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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일, 매주 수요일 열리는 삼척 주민들의 원전 반대 촛불집회에 함께한 나눔문화
 10월 1일, 매주 수요일 열리는 삼척 주민들의 원전 반대 촛불집회에 함께한 나눔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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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9일, 한국에서 유일하게 '30년간 원전을 막아온 땅' 삼척에서 주민 투표가 열렸다. 투표율 67.94%, 그중 신규 원전 건설에 반대한 주민은 84.97%였다.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삼척 주민들이 '원전 백지화'의 의지를 정부와 온 국민에게 보여주었다. 세계적으로도 드문 '탈핵 주민투표'는 미국과 일본 등 외신을 통해서 전세계에 보도되기도 했다.

원전 밀집도 세계 1위, 원전 고장률 세계 2위인 나라 한국. 우리는 동쪽 끝 삼척에서 작은 희망을 발견하였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원전 없는 세상'을 바라는 주민들의 뜻을 무시하고 있다. 13일 산업통상자원부 윤상직 장관은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건설을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삼척원전백지화 범시민연대'는 경찰이 사회단체 관계자, 마을 이장, 통·반장에 대한 표적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법질서 무너뜨리는 정부

정부는 삼척 주민투표를 부정한다. 적법절차를 통해 삼척을 원전 부지로 선정했고, 원전은 주민투표 대상이 아닌 '국가 사무'라는 이유다. 그러나 원전으로 침해될 주민들의 생활권, 재산권은 상위 법인 헌법에서 보장한 권리다. 주민투표 역시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다. 더군다나 2012년 삼척시 의회는 주민투표를 조건으로 삼척의 원전 부지를 승인했다. 애초에 주민투표 없는 원전 건설은 무효다.

처음부터 정부는 삼척 주민투표 자체를 방해했다. 삼척시 의회에서 주민투표를 의결한 날, 산자부는 원전은 주민투표 대상이 아니라고 밝혔다. 주민투표 한 달 전에 작성된 산자부 내부문건은 선관위가 주민투표 관리를 거부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실제로 삼척 주민투표 관리를 거부했다. 선관위는 헌법이 보장한 독립기구로서, 주민투표가 해당사항인지 헌법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정부의 삼척 주민투표 방해는 위법행위나 마찬가지다. 정부는 스스로 법질서를 무너뜨려 온 것이다.

지역민 희생양으로 삼는 원전 건설

산자부 내부문건에 따르면 정부는 삼척 주민들을 돈으로 회유하고 매수하려 하고 있다. 이는 삼척만이 아니라 국내 모든 원전 건설 지역에서 벌어진 일이기도 하다. 정부는 원전 부지 선정 때부터 인구가 적은 곳, 대도시와 멀리 떨어진 곳 그리고 주민 학력 수준이 낮은 곳을 고른다. 이는 90년대 초반, 정부 의뢰로 서울대 인구 및 발전문제연구소에서 작성한 보고서에서 나온 기준이다. 정부는 매번 지역 경제 활성화와 보상을 명분으로 지역민 희생을 강요했고, 결과는 참담했다.

현재 원전이 들어선 지역은 부산, 경북 울진-울산-경주, 전남 영광 5곳이다. 그중에 울진 원전은 한국에서 지진 관측을 한 이래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지진이 일어났던 지역이다. 원전이 들어선 이후 울진은 인구 9만에서 5만여 명으로 줄어들었다. 관광객의 발길은 끊어졌고, 농수산물 판매는 줄어들었다.

무너진 지역 경제 속에 어느새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관계자들은 울진 인구의 5분의 1일 차지하게 되었고, 울진 경제는 한수원에 기대지 않고는 돌아가지 않게 되었다. 지역에 수천억 원이 지원되어 왔지만, 대부분 체육시설, 문화회관 등 각종 전시행정에 쓰이고 있다. 또한 주민들 모르게 한수원 돈으로 생활물품이 지원되기도 한다. 원전을 반대하는 주민들을 애초부터 무력하게 만들고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주민들의 건강이다. 정부의 의뢰를 받아 20년간 원전 주변 지역주민들을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원전 주변 2km에 거주하는 사람 중 남자는 간암에 걸릴 확률이 1.4배, 여자는 유방암 확률이 1.5배 높게 나왔다. 현재 한국에서 원전 주변 2km 이내에 살고 있는 인구 수는 약 75만 명. 집집마다 암환자가 나온 월성원전 인근 주민들은 이주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신규 원전 건설 백지화, 노후 원전 폐쇄하라

