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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 우리는 세월호 사건을 통해 한 사회의 문화가 생명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음을 보았습니다. 무고한 생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을 우리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새들마을학교'는 배우고 가르치는 일, 즉 교육이 이 사회의 문화를 낳았다고 생각합니다. 교육과 배움으로 바른 문화를 만들기 원하는 이들이 모여 '생명을 살리는 교육'을 고민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열린도시연구소 새 들'과 산하 '새들마을학교'는 '생명의 교육, 길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고뇌와 축제로 펼치는 교육문화연구학교'를 10월 9일부터 12월 25일까지 12회 진행합니다. 이를 계속 연재합니다.... 기자말

오연호 기자는 '행복사회의 비밀'을 캐내려고 세 차례 덴마크로 날아갔고, 취재한 내용을 정리해 책으로 냈다.
▲ 오연호 기자 오연호 기자는 '행복사회의 비밀'을 캐내려고 세 차례 덴마크로 날아갔고, 취재한 내용을 정리해 책으로 냈다.
ⓒ 이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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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덴마크로 이민 가지 맙시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덴마크가 있습니다. 우리 안에 그룬트비 목사가 있습니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그걸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이 학교도 그 중의 하나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지난 9월 4일부터 '행복한 우리 만들기' 전국 순회 특강을 다니고 있는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는 강연할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12월 초까지 총 100군데를 돌아다닐 예정인 오 기자가 지난 17일에는 경기도 안양 비산동에서 행복한 사회를 꿈꾸는 이들 70여 명을 만났다. 교육문화연구학교 네 번째 시간, 오 기자는 '행복사회의 비밀, 행복교육 –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를 들고 강단에 섰다.

오연호 기자는 '행복사회의 비밀'을 캐내려고 2013년 봄부터 세 차례 덴마크로 날아갔고, 거기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정리해 책으로 냈다. 그가 쓴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를 읽고 난 뒤,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뉜다고 한다. 절망하든가, 희망에 차든가. 오 기자는 "절망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지만, 무엇인가 새로운 걸 만들어 가고 있는 사람들은 희망을 갖는 것 같다"고 구분했다.

강연이 시작하기 전, 지금 가장 행복한 두 사람이 나와서 노래했다. 사귄 지 한 달 하고 열일곱 날이 된 커플이다. "아름다운 그대 세상의 그 어떤 어려움도 난 두렵지 않아 이 사랑 때문에…."
▲ 행복한 커플 강연이 시작하기 전, 지금 가장 행복한 두 사람이 나와서 노래했다. 사귄 지 한 달 하고 열일곱 날이 된 커플이다. "아름다운 그대 세상의 그 어떤 어려움도 난 두렵지 않아 이 사랑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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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학교에서 행복한 인생이 시작"

북유럽에 있는 스칸디나비아의 작은 나라 덴마크는 UN이 조사한 행복지수에서 2012년과 2013년 연속으로 1위를 차지했다. 병원비는 공짜고, 모든 국민에게 주치의가 있다. 대학 등록금도 공짜다. 대학생이 되면 매달 우리 돈으로 약 120만 원의 생활비를 받는다. 초등학교에는 점수를 매기는 시험이 없다. 실직 후 2년까지는 예전 월급의 90% 정도까지 생활비를 준다.

오 기자는 덴마크 사회를 이렇게 표현했다.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다양한 선택지 속에서,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스스로 자기가 좋아하는 걸 찾는다. 그러면 나도 즐겁고 옆 사람도 즐겁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건 '학교'다. 개인에게는 '자존감'을 부여하고 친구 관계에서는 '더불어 사는 법(연대의식)'을 가르친다. 공립학교든 사립학교든 대안학교든 추구하는 바는 같다. 선택의 다양성을 보장할 뿐이다.

공부를 잘하는 건 여러 가지를 잘하는 것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수학을 잘하는 아이에게 수학을 못하는 아이를 도와주라고 권한다. 잘하는 사람을 비교하며 칭찬하지 않으니 못하는 사람의 자존감을 깎아내리지 않는다. '더불어 함께'와 '자존감'을 동시에 만족시킨다

학생들은 여유를 가지고 자유롭게 인생을 설계한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가기 전, 부모 곁을 떠나 1년간 인생학교에 간다. 축구나 음악 등 보통 자신의 취미에 따라서 인생학교를 선택하는데, 좋아하는 것을 만끽하며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 스스로 찾는 방법을 배운다. 인생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부쩍 어른스러워진다. 사회성과 독립심이 자연스레 길러진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가기 전, 6개월간 성인학교에 가기도 한다. 거기서 앞으로 뭘 하면 좋을지 다시 점검한다.

