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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출지
 서출지
ⓒ 추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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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신라인'으로 유명한 윤경렬 선생은 저서 <겨레의 땅 부처님 땅>의 '첫머리에 한 말씀'에서 "(경주) 남산에 문화재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남산 자체가 그대로 문화재"라고 말했다. 대구공정여행A스토리협동조합은 그 남산 중에서도 서출지, 칠불암, 신선암, 봉화대능선, 용장사 터, 설잠교를 주파하는 답사여행을 지난 10월 18일 실시했다. 해설은 정만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파견예술인이 맡았다.

서출지(書出池)는 488년(소지왕 10) 정월 15일에 글이 나온 연못이다. 그날 소지왕은 '이것을 뜯어보면 두 사람이 죽을 것이요, 뜯어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을 것이다'라는 글자가 쓰여 있는 봉투를 받는다. 물론 그 봉투는 연못 속에서 나온 노인이 건넨 것이다.

봉투 안에는 '(궁 안에 있는) 거문고갑을 활로 쏘라'는 글씨가 적힌 종이가 있다. 왕이 궁궐로 돌아가 거문고갑에 활을 쏜다. 왕을 살해할 음모를 꾸미며 간통을 해온 중과 궁녀가 거문고갑 뒤에 있다가 활에 맞는다. 중과 궁녀는 사형을 당한다.

정만진 해설가는 "궁궐 안에서 궁녀와 중이 자유롭게 연애를 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이 설화는 이차돈 순교 사건을 계기로 공인되는 528년보다 40년이나 전에 이미 불교가 신라 왕족 사이에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라고 설명한다.

칠불암
 칠불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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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동 동서 3층석탑에서 30분가량 오르면 국보 312호인 칠불암 마애불상군이 나타난다. 칠불암 마애불상군은 절벽 등의 바위에 일곱 불상이 새겨져 있다는 뜻이다. 절벽 아랫부분에 삼존불이 조각되어 있고, 삼존불 앞의 돌출 바위에 사방으로 불상이 새겨져 있다.

정만진 해설가는 "사면불은 부처의 은혜가 이 세상 어디에도 다 골고루 비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중앙에 비로자나불이 있고, 사방으로 네 부처가 또 있으니 그늘이 있을 수 없지요. 사람들이 사면불을 새긴 것은 그러한 불교 교리를 형상화한 노력인 겁니다. 경주에는 소금강산에도 유명한 사면불이 있습니다"하고 보충 설명을 한다.

칠불암 마애불상군 뒤로 절벽을 오르면 신선암 마애보살상(보물 199호)을 보게 된다. 신선암 보살상에 닿으면 남산에서 볼 수 있는 최고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게다가 발아래에 훨훨 나는 듯한 구름 그림을 거느리고 있는 보살상 또한 천하 걸작이다. 보살상은 보관을 쓰고 구슬을 지녔으며 손에도 꽃가지를 들고 있다.

경주 남산 신선암을 앞뒤로 두고 답사자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멀리 절벽 아래로 토함산이 보인다.
 경주 남산 신선암을 앞뒤로 두고 답사자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멀리 절벽 아래로 토함산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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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암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봉화대능선을 타고 계속 오르락내리락 나아가다 보면 삼화령을 소개하는 안내판을 만나게 된다. 삼화령은 향가 <안민가>를 지은 충담사의 설화가 전해져오는 곳이다. 이곳에서 100미터남짓 나아가면 용장사터 이정표가 왼쪽에 서 있다.

용장사는 김시습이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쓴 곳이다. 정만진 해설가는 "김시습이 남긴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세상을 받아들이지 않고 표연히 사라지는데, 이는 작가 본인이 권력을 부정한 채 산과 들을 떠돌며 살았고, 마음속이 분노와 고독으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김시습의 시 '용장사에 머물며(居茸長寺經室有懷)' 도 소개했다.

茸長山洞窈 용장골 깊으니
不見有人來 오는 이 볼 수 없네
細雨移溪竹 보슬비는 냇가 대나무를 찾아가고
斜風護野梅 비낀 바람은 들매화를 흔드네
小窓眠共鹿 작은 창가에서 사슴과 함께 잠자는
枯椅坐同灰 마른 의자 위의 내 몸 재와 같아서
不覺茅簷畔 깨어날 줄을 모르네 억새 처마 밑
庭花落又開 뜰에 꽃들은 지고 또 피는데
 
흔히 용장사터 삼층석탑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탑'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탑의 실제 높이는 4.5m에 불과한데도 사람들은 그렇게 부른다. 용장사터 탑이 하층 기단을 두지 않고 거대한 바위 위에 곧장 몸을 얹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신라인들이 남산 전체를 이 탑의 기단으로 삼았다고 해석한 결과다. 그래서 탑 높이 4.5m에 이곳의 해발 400m가 보태지면서 세계 최고의 404.5m 높이를 자랑하는 탑이 된 것이다.