신규 원전을 더 세울 이유가 없다. 문제는 '전력 확보'가 아닌 '전력 관리'이다. 지난 13일, 새정치민주연합 홍영표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년 뒤에는 원전 10기분(고리1호기 기준)의 전력이 남아돌 것이라 한다. 정부가 전력 수요량을 과도하게 늘려 잡았기 때문이다.

실제 전기는 흘러넘치고 있다. 한 여름과 한겨울 연중 단 20여 일만 제외하고, 매일 전기가 버려지고 있다. 산업용 전기 요금만 현실화해도 한국 전력 소비량은 대폭 줄어들 것이다. 산업용 전기는 원가보다 싸게 공급되는데, 산업용 전기는 전체 전력 소비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는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또한 원전 1~2기 건설 비용을 들여 지금 당장 전기절약 기술만 도입한다면 낭비되는 에너지의 3분의 1을 줄일 수 있다. 이는 한국의 모든 원전이 생산하는 전력량과 맞먹는다.

또한 정부는 위험천만한 노후 원전을 폐쇄하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2027년이면 10기의 원전이 수명을 다 한다. 하지만 한 기 당 폐쇄 비용은 최소 1조원. 기술 개발에는 최소 10년이 걸리지만 한국은 폐쇄 비용도, 기술도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정부는 '원자력 마피아'들에게 휘둘리고 있다. 지난 2011년 후쿠시마 참사 직후, 조석 당시 지식경제부(현재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은 원자력계가 모인 자리에서 노후 원전인 월성 1호기에 이미 7000억원을 투입했으니 연장될 것이라 장담하기도 했다. 실제 정부는 지금도 월성 1호기와 고리 1호기의 폐쇄 계획을 전혀 세우지 않고 있다.

신규 원전 건설 후보지로 선정된 강원도 삼척 근덕면의 아침
 신규 원전 건설 후보지로 선정된 강원도 삼척 근덕면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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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없는 세상', 다 함께 만들어 가야

한국의 원전 반대 운동은 신규 원전 건설을 반대하는 삼척, 영덕 지역과 노후 원전 폐쇄를 요구하는 부산, 경주를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원전에서 만들어진 전기는 우리 모두가, 주로 대도시 사람들이 쓰고 있다.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흘러 우리가 쥐고 쓰는 스마트폰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복잡하고 거대한 '원전 시스템'은 그 사실을 잊게 만든다. 모두의 망각 속에서도 원전 지역 주민들은 단식과 삭발, 상경투쟁 등 오랫동안 눈물겨운 싸움을 이어왔다. 그리고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뿐만 아니라 온 국토가 원전으로 뒤덮이는 것을 막아왔다. 원전 지역민들의 고통이 알려지면서, 후보지로 채택되었던 강원 고성, 전남 신안 등 7곳의 지역 주민들도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고 정부는 결국 포기했다. 이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우리는 삼면이 원전으로 둘러싸인 나라에 살게 되었을 것이다.

지금 삼척 주민투표의 영향으로 신규 원전 부지 등에서 다시 원전 반대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삼척 주민들은 이야기하고 있다. "삼척에서부터 핵 없는 대한민국을 만들어갑시다. 국민 여러분 함께 해주십시오." 삼척은 주민투표를 통해 진정한 지방자치를 보여주었다.

이제는 우리 역시 원전에 의존하는 삶의 방식이 아니라 지역에서 자립하는 진정한 '지방자치'로 나아가야 한다. 의존은 원전을 낳고 자립은 자가발전을 낳는다. 정부는 원전으로부터, 거대 전력 시스템으로부터 자립할 수 있는 정책 대안을 국민들에게 제시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정부의 진정한 역할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나눔문화(www.nanum.com)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삼척, #삼척원전, #삼척 주민투표, #신규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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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 사회운동단체 <나눔문화>에서 사회행동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www.nanu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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