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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모습.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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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북동부에 위치하며 막강한 경제력을 과시하는 베네토지방(주 도시: 베네치아)이 스코틀랜드(영국), 카탈루냐(스페인)에 이어 분리 독립을 강하게 주장하고 나섰다.

베네토지방은 지난 3월 16일~21일까지 진행된 인터넷 국민투표에서 이미 독립에 대한 염원을 내비치기도 했다. 당시 전체인구 중 73%에 이르는 236만 명이 독립 찬반 인터넷 투표에 참가했고 그 중 89%에 해당하는 210만 명이 분리 독립을 지지했다. 반대는 단 10.9%(20만여 명)에 불과했다. 

물론 3월 치러진 독립 인터넷 투표는 법적으로 효력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베네토지방의 독립을 위해서는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하지만 중요한 건 베네토지방 사람들의 의지다. 시민들은 "시민이 원하는 그것이 법이다"라는 모토 아래, 지금 당장은 독립을 이룰 수 없다고 해도 후세에는 반드시 독립된 '베네토 공화국'을 물려주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최근엔 정치적으로 대립하던 베네토지방 정당인들조차 독립을 위해 서로 합심하는 이채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베네토지방의 독립에는 인근 지방들도 힘을 모아주고 있는 모습이다. 프리울리 베네치아 줄리아지방(주 도시: 트리에스테) 및 알프스협곡과 닿아 있는 트렌티노 알토 아디제지방(주 도시 : 트렌토)등은 '독립하여 단독행보를 하든지 미래의 베네토공화국과 합병되길 원한다'는 발표를 내놓기도 했다. 롬바르디아지방(주 도시: 밀라노) 역시 독립을 원했던 곳이지만 몇 년간의 저성장 탓에 독립행보의 능력을 상실했다.

오늘날 서구 산업문명의 모태인 베네치아공화국

독립을 원하는 지방들은 대부분 이탈리아의 최근 경제난과는 상관없이 최근 5년간 월등한 소득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경제우월지구다. 높은 교육열이 특징인 이들 지방 사람들은 자신들이 여느 중·남부 이탈리아 사람들과는 차별화되길 원한다(관련기사 : 이탈리아 부자동네가 북한에 투자... 도대체 왜?).

수상도시 베네치아를 기반으로 한 베네토지방이 독립을 외치는 것과 관련해서는 베네치아 및 공화국 역사를 되짚은 필요가 있다. 존스 홉킨스 대학 프레데릭 레인 교수의 저서에 따르면, 1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라 세레니시마' 베네치아공화국(La Repubblica Serenissima)의 정치, 경제, 문화, 외교는 르네상스문화 탄생의 핵심이 되었고 근대유럽문명의 원형이며 오늘날 서구 산업문명의 모태이다.

서기 452년, 훈 족이 침입하자 사람들은 이를 피하기 위해 아드리아해 바다 갯벌에 정착하게 되었다. 일부 역사가들은 베네치아공화국에 대해 '로마제국 말기 이상형 국가 건립을 원한 12개의 로마 귀족 가문에 의해 세워진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지형적으로 베네치아 남쪽은 라벤나의 포 강에, 북쪽은 알프스산맥에, 동쪽은 이오니아해(아드리아해)를 접하고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자연스레 당시 앞선 문명이었던 이슬람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것을 유럽에 전파했다. 이후 베네치아는 해양형 국가들의 생존법 중 '무역'을  택했고 그것을 위해 철저한 자주방위에 나섰다. 가장 발달하고 섬세한 지도 제작을 이뤄낸 베네치아는 범선 갤리선 등의 조선업도 활발하게 벌였고, 당시 연패를 당하던 유럽연합군의 십자군전쟁을 승리로 이끌어낸 대가로 지중해 상권을 장악케 된다.

중국은 물론 1400년대부터 이미 일본과도 본격적인 상호교역을 했던 당시 베네치아에는 상주하는 일본상인들이 존재했다. 1585년 7월 5일에는 일본파견단의 베네치아 공식방문을 환영하는 기념비가 세워졌다. 1400년대의 일본을 비롯해 중국, 한국 등 동해가 그려진 지도들의 대부분을 1970년대 초부터 베네치아에 문화투자를 해온 일본측에서 구입해간 것으로 전해진다.

베네치아 운하에서 운행되고 있는 대형크루즈의 모습.
 베네치아 운하에서 운행되고 있는 대형크루즈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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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국가로 군림한 베네치아가 천 년간 안정적으로 오래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정부가 상인들의 활동을 적극 지원함과 동시에 철저히 개입했기 때문이다. 국유상선단 '무다제도'를 통해 많은 시민들이 참여한 국가적 사업이 대중적 활력을 얻도록 창안해내는 등 당시 베네치아공화국은 철저히 이윤을 목적으로 한 '국가형 기업'이었다. 이런 역사는 오늘날에도 베네토지방 사람들에게 의미하는 바가 크다.