용장사터 삼층석탑
 용장사터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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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층석탑에서 10미터쯤 내려오면 보물 913호 마애여래좌상이 새겨져 있는 바위가 나타난다. 이 거대 바위가 곧 삼층석탑의 하층 기단이다. 불상은 입술을 꼭 다물고 멀리, 남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수리봉을 바라보고 있다. 아주 사실적인 작풍을 보여주는 이 불상은 부처님의 무릎 아래에 너무나도 세밀한 연꽃무늬까지 거느리고 있다.

그런데 이 마애여래좌상 앞에는 더욱 놀라운 모습의 보물이 또 있다. 보물 187호인 삼륜대좌불(三輪臺座佛)이다. 놀랍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두 가지로, 첫째는 둥글둥글하게 도는 바퀴 같은 돌 셋을 3층탑처럼 포개어 받침자리로 삼고 있는 그 특이한 조형 때문이다. 2m가 조금 넘는 대좌 위에 1.4m 높이의 불상이 앉아 있는 이런 불상은, 과문한 탓인지, 다른 어디에 또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두 번째는, 머리가 달아나고 없는 처연한 불상의 모습 때문이다. 누군가가 목을 날려버렸다. 누굴까? 정만진 해설가는 "아마도 조선 시대에 숭유억불 사상에 도취한 누군가가 그랬을 법합니다. 종교가 다르다고 해서 이토록 무참한 행위를 해서야 되겠습니까? 어느 종교든 근본이 사랑과 포용인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혹 경주박물관 뒤뜰에 가보셨다면 거기에 엄청나게 진열되어 있는 목 없는 불상들을 목격한 분도 계실 겁니다. 모두 분황사 우물에서 건진 것들이죠. 불상의 목을 잘라 우물에 집어던지는 행위는 비인간적이라고 비판받아 마땅합니다"하고 말했다.

경주 남산 용장사터 삼륜대좌불을 옆에 두고 답사자들이 사진을 찍었다.
 경주 남산 용장사터 삼륜대좌불을 옆에 두고 답사자들이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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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밧줄까지 타고, 가파른 바위를 조심조심 내려오면 설잠(雪岑 김시습의 법호) 김시습이 놓은 설잠교를 건너게 된다. 물론 지금 건너는 다리가 김시습이 놓은 바로 그 설잠교는 아니다. 그래도 생육신 김시습이 용장사에 들어와 스님이 되고, <금오신화>와 시를 쓰면서 보낸 시절을 생각나게 해주는 곳, 그곳이 바로 설잠교다. 설잠교 아래를 흐르는 맑은 물에 얼굴을 비춰보며,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 다시 한번 되새겨본다.

서출지에서 출발하여 남산동 동서 삼층석탑, 전 염불사터, 칠불암, 신선암, 삼화령, 용장사터 삼층석탑, 삼륜대좌불, 설잠교를 거쳐 용장마을로 내려오면 대략 9시간 걸린다. 물론 땅만 보고 줄곧 걷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 해설가의 말까지 들으며 역사여행을 할 때 그렇다. 나는 남산 등산로 중 이 길을 최고로 꼽고 싶다.

첫째, 충분한 등산이 된다. 둘째, 남산 유일의 국보 칠불암을 볼 수 있다. 셋째, 남산에서 바라보는 최고의 전망을 신선암에서 즐길 수 있다. 넷째, '세계에서 가장 높은 탑'인 용장사터 삼층석탑이 보여주는 아찔한 아름다움을 맛볼 수 있다. 다섯째, 머리 없는 삼륜대좌불을 보며 종교란 무엇인가 사색할 기회를 얻는다. 여섯째, 김시습의 흔적을 떠올리며 조선 초기의 역사를 되짚어볼 수 있다. 일곱째, 설잠교에서 용장마을까지 이어지는 완만하고 긴 하산로를 천천히 걸으며 '느리게 사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태그:#남산, #용장사, #김시습, #대구공정여행A스토리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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