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자 400미터 T37 종목 결승, 6위로 들어오는 한국의 신유성 선수 ⓒ 심재철
"유성아!""엄마!"5번 레인의 한국 선수가 어머니를 알아보고 활짝 웃으며 손을 들고 반가워했다. 이 짧은 대화만으로도 애틋함이 밀려왔다.
최선을 다한 경기지난 19일 2014 인천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육상 경기 남자 400미터 T37 종목 결승전이 시작됐다. 출발선 바로 앞 관중석에서 5번 레인(신유성 선수)만 쳐다보던 어머니는 출발 총성이 울린 직후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했다. 아들과 함께 뛰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들은 어머니가 서 있는 곳으로부터 조금씩 멀어져가더니 곡선 주로를 돌아 결승선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어머니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아들이 꼴찌로 뛰고 있기 때문인 듯 보였다.
결국 신유성 선수는 여섯 명의 결승 선수 중에서 6위의 기록(1분 4초 34)으로 골인했다. 개인 최고 기록을 세우기는 했지만 상대적으로 실력 차를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1위로 결승선을 끊은 중국의 샹 구앙슈의 기록(54초 68)보다 무려 10초 가까이 차이가 나고 말았다.
얼마 후 신유성 선수는 자신의 지도자와 함께 관중석에 있는 가족을 찾아 올라왔다. 그 어머니는 지도자를 향해 상대적으로 모자란 경기 결과에 대해 거듭 죄송하다는 뜻을 전했다.
▲ 남자 400미터 T54 예선 3조, 한국의 이기학 선수가 스타트 직후 속도를 올리고 있다. ⓒ 심재철
더 깡마른 외국 선수들의 다리를 부러워하며 자기 아들도 더 체중 감량을 시켜야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 정도로 결과가 안타까웠던 것이다. 옆에서 한 마디 대꾸도 안 하던 아버지가 아들의 어깨를 감싸며 한마디 던졌다.
"괜찮아, 유성아.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뛰어."바로 그것이다. 얼마 전 끝난 제17회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에 비해 관중 숫자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하고 썰렁하지만 이들이 그곳에서 숨을 몰아쉬며 뛰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신유성 선수의 아버지의 한 마디가 이를 깨닫게 해 준 것이다.
이들이 등장할 때마다 종목명에 따라붙는 영문자 T 다음의 숫자가 이들 장애인의 종목별 세부 등급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들은 사회의 벽을 넘어 그 등급의 벽까지 훌쩍 뛰어 넘기 위해 또 다른 출발선에 서는 것이 아닐까?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뛰라는 신유성 선수 아버지의 말이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여자 1500미터 T12 결승전이 시작된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그런데 출발선에 선 사람은 셋뿐이었다. 그 중에 아무리 봐도 남자로 보이는 한 선수가 있었다. 그는 몸에 G라고 쓴 조끼를 입고 있었다. 장애인 육상 종목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가이드였다. 그의 손을 꼭 잡고 있는 선수는 안대를 하고 뛴 중국의 쳉진, 시각장애인 육상 중거리 선수였다.
그녀는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시종일관 앞서 달리더니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콜베코바 선수를 멀찌감치 따돌리며 1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 이후 안타까우면서도 애틋한 장면이 만들어졌다.
▲ 가이드와 함께 뛴 쳉진(중국) 선수, 그리고 결승선 통과 후 엎드려 흐느끼고 있는 콜베코바(우즈베키스탄) 선수[여자 1500미터 T12 결승] ⓒ 심재철
빠듯한 일정... 경기 즐길 틈 없이 촉박하다꼴찌이자 2위로 들어온 콜베코바 선수가 결승선을 통과한 직후에 쓰러져 엎드려 흐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이에 영문을 모르는 쳉진 선수는 우왕좌왕했지만 가이드가 머뭇거렸다. 차마 엎드려 있는 그녀를 코앞에 두고 지나쳐 혼자만 들어갈 수 없었던 것 같았다.
이들의 작은 행동에서 느끼고 배울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대회 운영 요원들은 다음 종목을 곧바로 진행하기 위해 바로 앞 종목이 끝나서 숨을 고르고 있거나 동료 및 가족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는 선수들을 서둘러 퇴장시키는 장면이 종종 목격됐다.
사전에 약속한 경기 시간을 엄수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조치라 보였지만 너무 빠듯하게 일정을 짜 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들에게도 자신들의 국기를 들고 트랙을 한 바퀴 정도 돌 수 있는 권리와 트랙 날바닥에 엎드려 흐느낄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을 줘야 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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