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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우리 집은 아이들 7명 부모 포함 아홉 식구가 살고 있다. 그러기에 집 없는 설움을 이해 할 수 있다. 처음 신혼은 전세 아파트에서 살게 되었는데 아이들을 출산하면서 5년 정도를 살았지만 아이들이 어린 나이인데도 층간 소음 문제로 9층 로열층에서 2층으로 내려와야만 하는 상황도 있다.

주말이면 더 심해지는 민원 오죽하면 아파트 방송으로 저희 아이들이 떠들지도 않았는데 방송으로 몇 동? 몇 호? 제발 조용히 좀 하세요.!! 라는 소리로 주말을 맞이하곤 했던 아파트 살던 시절의 설움...그리고 어느 시점부터 기울어진 집안 사정으로 단칸방으로 나와야만 했던 그 시기에는 4명의 아이와 뱃속에 5번째 아이를 임신 중이었는데 집주인 분께서 손자들이 있다며 기쁘게 반기셨는데 화장실도 밖에 있고 기름보일러에 매일 큰 바퀴벌레와 큰 개미집으로 일자로 길게 뻗은 방에 살림살이는 거의 처분하고 아이 옷장 달랑 하나에 한사람이 겨우 누울 공간 정도에 6식구가 살기엔 비좁아 남편은 친구 자취방에 거취하게 되었는데 아이들 중 유독 울음 끝이 긴 아이의 밤만 되면 울음 투정으로 우린 보름도 못살고 이사를 나와야만 했었다.

그렇게 그 이사가 3번째가 되었고 집주인 분께서는 직접 우리가 살집을 나서서 구해주셨다. 마당이 넓고 방도 여러 개인 76평대의 집 ...하지만 이곳도 기름보일러에 재래식 화장실에 방은 많지만 1개의 방은 다락방의 개념으로 써야 했고 안채의 넓은 방에서 5번째 아이를 낳고 7식구가 다시 그곳에서 살게 되었는데 그곳 역시 재래식 화장실이 옛날 시골 재래식 화장실이어서 무지 깊어서 아이들이 빠질 뻔 했던 적도 있었고 그래서 급조로 시골에서 어머니의 요강을 들고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땐 아이들이 밤에 화장실을 가다가 놀랜 적이 있는지? 아님 환경변화의 원인이었는지? 소변을 부쩍 자주 보게 되었고 기저귀까지 착용해야 했던 그런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

아이들도 많고 저렴한 비용으로 살게 해줄 수 있다는 명목으로 집수리도 되어 있지 않았고 여름엔 집중호우로 집 일부가 무너져 내려 결국은 목마른 사람이 해결을 하고 살아야지 하며 우리가 아이들의 안전 때문에 사비로 집을 수리를 하고 그때 마침 도시가스가 들어오는 시점이어서 도시가스도 설치하고 마당이 참 이쁘고 넓었던 집이었기에 우리 부부는 아이들이 뛰어 놀기에도 좋은 집이어서 오래 오래 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한옥마을이 발전 되면서 우린 딱3년 정도 살고 다시 이사를 나와야만 했다. 우리가 사비로 들여 집을 수리보고 도시가스를 설치하고 그랬던 비용은 받지 못한 채로 그런 그 집은 지금 그 당시 1억2천의 집이었던게 지금은 6억의 시가를 하는 집이 되었다. 돈이 돈이 벌고 집있는 사람들은 로또를 맞았다고 돈도 없고 집 없는 우리 같은 세입자들 힘없는 사람들은 늘 반복되는 이사를 해야 했다. 아이들의 학교 문제도 있어서 아래에서 위로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곳은 방2칸의 거실 겸 주방 화장실 도시가스가 되어있고 전에 살던 곳에 비해 보증금은 좀 올리고 월세는 나름 좋았다고 생각했다.

집주인도 서울에 살고 그렇지만 역시나 집주인들은 다 똑같다고 시간이 지나가니 자꾸 월세를 올린다. 그리고 수시로 집주인은 우리에게 이사를 하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 집주인 역시 수리도 안해주고 월세는 20에서 60만원대 까지 올려서 받았다. 그렇다 보니 한번 월세가 밀리게 되면 돈이 어마어마하다.

