가? 내가 지금까지 찾은 유일한 답은 '그 사회가 사회의 가장 약한 사람들을 어떻게 다루는가 살펴보는 것', 이것뿐이다. 그러니 부디,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사람들이 어떻게 다뤄지고 있는지를 19편의 작품들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때론 절실한 비명으로 고발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얼음강 위에서 봄을 부르는 19개의 몸짓과 목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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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 함께 게재되었습니다.



태그:#양정훈, #인권연극제, #그리움은모두북유럽에서왔다, #시민인권연극단, #얼음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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