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서 가장 길러내기 힘든 포지션은 포수로 꼽힌다. 대학시절 10년에 한 번 나온 인재라고 꼽혔던 진갑용(삼성 라이온즈)도 프로에 적응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역대 최고의 포수로 인정받는 박경완(SK와이번스 2군감독)은 연습생 출신으로 프로 데뷔 후 3년 이상 2군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이택근, 이성열(아래 넥센 히어로즈), 최준석(롯데 자이언츠), 최형우(삼성) 등 포수라는 힘든 포지션에 적응하지 못하고 포지션을 바꾼 선수도 적지 않고 프로에서 끝내 이름을 날리지 못한 채 쓸쓸하게 은퇴한 포수들도 허다하다.

하지만 이 선수는 10년 이상 계속된 무명 생활 속에서도 언젠가는 찾아올 기회를 기다리며 자신을 담금질했다. 그리고 올해 포스트시즌 첫 경기부터 대활약을 펼치며 그동안 쌓인 한을 풀고 있다. 준플레이오프 1차전 MVP로 선정된 LG트윈스의 안방마님 최경철이다.

화려한 1군보다는 초라한 2군이 어울리던 무명포수

 19일 오후 창원 마산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1차전 LG 트윈스 대 NC 다이노스의 경기.1회초 2사 1, 2루 LG 최경철이 3점짜리 홈런을 쳐낸 뒤 주먹을 불끈 쥐고 베이스를 돌고 있다.

19일 오후 창원 마산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1차전 LG 트윈스 대 NC 다이노스의 경기.1회초 2사 1, 2루 LG 최경철이 3점짜리 홈런을 쳐낸 뒤 주먹을 불끈 쥐고 베이스를 돌고 있다. ⓒ 연합뉴스


오랜 무명 생활을 이긴 선수로 널리 알려졌지만 사실 최경철은 199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쌍방울 레이더스에 고졸우선지명으로 선발되며 재능을 인정받았다. 전주고 시절엔 연고지역에서 가장 뛰어난 고교 선수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유망한 신인 선수에게 제대로 된 몸값을 지불할 수 없었던 쌍방울의 사정 탓에 최경철은 프로 대신 동의대 진학을 택했다(1999 시즌을 마지막으로 SK가 쌍방울을 인수하면서 최경철에 대한 보유권도 SK로 넘어갔다).

최경철은 2003년 호기롭게 프로무대를 밟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SK에는 이미 홈런왕과 MVP출신의 당대 최고포수 박경완이 버티고 있었고 2001년 입단 당시 4억 5천만 원의 계약금을 받은 '특급 유망주' 정상호의 존재도 부담스러웠다.

적게는 30경기, 많게는 60경기에 출전하는 백업포수로 전전하던 최경철은 2006시즌이 끝나고 군복무를 선택했다. 하지만 전역 후에는 이재원이라는 또 한 명의 경쟁자가 추가되면서 오히려 최경철의 입지는 더욱 줄어들고 말았다.

결국 최경철은 2012년 5월 투수 전유수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넥센에 새 둥지를 틀었다. 넥센은 상대적으로 포수 자원이 부족한 팀이었지만 최경철은 허도환과의 주전경쟁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했고 이듬해 군복무를 마친 박동원이 가세하면서 다시 1군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1, 2군을 오가는 무명 포수로 프로 10년을 훌쩍 넘긴 최경철에게 또 다시 러브콜을 보낸 팀은 LG였다. 포수난에 시달리던 LG는 지난해 4월 24일 내외야를 오가던 멀티플레이어 서동욱을 내주고 최경철을 데려왔다.

포수로 117경기 출전, LG의 기적 이끈 숨은 공로자

최경철은 지난해 시즌 LG에서도 38경기 출전에 그치며 무명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윤요섭과 현재윤의 잦은 부상, 조윤준의 더딘 성장으로 고민하던 LG는 적어도 수비에서는 안정감을 뽐내는 프로 12년 차의 35세 노장포수 최경철에게 안방을 맡겼다.

최경철은 30대 중반에 찾아온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최경철은 올 시즌 117경기에 출전하며 LG의 주전 포수로 활약했다. 7월에는 프로데뷔 12년 만에 생애 첫 올스타에 뽑히기도 했다.

최경철은 올 시즌 타율 .214 62안타 4홈런 39타점, 그리고 3할이 채 되지 않는 출루율(.280)과 장타율(.293)을 기록했다. 포수라는 포지션을 고려하더라도 썩 좋다고 할 수 없는 성적이지만 최경철은 117경기에 출전하면서 단 3개의 실책만을 기록했다. 포수로서 자신의 역할을 톡톡히 했냈다는 뜻이다.

그리고 19일 NC다이노스와의 준플레이오프1차전에서 최경철은 자신의 야구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을 만들었다. 최경철은 1회초 이재학을 구원한 테드 웨버의 3구째를 잡아당겨 좌측 관중석 중단에 꽂히는 3점 홈런을 터트렸다. 경기 초반 기선을 제압한 최경철의 한 방이 없었다면 LG가 이렇게 편안한 승리를 거두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최경철의 활약은 '본업'인 수비에서도 돋보였다. 최경철은 3회와 7회, 다소 불안했던 포구를 틈타 2루로 진루하려던 NC의 주자를 두 번이나 잡아냈다. 최경철의 정확한 송구에 허탈하게 덕아웃으로 물러난 주자는 지난해 시즌 리그 도루왕 김종호와 NC가 자랑하는 전문 대주자 요원 이상호였다.

결국 LG는 최경철의 공수에 걸친 대활약에 힘입어 부담스러운 가을야구 원정 1차전을 13-4 대승으로 이끌 수 있었다. '앉아쏴' 조인성(한화 이글스)의 전성기가 지난 이후 포수는 언제나 LG의 약점으로 꼽히던 포지션이다. 하지만 최경철이라는 '늦깎이 스타'가 등장한 지금, LG의 안방은 걱정거리가 아닌 자랑거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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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LG 트윈스 최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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