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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1984년부터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됐던 화순적벽. 뒤로 큰 적벽이 노루목(장항)적벽이고, 앞의 것이 보산적벽이다.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1984년부터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됐던 화순적벽. 뒤로 큰 적벽이 노루목(장항)적벽이고, 앞의 것이 보산적벽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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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의 자태가 매혹적이다. 울긋불긋 단풍이 들면서 절벽이 형형색색으로 변했다. 폭도 넓고 웅장하다. 높이 40여m, 길이 100m가량 된다. 그 절벽 밑으로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고 있다. 물에 비친 반영도 그림처럼 아름답다. 언제라도 가슴 뛰는, 동복호반에서 만나는 창랑적벽의 모습이다.

지척의 물염적벽도 아름답다. 병풍처럼 깎아지른 기암괴석과 노송이 창랑천과 어우러져 창연하다. 물길에 반영되는 풍광도 미려하다. 방랑시인 삿갓 김병연(1807∼1863)이 생전에 자주 찾아와 시를 읊곤 했다는 곳이다. 지금은 시비에 둘러싸인 김삿갓 동상이 물염적벽을 응시하고 있다.

맑은 물이 휘감아 도는 절벽 위의 정자도 고즈넉하다. 물염 송정순이 세운 물염정이다. 속세에 물들지 않는다는 '물염(勿染)'의 의미도 깊다. 김인후, 권필 등 조선 선비들이 지은 시문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운치를 더해준다. 삿갓 시비공원도 옆에 있다.

이 두 적벽은 철조망 밖에서 바라봐야 한다. 창랑적벽과 물염적벽을 품은 동복댐이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어서다. 그래도 위안이 됐다.

화순적벽 가운데 하나인 창랑적벽. 물에 비치는 적벽의 반영이 아름답다.
 화순적벽 가운데 하나인 창랑적벽. 물에 비치는 적벽의 반영이 아름답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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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순적벽 가운데 하나인 물염적벽. 방랑시인 김삿갓이 자주 찾아와 시를 읊었다는 곳이다.
 화순적벽 가운데 하나인 물염적벽. 방랑시인 김삿갓이 자주 찾아와 시를 읊었다는 곳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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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먼발치에서라도 바라볼 수 없었던 적벽이 있었다. 장항(獐吭-노루목)적벽과 보산적벽이었다. 산 깊은 동복댐의 한가운데에 들어가 있어 마주할 수 없었다. 옛 추억담으로만 전해들을 뿐이었다. 하여, 적벽은 누구라도 한 번쯤 다시 찾고 싶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장항과 보산 두 적벽이 베일을 벗고 민낯을 드러낸다. 전라남도 화순군과 광주광역시가 상생 발전을 위해 개방키로 한 것이다. 이 일대가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되고 1984년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 이후 30년만이다.

그동안은 수몰지역 주민에 한해 설과 추석, 한식 때 성묘나 벌초를 위해 허가해 왔다. 10월 23일 적벽문화제를 시작으로 일반인에 한정 개방될 장항적벽과 보산적벽을 먼저 찾아갔다. 지난 13일이었다. 화순군의 도움과 안내를 받았다.

김삿갓 동상과 시비가 세워진 삿갓공원. 물염적벽 앞에 있다.
 김삿갓 동상과 시비가 세워진 삿갓공원. 물염적벽 앞에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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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적벽으로 가는 길. 적벽의 일반 개방을 앞두고 임도가 단장되고 있다.
 화순적벽으로 가는 길. 적벽의 일반 개방을 앞두고 임도가 단장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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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게 잠겨있던 초소의 철제문이 열리자 임도가 모습을 드러낸다. 길 주변이 말끔하게 정비돼 있다. 일반 개방을 앞두고 길을 평탄하게 고르고 숲을 정비했다는 게 동행한 군 관계자의 설명이다. 길은 작은 버스 한 대 겨우 지날 정도의 폭으로 나 있다.

길섶에는 가을꽃 억새와 수크령이 피어 있다. 그 너머로 보이는 산골짜기에는 물이 가득 차 있다. 동복호다. 숲길도 한산하다. 꿩, 다람쥐 같은 산짐승들만 부산하다. 그 길을 따라 굽이굽이 돌아간다.

