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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섭씨가 10월 4일 삼척 원전 유치 찬반 주민투표 참여를 호소하기 위한 걷기에 참여하여 삼척시민들과 함께 길거리에 '핵발전소 반대' 리본을 붙이고 있다.
▲ 삼척 핵발전소 반대 걷기에 참여한 이진섭씨 이진섭씨가 10월 4일 삼척 원전 유치 찬반 주민투표 참여를 호소하기 위한 걷기에 참여하여 삼척시민들과 함께 길거리에 '핵발전소 반대' 리본을 붙이고 있다.
ⓒ 김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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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발전소가 기준치(연간 0.25~1mSv) 이하의 방사선을 방출한다고 해도 원전 인근에 오래 살면서 장기간 노출된 주민이 갑상선암에 걸렸다면 원전에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고리원자력발전소(아래 고리원전)에서 방출한 방사선이 기준치 이하이지만 국민 건강을 해치지 않도록 최소한으로 정한 이 기준이 절대적으로 안전을 담보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법원, 원전과 암 발병의 인과 최초로 인정

부산지법 동부지원 민사2부(재판장 최호식)는 지난 17일 이진섭(48)씨, 이균도(22)씨, 아내 박금선(48)씨가 원전 운영 공기업인 한국수력원자력(아래 한수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박씨에게 위자료 1500만 원과 지연 이자를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원전의 존재와 원전 인근 주민의 암 발병에 인과가 있다고 인정한 최초의 판결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갑상선암이 발병한 박씨는 원전 6기가 있는 부산 기장군의 고리원전에서부터 7.6km가량 떨어진 곳에서 20년가량 살면서 고리원전에서 나오는 방사선에 장기간 노출된 것으로 보인다"며 "한수원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책임소재를 분명히 했다.

소송 당사자인 이진섭씨와 전화를 통해 몇 가지를 확인해 보았다. 아래는 지난 18일, 이씨와의 전화 인터뷰 일문일답이다.

- 어떻게 이번 소송을 제기하게 되었는지 배경을 설명해 달라.
"균도는 자폐를 앓고 있고, 나는 2011년 대장 내에 악성신생물이 발견돼 그 해 5월 수술을 받았다. 집사람도 갑상선암으로 올해 2월 수술 후 항암치료 중이고 장모 김일기(75)씨는 2009년 위암 수술을 받았다. 이렇게 전 가족이 각종 암에 걸리고 (아들이) 자폐를 앓고 있는 이유가 고리 원전에서 발생하는 방사선 때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 언제부터 기장 지역에 살았는가?
"균도는 외가에서 태어나서 자랐는데 고리원전 반경 3㎞ 이내이다. 우리 가족 모두 20년 이상 고리 원전 5㎞안에서 살았고, 현재도 고리와 가까운 기장읍에 살고 있다. 우리 가족의 발병 원인은 고리핵발전소로 보는 이유이다."

- 언제 소송을 제기했고 그 동안 어떤 심리 절차들이 있었는가?
"2012년 7월에 소송을 냈다. 삼성반도체와 싸우는 반올림을 많이 참고했다. '피해당사자가 발병 원인을 규명하라'는 논리에 맞서 '고리 원전이 들어올 때 안전하다고 했으니 우리 가족의 여러 질병에 대한 잘못이 원전에 없다는 근거를 밝혀라'는 취지로 소송을 냈다. 이에 한수원은 그 근거를 제대로 내놓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 가족들의 건강 이상 문제가 고리 원전에서 방출되는 방사선 때문이라고 판단할 만한 근거는 있는가?
"갑상선암의 경우 여성에 한해 원전 주변의 발병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서울대의학연구원에 의하면 원전에서 5㎞ 이내에 거주하는 여성의 갑상선암 발병률이 원전에서 30㎞ 밖에서 거주하는 여성보다 2.5배 높다고 통계적으로 확인됐다."

- 근래 역학조사에 의하면 기장 지역 주민들의 암 발생률이 다른 지역의 3배에 달하는 데 이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알려 달라.
"동남권원자력의학원과 기장군은 공동으로 지난 2010년 7월부터 2013년 말까지 3년 6개월 동안 '기장군민 건강증진사업'을 진행했다. 그 결과 검진 주민 중 총 97건의 암이 발견됐다. 환산하면 암 진단율이 3%를 넘는다. 이는 서울대병원 강남센터의 암 진단율 1.06%, 삼성서울병원 1.04%와 비교하면 수도권 대형 종합병원 검진센터의 암 진단율의 3배에 이르는 수준이다."

- 어떤 방식으로 조사가 이루어진 것인가?
"조사 기간 중 동남권원자력의학원 건강증진센터에서 검진을 받은 기장군민은 총 4910명이며, 이 가운데 3031명이 암 종합검진을 받았고 뇌혈관 검진은 1879명이 받았다. 기장군에 주민등록을 두고 3년 이상 거주 중인 주민을 상대로 건강검진을 했는데 65세 이상 노인은 검진비용 80만 원 전액을 지원받고, 일반 군민은 40만 원만 지원받았다. 노인 중에 안 받은 사람이 더 많다."

삼척 핵발전소 반대 걷기에 참여했다가 쉬는 시간에 이씨 부자가 잠시 시소를 타고 있다. 이씨 부자는 함께 손을 잡고 전국을 돌며 발달장애인법 제정 촉구를 한 것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 시소를 타고 있는 이진섭씨와 아들 이균도씨 삼척 핵발전소 반대 걷기에 참여했다가 쉬는 시간에 이씨 부자가 잠시 시소를 타고 있다. 이씨 부자는 함께 손을 잡고 전국을 돌며 발달장애인법 제정 촉구를 한 것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 김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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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 "소송 제기할 사람 더 생길 것... 이제 싸움 시작"

이진섭씨는 전화 인터뷰를 마치며 아래와 같이 말했다.

"암 발생에 대해 원전의 책임을 묻는 우리나라 최초의 소송이었다. 일본에서는 한 번도 이기지 못했던 소송이기에 애초부터 보상을 바라고 했던 싸움이 아니다. 처음에는 '1달러 소송'(1000원 손해배상)이라도 낼 생각이었다. 원전의 위험성을 알리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에 따라 앞으로 소송을 제기할 사람들이 더 생길 수 있다. 이제 지역 싸움의 시작이다."

이씨는 강원대 성원기 교수가 중심이 된 '탈핵희망 도보 순례'길에도 여러 차례 함께 걷고 있다. 지난 3일과 4일에는 '삼척 핵발전소 반대 주민투표 참가'를 호소하는 걷기 행렬에도 동참했다. 지난 6·4 지방선거에도 출마해서 고리핵발전소 폐쇄를 요구하는 등 탈핵 운동에 발 벗고 나섰다.

한편 이씨는 발달장애인법 제정을 촉구하며 3년 전 자폐를 앓고 있는 아들 균도씨와 함께 전국 도보 여행으로 한 것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태그:#갑상선암, #이진섭씨 부자, #부산 동부지원, #배상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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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초등위원장,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을 거쳐 현재 초록교육연대 공돋대표를 9년째 해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울의 혁신학교인 서울신은초등학교에서 교사, 어린이, 학부모 초록동아리를 조직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미래, 초록세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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