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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김순희 시민기자는 울산 동구의 마을 도서관, 꽃바위작은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고 있습니다. 마을사람 누구나 오순도순 소박한 정을 나누는 마을 사랑방 같은 작은도서관. 그곳에서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들께 전합니다. [편집자말]
아침부터 꼬마 손님들이 라바책갈피 만들느라 신중합니다
▲ 꼬마 아이들의 작은 만들기 체험을 하네요 아침부터 꼬마 손님들이 라바책갈피 만들느라 신중합니다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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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축제가 많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통한 축제도 지역마다 특색을 가지고 여러 곳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지난 17, 18일 이틀 동안 저희 지역에서는 '2014 울산 동구 북페스티벌 : 책, 날개를 달다' 축제가 열렸습니다. 동구의 작은도서관들이 주축이 되어 격년으로 여는 행사입니다.

올해도 동구의 자랑거리인 대왕암공원 입구에서 성황리에 이루어졌고, 아무 탈 없이 무사히 행사를 치렀지요. 하지만 준비기간도 길고, 할 때마다 참여했지만 아직도 긴장되고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샘, 이번에도 우리 도서관이 체험할 거 많이 준비해야죠."
"이제 저도 나이를 묵는지 이것저것 준비할라카니 힘드네요."
"샘, 그래도 우리는 대충 못 한다는 거 알죠? 하하."
"암요~. 아이고, 우짜다가 이래되었는지 모르겠슴다."
"다~ 샘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지요."
"그건 맞아요. 누굴 탓하겠는교?"

예쁜 부스 속에서 아이들이 많이 참여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 북페스티벌 첫날! 예쁘게 부스를 꾸몄어요 예쁜 부스 속에서 아이들이 많이 참여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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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행사든 특강이든 자원봉사자 '샘'들은 저보다 더 준비를 많이 하려 합니다. 도서관에서 제가 할 일들이 많아져서 미처 다 챙기지 못할 때엔, 자원봉사자들이 알아서 제가 하려는 것들을 다 잘 챙겨주시고 있지요. 이번 북페스티벌도 마찬가지입니다. 뭐니 뭐니 해도 책 축제 행사 때엔 아이들이 체험할 것을 많이 준비해 가야 한다는 생각엔 저나 저희 도서관 자원봉사자들의 생각이 같습니다.

하지만 저도 이제 나이를 먹는지 때론 몸이 안 따라주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대충 하자고 말을 건네기라도 하면 자원봉사자들은 딱 잘라 말합니다. 이왕 하는 것 모두가 만족할 만한 재미있는 것들로 흥미를 줘야 하고, 뭐 하나라도 도서관에서 이루어지는 것들은 다 재미있고 즐겁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북페스티벌 첫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준비해간 재료들이 불과 몇 시간 후에 바닥나고, 체험부스 뒤쪽에선 자원봉사자들이 둘러앉아 재료들을 준비하느라 정신없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노라니 제 가슴이 울컥했습니다.

간단하지만 예쁜 만들기에 아이들이 좋아하네요
▲ 문(?) 열자마자 점점 손님들이 많아집니다 간단하지만 예쁜 만들기에 아이들이 좋아하네요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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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재료를 더 주문해서 가져와야 할 것 같네요. 우짜까요?"
"그라믄 제가 전화해놓을 테니 누가 재료 가지러 좀 댕겨오이소."
"혹시 모르니 낼 할 거라도 좀 꺼내 하고 있으세요, 샘."
"알았으니 얼릉 댕기오이소. 와~ 이렇게 많이 올 줄 몰랐네요. 대왕암공원이라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올 줄 기대도 안 했는데, 글쵸?"
"그러게요. 우쨌든 다행임다."

평소에 대왕암공원에는 운동하러 나온 주민이나 산책 나온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북페스티벌 첫날 금요일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단체 견학 온 아이들과 인근 중·고등학교에서 소풍을 온 아이들이 부스마다 체험행사 하느라 북적북적했습니다.

그냥 기분이 좋았습니다. 평소 같다면 바닷바람이 많이 불어 춥기도 하고 바람 때문에 사람들의 외출이 적은데, 이날은 웬일인지 바닷바람도 적고 제법 포근한 맑은 가을날이었습니다.

쉴새없이 바쁜 손놀림을 하고 있는 저희 자원봉사 샘들이 있어 든든합니다
▲ 계속 사람들이 찾아드네요 쉴새없이 바쁜 손놀림을 하고 있는 저희 자원봉사 샘들이 있어 든든합니다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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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꺼번에 아이들이 몰려와 체험을 하다 보니 몇 시간 안에 재료가 동이 나고, 부랴부랴 자원봉사 샘들이랑 급하게 한쪽에 자리 잡고 앉아 재료를 더 준비했습니다. 토요일은 가족 단위로 산책을 많이 나오기에 재료를 첫날보다 더 많이 준비해 놓았던 게 다행이었습니다.

첫날의 북콘서트는 가을밤 정취를 더 물들였습니다. 정희성 시인과 가수 한영애의 어울림 한마당이 참으로 마음을 울렸습니다. 그 한가운데 선 저희 도서관 부스에 아이들이 줄을 서서 신기해하고 즐거운 모습으로 참여하는 모습이 정말 흐뭇했습니다.

