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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외모와는 다르게 하자가 많은 녀석
▲ 고집 센 예삐 예쁜 외모와는 다르게 하자가 많은 녀석
ⓒ 동물자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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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까지 나는 혼자서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었다. 출근하고 나면 개 혼자 쓸쓸히 집에 있는 것이 신경 쓰이고 부담되었고, 부모님께서 이미 두 마리의 반려견을 키우고 있었기에 더 이상 동물을 들일 생각도 없었다.

또한 나는 동물보호단체의 활동가로 근무하며 집주인의 반대와 이사 등으로 키우던 동물을 다른 곳으로 보내거나, 외로움과 충동적인 마음에 동물을 구입하였다가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을 많이 접했다. 솔직히 집을 소유한 안정적인 환경이 아니고서는 세를 사는 가구에서 동물을 키우는 것을 반대하는 입장이기도 했다.

"개 키워요? 동네 난리났어요"

2007년 8월, '예삐'라는 시추 강아지가 입양 가정에서 1년 반 만에 파양이 되어 동물보호센터로 다시 돌아왔다. 파양이 된 이유는 참으로 복합적이었다. 우선 사람과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분리불안이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이유였다.

예삐가 파양이 되고 며칠 후, 이 조그마한 녀석이 도대체 얼마나 주인을 힘들게 했길래 1년 반이나 동고동락하며 정 들었던 녀석을 다시 돌려보낸 건지 궁금해졌다. 그 때 당시 동물 입양과 동물 돌봄 업무를 맡고 있던 나는 처음으로 혼자 사는 집으로 개를 데리고 갔다. 다시 인연을 만날 때까지 아주 잠시 동안 성격을 파악하고 교육을 시킨다는 명목을 붙여서.

예삐는 예상과는 반대로 정말 완벽했다. 짖음도 없었고 배변도 완벽하게 가렸다.

'음... 분명 병원비가 감당이 안 되어 분리불안을 핑계 삼아 돌려보낸 거겠지...' 주말이 끝나고 월요일 오후, 집주인에게서 전화가 걸려 올 때까지 그렇게 생각했다.

예삐는 나만 옆에 있으면 세상에서 가장 착한 개다.
▲ 매일 나와 출퇴근을 함께 하는 예삐 예삐는 나만 옆에 있으면 세상에서 가장 착한 개다.
ⓒ 윤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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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릉 ~~~~ "
"202호 세입자시죠? 집주인인데요... 개 키워요? 동네가 난리 났어요... 옆집에서도 시끄럽다고 계속 전화 오니까 빨리 해결하세요."

'깔끔한 인상'에 '독신 여성'. 집주인들이 선호하는 세입자로 늘 환영을 받던 내가 7년간 세입자로 살며 처음으로 집주인에게 항의 전화를 받아 보았다. 그 후 예삐는 지금까지도 나와 매일 출퇴근을 함께 하고 있다.

"월월, 왈왈~" 개소리에 나는 안도했다

그런데 그것은 시작이었다. 처음 예삐를 데려왔을 때 붙였던 '치료+교육+입양불가' 등의 이유로 나와 함께 하게 된 동물들의 수는 점점 늘어났고, 2011년 결혼과 동시에 우리 집 개들은 어느새 다섯이 되었다.

나는 더 이상 깔끔한 인상에 독신 여성이라는 집주인이 선호하는 세입자가 아닌, 시끄럽고 집을 망가뜨리는 5마리의 개들을 키우고 있는 집주인들이 가장 기피하는 세입자가 되어 버렸다.

동물자유연대 입양동물의 날 행사장에서
▲ 박씨 부부와 박씨네 개들 동물자유연대 입양동물의 날 행사장에서
ⓒ 윤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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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동물자유연대 반려동물복지센터가 남양주로 이전하며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개를 다섯 마리나 데리고 있기 때문에 집을 고르는 기준은 아주 까다로워졌다. 일단 집주인이 같은 건물 안에 함께 사는 경우는 무조건 제외시키고, 밤에 일하고 낮에 집에 있는 이웃도 피해야 했다. 아이들이 장난치면서 지르는 소리에 개들이 많이 짖기 때문에 근처에 초등학교나 교육시설이 있어도 안 된다. 특히 노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도 동물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이렇게 피하고 보니 갈 만한 집이 아주 소수였다.

게다가 부동산에서도 대부분의 집주인은 개를 키우는 것을 싫어하니 말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집주인과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테니 개를 키우는 것을 허락받고 떳떳하게 키우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여러 차례 집주인에게 의사를 물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어김없이 "개는 안 돼요!"였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나는 답답해졌다. 개가 없는 집보다 관리를 잘 할 자신이 있고, 주인을 속이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아기가 없는 깔끔하고 젊은 신혼부부'로 돌아가 원하는 집을 계약할 수밖에 없었다.

일곱마리를 차에 태우는 일은 늘 전쟁이다.
▲ 차 뒷자석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박씨네 개들 일곱마리를 차에 태우는 일은 늘 전쟁이다.
ⓒ 윤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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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사 직후 터졌다. 바로 아래층에 부녀회장님이 사신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것. 부녀회장의 막강한 힘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혹시라도 키우는 개가 많은 것을 알게 되면 불미스런 일이 생길 것 같아 마음이 영 불편했다.

