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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입구에 신발들이 벗겨져 있다. 그림을 발로 밟고 보는 전시회. 1979년 동숭동 청년작가회관에서 가졌던 첫 개인전에서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정복수의 바닥화가 35년 만에 다시 살아났다.

지난 15일 인사동 나무갤러리에 신발을 벗고 들어서는데,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림을 장판처럼 밟고 다니다 보니 마치 그림 속에 내가 들어온 느낌이다.

바닥화 제작현장
▲ 정복수 바닥화 제작현장
ⓒ 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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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수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인간의 몸을 통해 보여주는 작가다. 인간의 욕구는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이로 인해 모순된 삶의 고통과 비극은 역설적으로 그로데스크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정치 권력의 폭력성과 자본 권력의 비인간성도 결국 인간의 욕구를 넘어 욕망이 가져온 산물로 볼 수 있다.

정복수의 작품에서 눈은 네 개, 여덟 개가 되기도 하고, 입과 똥구멍이 연결된 내장의 얼개는 해부된 생물체와 같다. 노래 <가시나무 새>처럼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분열된 '나'가 붙어있거나 나열되어 그려져 있고, 당신이 쉴 곳은 없다는 식이다. 인간 관계는 건축 도면과 같이 얽히고설킨 족벌로 이어져 있거나, 뜻 없는 온갖 정서들로 싸움을 토해 내고 있다.

신분과 직위를 상징하는 옷은 벗겨지고 자지와 보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인다. 애써 감추고 위장한 모습들이 무장해제 되어 인간의 욕구와 욕망만을 본질적으로 드러내 보인다.

욕구와 욕망의 상관 관계를 냉소적으로 보여주고 있지만, 실상 작가의 마음은 연민과 사랑으로 가득하다. 작가의 묵시적 작업 행태와 회화적 관계도 그렇다. 삶과 그림, 존재와 표현의 문제를 원초적으로 되살려 일관되게 담으려는 진정성. 정복수 작가가 품은 매력이다.

이번 바닥화는 '시여 침을 뱉아라' 식으로 '온 몸으로 그림을 보라'다. 그것을 통해 현실을 성찰하고 삶을 통찰하기를 바란다. 그림만 보지 말고, 그림을 밟고 있는 자신을 보고, 삶을 보라고 흔들어 놓는다.

그러고 보면 그림을 밟는 나의 행위는 그림 속의 나이지만, 나를 둘러싼 그림 또한 현실이요, 삶이다. 이렇듯 정복수의 바닥화는 미술과 삶의 유기적 관계를 온 몸으로 일깨우고 있다는 점에서 통념을 깨고 흥미를 끈다.

정복수 바닥화 제작 현장
▲ 바닥화 정복수 바닥화 제작 현장
ⓒ 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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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를 기획한 나무갤러리 김진하 관장을 만났다.

- 반갑고 독특한 전시다.
"작가의 작품전을 기획하고 싶었는 데, 작품을 팔 능력은 피차 없기도 하고 못하기도 하니, 아예 비상업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하고 예전에 했던 바닥화가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정복수 작가도 이왕 하는 거, 바닥화뿐만 아니라 벽화도 함께 하기로 하여 전시장 전체를 현장 작업으로 하고 작업 과정을 책으로 엮기로 한거다."

- 정복수 작가가 1979년 첫 개인전으로 바닥화를 선보이고, 35년 세월이 흘렀다.
"그 때는 (정 작가가) 20대였다. 현대미술을 바라보는 비판적 시각이 작용했을 것이고, 지금은 60이 되었다. 작가는 그동안 삶과 회화의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천착해 왔다. 그 때와 지금의 시점에서 어떻게 변화했는지 바닥화와 벽화 현장 작업을 통해 이야기하고 기록하면서 보다 생생하게 검증해보려고 하는 데 뜻을 두려는 거다."

- 그 때는 그림을 밟으면서 통쾌한 느낌이 강했는데 지금은 안기는 느낌도 든다.
"표면적으로 고와진 것도 있다. 형태와 색감도 부드러워지고 포용적이다. 그 때에 비해 그림을 즐긴다는 의미가 강하고 어떻게 보면 유미적이기도 하다. 메시지가 강하다고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로데스크하더라도 진실을 진정성있게 드러내 보여주는 맛이 그런 느낌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관객모독
ⓒ 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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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수 전'을 보러 가기 전, 거리에 낯익은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관객모독>은 1980년대 관객들에게 물을 끼얹고 관객에게 욕설을 일삼던 페터 한트케 원작을 무대에 올린 작품이다. 관객들이 어떤 수모를 기대하고 그 연극을 보러 갈 것인지 궁금하다.

정복수의 바닥화와 현장 제작 벽화도 우리를 둘러싼 현실이 그림이요, 그림이 삶이라는 사실을 관객들에게 일깨워 주려는 의도가 강하다. 아무튼 젊은 세대들이 많이 보고 기성 세대와 소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15일부터 다음 달 4일까지 서울 종로구 관훈동 나무화랑에서 기획전으로 열리는 '뼈 속 풍경 – 정복수의 회화 Process & Documentation'는 살아있는 '현장 회화'를 보여준다. 이번 전시를 위해 정복수 작가는 나무화랑의 바닥 전체에 천을 깔아 놓고 오늘도 바닥과 벽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나무갤러리 현장에서 바닥화와 벽화를 직접 그리고 있다
▲ 정복수 화백 나무갤러리 현장에서 바닥화와 벽화를 직접 그리고 있다
ⓒ 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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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정복수 , #바닥화, #나무, #김진하, #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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