그리고 북페스티벌이라고 하면 항상 생각나는 한 분이 있습니다. 저희 북페스티벌이 올해 3회째 열렸는데, 아마 그 일이 있은 건 2회 때 같습니다. 올해 북페스티벌 첫날은 동구의 작은도서관 전체가 부득이 휴관을 했습니다. 하지만 2회 때는 도서관 문을 열었는데, 아마 그때 전 저희 도서관을 이용하는 분들께 문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동구청광장에서 이루어지는 북페스티벌에 많은 참여바랍니다. 이동버스를 이용한 미니도서관도 운영하니, 바쁘시더라도 시간 내어 놀러오세요."

그리고 다음 날 오후, 한창 행사진행으로 여러 부스를 돌아다니고 중앙 무대에서 일을 도와주고 있을 때였습니다. 자원봉사 샘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우리 도서보수팀도 북페스티벌에 참여했어요. 그리고 사진 속 뒤를 보세요. 열심히 바닥 난 재료를 준비하고 있는 도서관 샘들.
▲ 아픈 책 치료해요 우리 도서보수팀도 북페스티벌에 참여했어요. 그리고 사진 속 뒤를 보세요. 열심히 바닥 난 재료를 준비하고 있는 도서관 샘들.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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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여기 있었네요."
"네, 왜 그래요? 뭔 일 생겼는교?"
"아니요 샘, 어떤 어르신이 샘을 찾아요."
"네? 왜요? 누구시지…? 알았심더.'

어느 할아버지 한 분이 급하게 저희 도서관 부스를 찾아와 저를 찾는다는 얘기에 무슨 일인가 싶어 서둘러 갔습니다. 낯익은 어르신은 도서관에 가끔 오셔서 책을 빌려가는 분이었습니다. 평소에도 이것저것 궁금한 걸 그때그때 잘 물어보시던 어르신이었고, 분명 얘기 해드린 것도 다음에 찾아오시면 또 물어보는 그런 분이었지요.

"아 도서관 샘, 안녕하신교? 문자를 받고 급하게 여기로 책 반납하러 왔심더."
"네? 책 반납하러 여기까지요? 도서관 문 열었을 텐데 그쪽으로 안 가시고요?"
"문자가 왔는데요. 동구청으로 오라케서요. 도서관 뭐, 책, 하믄서 동구청으로 오라케서 일 마치고 이리 온 거 아입니꺼."
"아 네 그러셨군요. 제가 문자로 동구청에서 북페스티벌 하니 구경하러 오시라고 한 문자를 잘못 보셨는가 봅니더."
"아이고, 그랬는교? 잘못 봤는가베."
"이왕 오셨으니, 제가 책 반납할 테니 책 이리 주이소."

도서관 샘들이 직접 만든 포토존에서 아이들이 사진을 찍네요
▲ 예쁜 포토존에서 한 컷! 도서관 샘들이 직접 만든 포토존에서 아이들이 사진을 찍네요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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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지 못할 일이 생겼던 겁니다. 문자를 오해하고 동구 끝자락에 위치한 꽃바위작은도서관에서 동구청까지 버스를 타고 책 반납하러 오신 어르신 때문에 자원봉사 샘들이랑 저는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물론 어르신도 머쓱해 하시면서 한동안 그렇게 웃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그 어르신은 책을 빌리러 오십니다. 퇴근을 하는 버스 안에서도 우연히 만나면 인사를 먼저 해주십니다. 제가 신문에 쓴 글을 봤다며, 신문에 도서관 샘의 얼굴이 있어 반가웠고 글도 참 잘 읽어보았노라고 말입니다.

올해 북페스티벌 행사 때는 휴관을 했습니다. 저희 도서관에서 몇 년째 '노인일자리사업'으로 일을 하고 계신 어르신이 계신데, 고맙게도 일부러 운동 삼아 걸어서 대왕암공원까지 나오셨다고 하셨습니다. 어르신은 저희 도서관 부스에서 열심히 체험진행을 하고 있는 자원봉사 샘들에게 아이스크림 하나씩 사주시고는 바람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정말 어디서나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 자랑스런 '빅북구연팀'이네요
▲ 당당히 공연부스를 찾지한 '빅북구연팀' 정말 어디서나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 자랑스런 '빅북구연팀'이네요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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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북페스티벌은 생각보다 많은 주민들이 행사에 참여해주고, 많은 분들이 다양한 행사에 적극적으로 도와주신 덕분에 무사히 잘 마쳤습니다. 저희 꽃바위작은도서관은 체험행사 부스 외에 '빅북구연팀'의 공연부스도 하나 더 열었습니다. 많은 아이들과 어른들까지 관심 있게 참여해주셨습니다.

새삼 그동안 힘들었지만 잘 견디며 여기까지 온 저나 빅북구연팀, 그리고 도서관을 위해 쉬지 않고 체험행사를 진행해준 자원봉사 샘들에게 다시 한번 더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책 반납하러 그 먼 데까지 책을 들고 오신 어르신, 같은 곳에서 얼굴 보고 일한다고 일부러 찾아와서 간식을 사주고 가신 어르신, 참여하지 못해 미안하다며 주전부리를 들고 오신 많은 저희 도서관 자원봉사 샘들이 계셔서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바라볼 수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준비해간 체험재료 그 엄청난 양이 바닥났어요
▲ 이번에도 대박! 준비해간 체험재료 그 엄청난 양이 바닥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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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북페스티벌, #꽃바위작은도서관, #체험행사, #도서관자원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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