덴마크 학생들은 객관식이나 주관식으로 시험 보지 않는다. 논술로 실력을 검증하는 것도 아니다. 시험은 살아 있는 말로 한다. 현대사 시험을 본다고 치면, 24개 키워드를 추첨해서 하루 시간을 주고 다음날 구술시험을 보는 식이다. 말로 표현할 수 있어야 제대로 알고 이해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덴마크의 행복 비결은 학교에서 배운 것이 사회에서도 통한다는 데 있습니다."

사람은 평등하다고 학교에서 배운 대로 택시기사와 의사가 함께 어울린다. 식당 종업원으로 일해도 고등학교 동창회에 나가서 위축되지 않는다. 가장 잘사는 자와 가장 못사는 자의 임금 차이가 크지 않다. 70%에 달하는 노조조직률이 보여 주는 연대의식, 교육비와 의료비가 무료인 든든한 사회 안전망 등이 덴마크 사회를 안정된 사회로 만들기 때문이다.

깨어난 농민이 깨어 있는 시민으로  

그렇다면 덴마크 사회는 어떻게 지금에 이르게 되었을까. 오 기자는 150년 전에 행복의 씨앗을 뿌렸던 목사이자 정치가였던 그룬트비를 소개했다. 1864년 덴마크는 왕이 주도한 독일과의 전쟁에서 패했다. 그룬트비는 '깨어 있는 농민 되기' 운동을 벌였다. 살아 있는 교육으로 청년부터 깨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룬트비는 농민이 주도하는 성인용 자유학교를 만들었다. 이곳에서 농민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했다.

농민들의 고민은 협동조합 운동으로 이어졌다. 함께하면 개인이 하는 것보다 돈이 더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덴마크의 거의 모든 마을에 협동조합이 생겨났다. 이들은 연대의 힘을 몸으로 확인했다. 황무지를 농지로 바꾸는 달가스의 국토 개간 운동도 때마침 일어났다. 정부 주도가 아니라 농민이 주도하는 방식이었다. 개간된 농지는 가난한 농민에게 싸게 나눠 주었다. 전쟁에서 잃어버린 땅을 남아 있는 땅 안에서 찾아냈다.

협동조합을 만들며 일어났던 농민은 그대로 머물지 않고 깨어 있는 시민이 되었고, 깨어 있는 시민은 연대하여 당을 만들었다. 그룬트비의 정신을 받든 이들이 꾸린 당이 지난 100년 중 70년을 집권했다. 그 기간 동안 덴마크의 문화 속에는 그룬트비의 정신이 촉촉하게 스며들었다. 그렇게 덴마크는 행복한 사회가 되었다.

참석자들의 웃는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 교육문화연구학교 참석자들의 웃는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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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행복한 사회를 꿈꾼다면

오연호 기자는 우리 사회를 보며 절망만 하고 있을 게 아니고 덴마크 같은 행복사회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하자고 했다.

"지금까지 달려오던 길과 다른 길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하루든 이틀이든 열흘이든 두 달이든 잠깐 멈춰서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나, 아이들은 어떻게 교육했나, 우리 아이는 나중에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집시다. 눈을 크게 뜨고 우리 안의 그룬트비와 우리 안의 덴마크를 발견하고, 그들을 응원하고 그들과 함께하고 내가 그들이 되어 봅시다. 그러면 우리도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한 참석자는 한국사회에는 강력한 구심점이 없는 것 같은데 변화가 과연 가능할런지를 물었다.
▲ 교육문화연구학교 질의 응답 시간 한 참석자는 한국사회에는 강력한 구심점이 없는 것 같은데 변화가 과연 가능할런지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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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기를 지나 행복이 문화가 되는 그날까지

강연 후 질의응답이 되자 참석자들의 눈빛은 더 또렷해졌다. 9살 자녀를 둔 한 참석자는 자신은 종교가 없다고 밝히며 고민스레 물었다.

