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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는 금요일 제사부터 주말 결혼식과 칠순 잔치로 정신없는 한주를 보냈습니다. 결혼식과 칠순잔치는 그저 가서 축하해주면 되지만 제사는 살짝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동안에는 회사 다닌다는 이유로 참석하기가 어려울 때 간혹 빠지기도 했고, 또 참석해도 퇴근 후 저녁에 가서 설거지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육아휴직을 하고 첫 번째로 맞이한 이번 제사는 여느 때와는 다른 묵직한 느낌으로 며칠 전부터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일년에 4번 지내는 제사 중 올해 마지막 제사를 무사히 잘 넘기기 위해서 뇌물을 준비했습니다.

올해 마지막 제사 앞두고 준비한 '뇌물 10만 원'

천 원짜리 신권 십만 원입니다.
▲ 돈다발 천 원짜리 신권 십만 원입니다.
ⓒ 김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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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가 있기 며칠 전 은행에서 십만 원을 신권으로 바꿨습니다. 명절 때가 아니라 신권으로 바꿀 수 있을까 싶어 고민이 되어 그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날 오전에 은행에 들러 바꿔놓은 것입니다.

이 돈다발은 사실 뇌물이라기 보다는 성당에 열심히 다니시는 어머님을 위해서 특별히 준비한 것이었습니다. 성당에 가셔서 봉헌금으로 내실 때 빳빳한 현금으로 내시면서 기분도 좋아지시라고 말입니다. 이 방법은 아침에 방송하는 <인간극장>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TV를 거의 보지 않지만 휴직 후에는 가끔 아침에 집안일을 하다가 잠시 틀어놓기도 하는데 때마침 할머니를 위해 사위되시는 분이 이렇게 준비해서 드리는 것을 방송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육아휴직으로 얻은 여유 덕분에 결혼 10년이 되도록 한 번도 할 생각도 못했던 시어머님을 위한 뇌물, 돈다발을 척~하니 안겨드렸습니다. 그냥 용돈으로 10만 원을 드리기는 했지만 이렇게 드리기는 처음이고, 어머님도 처음에는 당황스러워하시면서 이게 뭔가 하셨습니다.

옆에 서서 보던 남편이 "엄마 성당 갈 때 쓰시라고 이 사람이 준비했다잖아요. 갈 때마다 편하게 쓰시면 되지"라고 덧붙입니다. 어머님은 남편의 말에 잠시 돈다발을 가슴에 꼭 품으셨다가 장농속으로 넣으셨습니다.

"어휴, 이걸 어떻게... 고맙다. 고마워."

아이들까지 키워주신 어머니,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새우다듬기
▲ 할머니와 손녀 새우다듬기
ⓒ 김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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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서 도토리 말리기
▲ 할머니와 손녀 2 옥상에서 도토리 말리기
ⓒ 김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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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며느리 간만에 플러스 점수 땄습니다. 돈다발을 받으시는 어머님도, 그리고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아버님과 남편도 모두 흐뭇해 하셨습니다. 그날, 어머님은 며느리가 둘씩이나 있는데도 그 전날 미리 전이며 나물이며 제사상에 올린 음식들을 모두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는 멀리 살며 애들 키우는데도 바쁜데 굳이 뭐하러 내려오냐며 오히려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 죄송해 하는 며느리들에게 고마워하셨습니다.

아이들을 맡기고 네다섯 살 무렵 다시 데려와 키우기까지 어머님은 아이들을 키워주셨습니다. 여름이면 햇볕 가득 쏟아지는 창가에 앉아 아이와 함께 집안일을 하시기도 하고, 또 가을이면 도토리를 주워 옥상에 말리며 그렇게 아이들에게 계절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계절을 느끼고, 생활하는 모습을 보고 큰 우리 아이들, 이제는 엄마와 함께 생활하며 할머니는 가끔 찾아뵙니다. 그리고는 할머니와 함께 할 때 만큼이나 큰 선물을 안고 돌아옵니다. 아이가 할머니댁 밭에서 직접 캔 고구마를 손에 들고 기뻐합니다. 상자로 차에 실어주신 고구마만큼이나 많은 할머니의 정과 사랑을 이 녀석은 분명 알고 있을 겁니다.

그동안 회사 다니며 아이들 키운다는 핑계로 정신없이 생활하느라 계절이 어떻게 변하는지 느끼지 못했습니다. 아이들과 그리고 가족과 함께 맞이하는 이 가을, 부모님들의 무한한 사랑을 다시금 느낍니다. 어머님, 늘 고맙습니다!

주렁주렁 열렸습니다.
▲ 할머니밭의 고구마 주렁주렁 열렸습니다.
ⓒ 김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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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육아휴직으로 회사밖 생활에 대해서 새롭게 느끼고 배워가고 있습니다. 세상사람 모두가 나의 스승, 맞는 말입니다.



태그:#돈다발,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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