장항적벽을 보러 간다는 설렘 때문일까. 수몰민의 애잔함도, 주변 풍광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비포장 산길을 달리던 차가 한쪽에 멈췄다. 시야가 확 트인 곳이다. 골골을 가득 채운 동복댐이 잔잔한 풍경을 선사한다. 일반인 관람객들이 셔틀버스를 타고 들어와서 멈출 곳이란다. 이른바 사진 찍기 좋은 지점이다.

산그림자가 드리워진 노루목(장항)적벽과 보산적벽. 화순적벽 가운데 가장 풍치가 빼어나다.
 산그림자가 드리워진 노루목(장항)적벽과 보산적벽. 화순적벽 가운데 가장 풍치가 빼어나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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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관지점에서 바라본 동복호. 여기서 백아산 구름다리가 보인다.
 경관지점에서 바라본 동복호. 여기서 백아산 구름다리가 보인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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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치 흑백사진으로만 봤던 장항적벽이 펼쳐진다. 산의 형세가 노루(獐)의 목(吭)을 닮았다고 '노루목적벽'으로도 불린다. 거대한 암벽이 하늘로 치솟듯 우뚝 서 있다. 깎아지른 암벽이 일품이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것처럼 웅장하고 장엄하다. 듣던 대로 수려한 절경이다.

깎아지른 절벽의 높이가 50여m 돼 보인다. 물속에 잠긴 것도 35m 쯤 된단다. 수직으로 100m 가량 되는 깎아지른 바위벼랑이 거꾸로 서있는 셈이다. 그 모양새가 잔잔한 물에 비친다. 절벽의 폭도 넓다. 하늘과 호수 사이에 펼쳐진 아담한 병풍 같다. 백아산에서 발원한 동복천이 항아리 형상의 옹성산을 휘돌아 나오면서 이룬 절경이다. 4개의 화순적벽 가운데 으뜸이다.

댐이 생기기 전에는 절벽 위에서 낙화놀이가 열렸단다. 해마다 4월 초파일 밤에 장정들이 절벽 위에 올라가 짚덩이에 불을 붙이고 아래로 떨어뜨렸다. 불꽃송이가 떨어지며 물에 어리는 모습이 환상적이었을 게다. 아래 물길에서는 삿대를 저어가며 뱃놀이를 즐겼단다. 바위 틈에 절집도 있었다고.

절벽 위로 늦은 오후의 햇살이 쏟아진다. 산그림자도 더 짚게 드리운다. 산을 넘어온 가을 산들바람에 절벽의 풍광이 수면에 흔들린다. 붉은 빛깔로 물들기 시작하는 절벽이 파란 하늘과 푸른 물과 어우러져 한 폭의 수묵화를 그렸다. 선경(仙境) 중의 선경이다.

장항적벽 앞에서 망향정을 품고 있는 작은 적벽이 보산적벽이다. 장항적벽보다 규모는 작지만 세파에 깎이고 파인 모양새가 신비롭게 보인다.

옛 화순적벽 풍경. 적벽 아래로 흐르는 창랑천에서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다. 모래밭도 넓다.
 옛 화순적벽 풍경. 적벽 아래로 흐르는 창랑천에서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다. 모래밭도 넓다.
ⓒ 이영기(전남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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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적벽으로 소풍 온 초등학생들(1975년)이 적벽 아래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화순적벽으로 소풍 온 초등학생들(1975년)이 적벽 아래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 이영기(전남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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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적벽은 1519년 기묘사화 이후 화순으로 유배돼 온 신재 최산두(1483∼1536)에서 비롯됐다. 노루목(장항)에서 거대한 석벽을 발견한 그가 중국의 적벽에 빗대 명명했다고 전해진다. 조선 중기의 문신 석천 임억령은 '적벽동천(赤壁洞天)'이라 했다. 신선의 세계와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조선 중종 때 유배 온 조광조(1482∼1519)는 사약을 받기 전 배를 타고 다니며 이곳의 절경을 보며 한을 달랬다고 한다. 조선 중기 대학자 하서 김인후는 적벽시를 지어 화답했다. 김삿갓도 적벽의 장관에 빠져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외에도 수많은 풍류 묵객들이 적벽에 들러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근대까지 '조선 10경'의 한 자리를 당당히 차지했다. 지금은 전남도 기념물 제60호로 지정돼 있다. 금명간 물염-창랑-보산-장항 등 4개 적벽을 아우르는 화순적벽(7㎞)이 국가문화재 명승으로 승격될 전망이다.