어느날은 갑자기 이사를 가란다. 하루아침에 이사를 나와서 500만원이란 돈을 들고 집을 구하다가 아이들이 많은 탓으로 구해지지가 않았었는데 6번의 계약이 취소되고 마지막으로 겨우 얻은 깔끔한 쓰리룸 깔끔하고 좋았다. 비록 그곳 역시 월세의 부담이 컸던 곳이었지만 하지만 그도 잠시 그런데 이거 웬걸 ? 아이 중 한아이가 이사당일에 울어도 너무 울었다. 집주인 세대에서 야이! 뭐뭐***라며 조용히 좀 해...하며 소리를 질렀다.

아이의 울음은 매일 매일 진행형이었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집주인 분과 경찰서 라는 곳...전화 요즘 소음도 처벌대상이나 과태료를 물수 있다는 것이었다...3번의 경찰서 전화를 받고 경찰서를 방문했다. 다행이 경찰 분들은 우리의 상황을 이해를 하시는듯 했다. 집주인분과 잘 상의해서 이런 쓰리룸 보다는 주택으로 나가서 사는게 어떻게냐고? 결국 한달 반 살고 집을 구하다가 다시 살았던 집도 계속 입주할분이 들어오질 않아서 옆집 언니가 사정을 해서 다시 살수있게 되었다.

그 다음에 계약서는 반복적으로 써야만 했고 집세도 껑충 뛰어서 20되던 월세가 60이 되어버렸다. 하~ 한숨만 나오고 어쩔 수 없는 불구덩이로 다시 들어가서 살면서 나름 힘들었지만 그렇게 그곳에서3년이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조용할 날도 없다더니 둘째아이가 쓰러지고 1년의 병상생활을 하며 다시 부채가 쌓이고 평생 살아가며 달고 살아야 하는 진단을 받게 되었고 힘들어졌다. 그렇게 정신없게 보내던 어느 시기에 집주인께서는 자신의 살던 서울집이 길이 나서 이사를 가야 한다고 한다. 자기 집 놔두고 다시 집을 사서 이사 다니기에는 그렇다며 당장 집을 비워달라고 한다. 그래서 갑작스럽게 집을 구하다가 어렵게 구해진 지금의 집. 이곳은 200만원에 10만원이란 비용으로 사는데 집은 조용하다.

단지 가는 곳마다 집주인들의 횡포는 여전하다. 젊은 집주인인데 유산 상속으로 물려받은 집인 듯하다. 몇 년을 방치 해둔 귀신 나올 집...처음부터 이곳도 손을 봐야 했다. 도시가스도 안되어 있고. 누수에 그야 말로 심난 그 자체였다. 그나마 구청에 도움으로 집수리 사업으로 도배. 벽지만 대충 했다. 너무 손봐야 할곳이 많다는데 예산이 부족해서 다 해줄 순 없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이사를 다니며 우리가 다 손봐가면서 살았던 설움을 알기에 또 많이 손봐주면 또 나가라고 하면 어떻게 하냐며...그래 맞는 말인 것 같다.

집주인분 당당하게 나보고 680만원의 비용이 든 도시가스를 설치해 달라고 한다. 남들 관이 들어올 때 안하고 참 그래서 보조금도 지원이 안되어서 어마어마 하게 비용이 든다는데 27년 된 알수 없는 기름보일러가 2대나 수리불가 결국 보일러도 우리 사비로 설치하고 도시가스는 설치하지 않았다. 2군데에서 사비 들여 도시가스 집수리 다했지만 어느 곳 한곳에서도 돌려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바라는 건 이곳에서 처음 약속처럼 3년 . 3년 계약해서 10년까지는 살수있게 해주겠다는 말처럼 아이들이 그 정도면 어느 정도 성장 할 것이고 그때가 되면 큰아이가 20살 정도가 되기 때문에 그안에 노력해서 우리만의 집을 사서 멋있는 집을 짓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한다. 세입자로의 삶. 참 ...많이 아팠습니다. 힘들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나는 세입자다.응모글.



태그:#세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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