그러던 베네치아는 15세기 이후 동쪽으로는 대 터키제국과 200여 년간 7번에 걸쳐 전쟁을 벌였고 서쪽으로는 강력한 군주국들(포르투칼, 스페인, 프랑스)과 맞서는 소모전을 지속했다. 그러던 중 대서양 항로의 개척이 일어남으로써 지중해 상권에 기반을 뒀던 베네치아는 그때부터 서서히 위축된다. 그때부터 해상무역에서 벗어나, 농업과 공업으로 번영을 누리며 화려한 문화국가로 탈바꿈하던 베네치아공화국은 1797년 나폴레옹에 의해 막을 내린다.

한 국가의 체제는 시대의 요구에 따라 변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 아래, 당시 베네치아공화국은 나폴레옹 군대에 무저항으로 항복을 선언하며 종래의 공화제를 스스로 폐지하고 민주제를 선포한다. 그러나 당시 베네치아공화국 측은 이를 인정하는 공식 사인이나 서류를 남겨두지 않았기에, 현재 역사가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분분하다.

역사적으로 당시 이탈리아 반도에는 피렌체, 밀라노, 사보이, 제노바, 피사, 나폴리, 아말피 등 거의 대부분 도시국가 공화국 형태였다. 이런 탓에 이탈리아인들 유전자엔 도시단위의 집단주의적 성향이 남아있다. 그런 이유로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가장 늦게 근대 민족국가가 된 나라다. 사보이왕가 지배하에 이탈리아로 통일된 건 19세기 후반이었으니 말이다.

독립행보의 선두지휘에 선 루카 자이아와 마태오 살비니

이후 베네치아와 인근 도시들은 1900년대 초 현대적인 기술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수도와 전기, 철도, 도로공사 사업을 시작하며 본격적인 화학공업지대로 자리매김했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는 베네토지방은 현재 화학 중장비 공업지대로 이탈리아의 뛰어난 경제지구로 자리매김했다. 따라서 이 지역 사람들은 경제난과 실업난을 겪으며 심각한 부패에 빠진 다른 중·남부지역들과 자신들이 차별화될 것임을 원하며 자신들의 혈세가 다른 지방을 지원하는 데 쓰이는 걸 반대한다.

사실 베네토지방 사람들이 이탈리아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한 건 최근의 일이 아니다. 1980년대엔 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든 '글라디오 사건'(베네치아 및 베네토지방 귀족들의 후견으로 민간 군대가 구성됐다)이 발생했고, 1993년에는 민간쿠데타 해프닝(산 마르코 광장에 탱크를 끌고 나온 민간청년그룹이 이탈리아 국기를 내리고 베네치아공화국 국기를 게양한 사건)이 있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교통수단인 바포레토.
 이탈리아 베네치아 교통수단인 바포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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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토지방 독립과 관련, 빼놓을 수 없는 건 심각한 환경문제다. 베네치아에서 운영하는 대형선박으로 인해 대기오염, 지형파괴, 사고 위험 등이 나타나고 있지만, 이탈리아 중앙정부는 지역의 역사성과 지형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괄적인 정책을 하달하고 있을 뿐이다. 이와 관련 나사(NASA)는 환경파괴가 계속 이뤄진다면 40~60년 안에 베네치아가 아예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밝혔다(관련기사 : 베네치아 관광 정책, 결국 사람 죽였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베네토 도지사는 이탈리아 전체에서 진행 중인 보건비 절감정책에 반발하며 중앙정부측에 더 이상 세금을 납부하지 않을 것임을 선포하기도 했다.

독립행보의 선두지휘에는 베네토지방 도지사 루카 자이아(46·전 농림부장관)와 상원의원 마태오 살비니(41)가 있다. 지난달 27일 페라라에서 열린 북부연합당 지구당 대회에서 이들은 스코틀랜드와 카탈루냐에 이어 베네토지방도 분리 독립을 향해 갈 것임을 공식발표했다(그러나 실질적으로 이탈리아 법에 위배되는 분리 독립보다는 중앙정부로부터의 분리 쪽으로 실현될 가능성이 크다).

이들의 분리독립 움직임을 이탈리아 중앙정부가 그냥 지켜보고만 있는 건 아니다. 이탈리아 정부는 베네토지방 사람들을 달래기 위해 오는 2015년 열리는 엑스포를 밀라노와 베네치아, 두 도시에서 공동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또 밀라노-베네치아-로마, 3개 도시 국제공항을 연결하는 초고속철도를 놓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로마는 많은 도시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때문에 로마가 맡고 있었던 수도로서의 역할을 밀라노와 베네치아로 분산하려는 것. 그러나 이런 방침이 베네토지방의 독립 저지를 위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대문호 괴테가 이탈리아 기행 후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것으로 베네치아와 사람들을 꼽으며 남긴 말이 있다.

"베네치아라는 독특한 지형에 적응한 사람들에겐 그들만의 아주 독특한 인격이 형성되었음을 느꼈다. 그건 곧, 강한 도전정신과 기발한 창의성, 의지력이며 그것들을 실현해낼 줄 아는 합리성이다!"

과연 이 독특한 인격의 베네치아 사람들을 주축으로 하는 베네토지방의 독립이 실현될 수 있을지 자못 그 귀추가 주목된다. 


태그:#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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