"덴마크 사회가 행복하게 된 데에는 기독교 전통이 강력한 구심점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사회에는 그런 구심점이 없는 것 같은데 과연 변화가 가능할까요?" 

"루터교가 80%인 덴마크는 그룬트비의 발언이 스며들기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조국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사랑하라는 전제가 덴마크 사회를 형성하는 데 기여한 게 사실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정신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자유와 평등, 안정과 신뢰, 이웃과 환경 등은 불교냐 기독교냐를 떠나서 기본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가치 아닐까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중요한 거 같습니다. 또한 우리는 남과 북이 분단된 현실 때문에 어려운 점이 더 많습니다. 분단의 폐해가 너무 큽니다. 진정한 행복사회로 가기 위해선 분단 문제를 극복하는 게 그래서 중요합니다." (오연호 기자)

오 기자가 통일을 위해서는 남한 사회가 지금보다 더 행복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짚자 또 다른 참석자가 물었다.

"통일은 쉽지 않은 일 같습니다. 북한이 봤을 때 남한이 행복해야 하는데, 남한은 바뀌어야 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정치나 사회 여러 부분을 봤을 때 서로 신뢰를 못하는 상황입니다. 시민들이 깨어서 뭔가를 하려고 했을 때 덴마크는 정부가 방해하지 않았는데, 우리는 기득권층이 방해를 많이 합니다. 와해를 시키려 합니다. 그걸 어떻게 뚫을 수 있을까요. 한국 사회에서는 어떻게 접근해야 가능할까요." (이재호 열린도시연구소 새 들 회원)

이제는 기득권층, 이대로 괜찮다고 하는 보수주의자들도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오 기자는 판단했다. 특히 교육 분야에서 그렇다고 했다. 보수의 본산이라는 대구의 교육청도 변화를 모색하며 강연을 요청했다. 오 기자가 순회강연 중에 만난 우리 아이들의 실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피폐했다. 한 초등학생이 쓴 메모 내용이다.

'어른들아, 우리는 이렇게 살면 스트레스 안 받는 줄 아냐. 이렇게 살면 우리가 어떤 일을 저지르게 될지 모르니?'
'나는 내가 사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우리 엄마가 살고 있다.' 

오 기자는 더 이상 우리 아이들을 이런 상태로 내버려 두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다행인 건 이를 극복하려고 하는 긍정적인 모델이 곳곳에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늘어나고 있는 마을만들기 사업과 혁신학교가 그 예이다.

경기도에서 혁신학교가 제일 잘 되는 곳은 양평인데, 4명의 선생님이 즐거운 학교가 될 때까지 양평을 떠나지 않겠다고 도원결의를 했다고 한다. 그런 학교에서 졸업한 아이들이 양평의 생활 경제 속에 정착하고 나중에는 양평군수가 이 아이들 속에서 나와야 한다고 봤다. 홍성에도 이미 그런 흐름이 있다. 홍성의 대안학교인 풀무학교에서 자란 학생들이 친환경농사도 시작하고 협동조합도 만들고 도서관도 세우며 홍성의 문화를 이끌어가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지방에서 서울을 서서히 물들여가야 한다고 오 기자는 주장했다.

"지금은 과도기입니다. 혁신학교에서 추구하는 가치가 문화가 되면, 옆집도 그러고 앞집도 그러고 우리 사회가 다 그러면 괜찮아집니다. 아래로부터의 변화와 정치의 변화가 맞물려서 가야 되겠지요." 

오 기자는 우리 사회가 자괴감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분단이 되어 있고, 배고픔을 해결하는 문제가 너무 컸기에 생존하기 위해서는 침묵해야 했지만, 질곡이 있는 상황에서 이만큼 배고픔을 해결했고 이만큼 민주주의를 이뤄왔다고 했다. 오 기자는 "우리 민족의 과제가 만만치 않지만, 만약 우리가 이를 풀어나간다면 이 지구상의 과제를 우리가 해결하는 것"이라고 했다.

오연호 기자와 참석자들의 행복한 전체 사진. 다들 표정이 행복해 보인다.
▲ 교육문화연구학교 오연호 기자와 참석자들의 행복한 전체 사진. 다들 표정이 행복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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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를 다녔으면 한다.
▲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우리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를 다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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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새들마을학교 홈페이지(club.cyworld.com/saedeulmaeul)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새들마을학교, #교육, #교육문화연구학교, #오연호, #덴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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