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의 페넌트레이스는 '타고투저'로 요약된다. 한국 프로야구 의 투타 각종 개인-팀기록이 한꺼번에 대거 바뀌었다. 타자에게는 어느 때보다 행복한 기록 풍년이었다면, 투수에게는 불명예스러운 기록 흉작의 시즌이었다.

올해 프로야구 9개 구단의 평균 팀타율은 2할 8푼 9리, 팀 평균자책점은 5.21에 이른다. 종전 최고의 타고투저 시즌이던 1999년의 2할 7푼 6리와 4.98을 15년 만에 경신했다. 경기마다 두 자릿수 득점과 핸드볼 스코어가 속출했다. 크게 리드하고 있던 팀도 점수 차를 지키지 못하며 블론 세이브를 허용하거나 역전패를 당하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나마 시즌 후반기에 타고투저 현상이 다소 잦아들지 않았다면 상황은 더 악화될 수도 있었다.

승승장구한 타자들... 넥센 개인 부문 '싹쓸이'

타격 1위를 기록한 삼성은 9개 구단 중 유일하게 팀타율 3할대(.301)를 기록했다. 1987시즌에 이어 역대 두 번째다. 한국야구사에 팀타율 3할을 기록한 팀은 두 번 모두 삼성이 유일하다. 팀 타율이 가장 낮은 LG조차 2할7푼9리를 기록다. 지난해였다면 4위에 해당하는 성적이었다.

올 시즌 프로야구에서는 3할 타자만 무려 36명이 배출됐다. 30홈런 이상을 기록한 타자만 7명이 나왔다. 개인 기록으로 들어가면 넥센과 삼성 타자들의 방망이가 유난히 불을 뿜었다.

넥센의 서건창(201안타, 135득점)은 사상 첫 200안타-130득점을 기록하며 종전 이종범(196안타)-이승엽(127득점)의 역대 기록을 동시에 갈아치웠다. 서건창은 최다안타, 타율, 득점 3관왕에 올라 유력한 이번 시즌 MVP 후보로 꼽힌다. 신고선수 출신에서 기록의 사나이로 거듭난 인생역전 신화는 한 편의 드라마다.

 14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2014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대 넥센 히어로즈의 경기. 5회초 2사 2루 넥센 박병호가 시즌 50호째 홈런을 때린 뒤 그라운드를 돌고 있다. 박병호의 50홈런은 2003년 이승엽과 심정수가 각각 56, 53홈런을 기록한 이후 11년만의 대기록이다.

14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2014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대 넥센 히어로즈의 경기. 5회초 2사 2루 넥센 박병호가 시즌 50호째 홈런을 때린 뒤 그라운드를 돌고 있다. 박병호의 50홈런은 2003년 이승엽과 심정수가 각각 56, 53홈런을 기록한 이후 11년만의 대기록이다. ⓒ 연합뉴스


넥센 박병호는 52개의 홈런을 날리며 2003년 이승엽-심정수 이후 11년 만에 50홈런 시대를 열었다. 한국 프로야구 단일시즌 역대 4위의 기록이다. 박병호는 3년 연속 홈런왕과 타점왕을 동시 석권하는 진기록도 세웠다.

넥센 강정호는 역대 최초로 유격수 40홈런 시대를 열었다. 강정호와 박병호 덕분에 넥센은 100득점-100타점 타자 두 명을 한 팀에서 동시에 배출하는 사상 첫 기록도 세웠다. 서건창을 포함해 100득점 타자 3명 동시 배출 역시 역대 최초다. 넥센은 개인 타이틀 주요 14개 부문에서 10개 부문(홈런, 타점, 최다안타, 타율, 장타율, 다승, 세이브, 홀드 등)을 독식하며 강세를 이어갔다.

삼성에서는 노장 이승엽이 만 38세 역대 최고령 3할-30홈런-100타점(0.308, 32홈런, 101타점) 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한국 프로야구 역대 최다홈런 기록 보유자인 이승엽은 통산 홈런 기록도 390개로 늘리며 다음 시즌 사상 최초의 400홈런 고지도 바라보게 됐다. 삼성은 이승엽과 최형우(31홈런), 야마이코 나바로(30홈런)까지 역대 4번째로 한 팀에서 30홈런 타자 3명을 동시 배출했다.

토종 에이스 '전멸'... 1위 방어율도 역대 최고

사상 최초의 5점대 자책점 시즌에서 보듯 대부분의 팀들이 마운드에서 부진했다. 일단 3점대 이하의 팀 자책점을 기록한 구단이 전무하다. 1위를 차지한 NC의 자책점이 4.31로 역대 가장 높다. NC-삼성-LG를 제외한 나머지 6개 팀은 5점대 이상의 높은 자책점을 기록했다. 특히 3년 연속 최하위에 그친 한화는 팀 자책점이 6.35이다. 프로 원년인 1982년의 삼미 슈퍼스타즈(6.23)를 뛰어넘었다. 한화는 역대 최악의 자책점 기록마저 경신하는 불명예를 겪었다.