자신에게 피해를 주지 않더라도 동물을 키우는 것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자칫하면 이웃 간의 불쾌한 감정으로, 편히 쉬어야 할 집이 가시방석이 될 수도 있다. '매도 먼저 맞자'며 부담이 없는 선물을 챙겨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띵똥~ "
"월월월월~~~~~~왈왈~~"

문을 열자마자 조그만 말티즈 한 마리가 잡아먹을 기세로 튀어 나왔다.

"아이고 이 녀석 참... 이사 왔지요?"

휴....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같은 반려동물 가족이 아래층이고, 얘기를 나누다 보니 옆집도 개를 키우고 있다고 했다. 천군마마를 얻은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잠시 서서 공통관심사인 반려동물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걱정으로 가득 찼던 첫 만남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반전되었다.

우리 아홉식구의 보금자리는 어디로

우리 집은 동물을 싫어하면 오기가 힘들다. 모두 달라 붙어 애정을 갈구하기 때문이다.
▲ 친정엄마와 박씨네 개들 우리 집은 동물을 싫어하면 오기가 힘들다. 모두 달라 붙어 애정을 갈구하기 때문이다.
ⓒ 윤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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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동물을 대하는 인식이 낮은 것도 문제이지만,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도 에티켓을 꼭 지켜줬으면 한다. 아직도 산책 후에 배변 처리를 하지 않거나 목줄을 하지 않아 주변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는 등의 일들이 빈번하다. 그 피해는 선량한 반려인들이 고스란히 받는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거세게 짖어대는 개의 주인이 "아이구~ 우리 새끼 잘~한다~ ", 목줄 없이 산책을 하다 개가 다른 사람에게 위협적인 행동을 해도 "우리 개는 사람 안 물어요~" 라는 등의 태도는 동물이 설 자리를 점점 좁혀버리고 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갖게 만든다.

얼마 전에는 옆 동에서 큰 싸움이 벌어져서 나가보니 개를 키우는 사람과 이웃이 언쟁을 벌이다 과격한 몸싸움까지 하고 있었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는 사람은 개 주인이었다. 싸움을 지켜보던 주민들의 반응은 하나로 모여져 가고 있었다.

'동물을 키우는 주민은 다 쫓아내야 해... 좋으면 자기들이나 좋지, 앞으로 우리 빌라에서는 동물을 못 키우게 해야 돼!'

옆 동의 싸움으로 예민해진 나는 혹시나 박씨네 개들이 짖어서 우리 집으로 화살이 날아올까, 총알 같이 집으로 올라갔다. 이후 한동안 창문을 다 걸어 잠그고 덥고 답답하게 지냈다. 다시 한 번, 동물 소유주들은 올바른 반려동물 문화를 지키며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노력하고, 이웃들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로서 동물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곧 죽을것만 같았던 랭이는 7개월째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 늙고 병들어 소금포대에 담겨 버려 진 시추 랭이 곧 죽을것만 같았던 랭이는 7개월째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 윤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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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랑과 신뢰를 주고 떠난 박씨네 첫 막둥이 땡구르와 듬직한 첫째아들 빽돌이
▲ 2014년 봄과 여름에 별이 된 땡구르와 빽돌이 많은 사랑과 신뢰를 주고 떠난 박씨네 첫 막둥이 땡구르와 듬직한 첫째아들 빽돌이
ⓒ 윤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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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는 동물보호소에서 늙고 병들고 장애가 있어 입양의 기회가 없는 동물들을 집으로 데려와 마지막을 지켜주는 애니멀 호스피스가 되기로 맹세했다. 동물들이 마지막 눈 감는 날, 손 꼭 잡아주고 눈 맞추며 외롭지 않게 떠나게 해주고 싶다.

동물들이 생을 다해 떠날 때마다 참으로 마음 아프고 힘든 순간들이 많지만, 마음을 단련하고 심장을 단단히 조여주려 한다. 그것이 아무도 없는 밤, 동물보호소 한구석에서 쓸쓸히 죽어간 차가운 주검을 마주하는 것보다 더 슬프지 않은 일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우리 부부에겐 일곱 자식이 있고 집주인의 사정으로 다시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늙고 병들어 소금포대에 담겨 산 속에 버려진 '랭이', 앞이 보이지 않는 '켠이', 평생 약에 의지하며 살아야 하는 '대국이', 성격파탄 '탱이', 원인 모를 발작으로 힘들어 하는 '갑돌이', 남편이 결혼 전에 입양한 '노아', 그리고 언제나 내 마음을 잡아주고 약한 생명들에게 눈과 마음을 돌리게 하는 나의 소울메이트 '예삐'.

우리 아홉 식구의 다음 보금자리는 어디가 될까? 그 곳에선 어떤 일들이 생길까? 어느 녀석이 먼저 우리를 떠나게 될까... 유기 되고 학대 받고, 삶의 마지막에 와서야 만나게 된 박씨네 개들이 이렇게 속삭인다. 함께 할 수 있다면 모든 곳이 천국이라고.

덧붙이는 글 | '나는 세입자다' 응모글입니다.



태그:#유기동물, #유기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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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자유연대 반려동물복지센터 국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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