화순적벽으로 가는 길. 임도를 따라 하얀 억새가 피어 있다.
 화순적벽으로 가는 길. 임도를 따라 하얀 억새가 피어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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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적벽의 망향정으로 가는 길.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화순적벽을 가장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망미정이다.
 화순적벽의 망향정으로 가는 길.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화순적벽을 가장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망미정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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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관지점에서 다시 차를 타고 망향정(望鄕亭)으로 향한다. 보산적벽 위의 평평한 구릉에 자리하고 있다. 임도에서 피어난 하얀 억새 무리가 길손을 맞는다. 통천문(通天門)을 지나니 망향정이 서 있다. 댐 건설로 물에 잠긴 수몰지역 주민들의 설움을 달래주는 쉼터다.

정자 옆으로 수몰된 15개 마을의 유래비가 세워져 있다. 망향탑과 망배단도 놓여있다. 수몰민들이 명절 때마다 망향제를 지내는 곳이다.

동복댐이 건설되면서 정든 고향을 떠난 주민은 창랑, 월평 등 이서지역 15개 마을 5000여 명에 이른다. 대대로 이어온 삶터를 떠난 주민들을 생각하니 가슴 한켠이 아려온다. 적벽의 아름다움을 새긴 적벽동천, 적벽가, 적벽팔경 비도 세워져 있다. 억새에 일렁이는 가을바람이 쓸쓸해진다.

화순적벽의 망향탑과 마을유래비. 동복댐 조성 당시 수몰된 마을의 이름과 유래가 새겨져 있다.
 화순적벽의 망향탑과 마을유래비. 동복댐 조성 당시 수몰된 마을의 이름과 유래가 새겨져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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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적벽의 망향정. 동복댐 조성으로 수몰된 마을주민들의 쉼터다. 노루목적벽을 마주하고 있다.
 화순적벽의 망향정. 동복댐 조성으로 수몰된 마을주민들의 쉼터다. 노루목적벽을 마주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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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향정에서 대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니 망미정(望美亭)이다. 병자호란 때 의병장으로 활동했던 정지준이 지었다. 인조가 청태종에 무릎을 꿇었다는 소식을 듣고 분개해 은둔하면서다. 당초 장항적벽 바로 밑에 있었으나 물에 잠기면서 1984년 옮겨졌다. 현판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썼다. 여기서 장항적벽을 가장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다.

'무등산이 높다더니 소나무 가지 아래에 있고/적벽강이 깊다더니 모래 위를 흐르는구나(無等山高松下在 赤壁江深沙上流)'고 노래했던 방랑시인 김삿갓은 말할 것도 없고 누구라도 반할만한 빼어난 풍광이다.

화순적벽을 찾아가려면 호남고속국도 동광주나들목에서 나가야 한다. 광주 각화동 농산물시장 앞에서 담양 창평방면으로 가다가 고서사거리에서 우회전, 광주댐으로 간다. 식영정과 소쇄원을 지나 유둔재터널을 넘어 구산삼거리에서 우회전, 이서면으로 가면 된다.

망향정에서 바라본 노루목적벽(장항적벽). 화순적벽 가운데 대표격이다. 1984년부터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돼 신비를 간직하고 있다.
 망향정에서 바라본 노루목적벽(장항적벽). 화순적벽 가운데 대표격이다. 1984년부터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돼 신비를 간직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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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화순적벽을 돌아보는 적벽투어는 10월 23일 적벽문화제로 시작된다.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일요일 오전 9시30분, 12시, 오후 2시30분 각 세 차례 이뤄진다. 매번 33인승 버스 4대가 운행하며 1일 396명에 한한다. 적벽 입구(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월산리 산26-4)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망향정까지 4.8㎞를 들어간다. 소요시간은 100분. 화순군 누리집(bus.hwasun.go.kr/적벽투어)을 통해 예약해야 한다. 방문일 2주 전부터 접수한다. 1인당 버스비 2000원을 받는다. 겨울철인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는 운영하지 않는다. 음식물과 주류는 갖고 들어갈 수 없다. 금연도 기본. 자세한 사항은 화순군 문화관광과(☎061-379-3505)로 물어보면 된다.



태그:#화순적벽, #노루목적벽, #보산적벽, #장항적벽, #적벽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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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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