역투하는 밴덴헐크 지난 8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2014 프로야구 넥센과 삼성의 경기에서 삼성 선발 밴덴헐크가 역투하고 있다.

▲ 역투하는 밴덴헐크 지난 8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2014 프로야구 넥센과 삼성의 경기에서 삼성 선발 밴덴헐크가 역투하고 있다. 2014 시즌 릭 밴덴헐크의 방어율 1위 기록은 역대 가장 높은 방어율이다. ⓒ 연합뉴스


개인 부문으로 봐도 올 시즌 규정이닝을 채운 선발투수 중 3점대 이하의 자책점을 기록한 투수가 전무하다. 자책점 1위의 삼성 릭 밴덴헐크가 3.18에 그쳤다. 3점대 자책점 투수가 방어율 부문 1위에 오른 것은 지난 2003년 이후 두 번째이다. 당시 현대 유니콘스의 셰인 바워스가 3.01로 1위에 올랐었다. 삼성은 역대 가장 높은 자책점 1위 기록을 경신했다.

올 시즌 규정이닝을 채운 선발투수 중 3점대의 자책점을 기록한 사람은 고작 6명에 불과했다. 그나마 토종 투수는 3.42를 기록한 김광현이 유일하다. 구원투수로 눈을 돌려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구원 1위를 기록한 넥센 손승락은 자책점이 무려 4.33이다. 2위 임창용은 5.84에 이른다. 올 시즌 9개 구단 주전 마무리로 활약한 선수 중 2점대의 자책점을 기록한 선수는 LG의 봉중근(2.90) 한 명 뿐이었다.

타고투저라고 해서 투수들에게 수난의 기록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승왕에 오른 넥센의 에이스 앤디 밴 헤켄은 2007년 다니엘 리오스(당시 두산 베어스) 이후 7년 만에 20승 투수의 반열에 올랐다.

노히트 노런도 두 번이나 나왔다. NC의 찰리 쉬렉은 지난 6월 24일 잠실 LG전에서 9이닝 무안타 7탈삼진 3볼넷 무실점을 기록하며 2000년 송진우 이후 14년 만에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 10월 6일에는 LG가 신정락과 유원상, 신재웅으로 이어진 투수진의 호투가 NC 타선을 노히트로 틀어막아 한국프로야구 역대 최초의 '팀 노히트 노런'기록을 세웠다.

타고투저의 원인... 투수 기량 저하가 너무 심했다

이번 시즌 역대 최대의 타고투저 현상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거론된다. 일단 타자들의 성장속도를 투수들이 따라잡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올 시즌 강력한 변수로 거론됐던 외국인 타자의 부활은 초반 돌풍 이후 금세 잠잠해졌다. 하지만 타고투저는 오히려 더 심화됐다. 그만큼 현재 타자들을 힘과 기교로 압도할 수 있는 일급 투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말이다.

최근 몇 년간 류현진, 윤석민, 오승환 등 국내 정상급 투수들의 해외진출이 가속화된 반면, 한국야구는 그 뒤를 이을만한 토종 에이스들을 발굴하지 못했다. 올시즌 이후 김광현과 양현종 등 그나마 남은 에이스급 투수들도 해외진출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어서 투수력의 하향 평준화가 우려되고 있다. 이는 곧 각 팀의 외국인 투수 의존도 심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구조적으로는 공인구와 스트라이크존 문제가 있었다. 한국 프로야구의 공인구가 타 리그에 비하여 반발력이 훨씬 커서 장타가 빈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트라이크존이 지나치게 좁아지고 위협구에도 규정이 엄격해졌다. 투수들이 몸쪽 공을 던지는 데 부담을 느끼게 되며 결국 타자들이 훨씬 유리해졌다는 평가다. 논란이 커지자 KBO는 시즌 후반기 공인구 검사를 실시하는가 하면, 스트라이크존도 시즌 초반에 비하여 다소 조정을 거쳤다. 덕분에 시즌 후반기에는 타고투저가 다소 완화될 수 있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투수들의 경쟁력 향상이 절실하다. 투수들의 역량이 늘지 않는 한 타고투저 현상은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다. 타자들의 기술과 힘은 성장하고 있다. 배트와 공인구 등 도구도 발전한다. 그러나 이에 비해 투수들의 제구력과 경기운영 능력은 하락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자 한 두명만 나가면 제구력이 흔들리거나 심지어 직구 컨트롤도 제대로 되지 않는 1군 투수들이 수두룩하다. 같은 프로무대에서 뛰지만 투수 사이의 수준차가 너무 심하게 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타자들이 잘 쳤던 것보다 투수들의 수준이 지나치게 떨어져서 벌어진 타고투저 현상이다. 화끈한 공격야구와 다양한 진기록이 쏟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시즌의 타고투저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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