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박희태 전 국회의장의 골프장 캐디 성희롱 사건, 출판사 샘앤파커스 상무의 성추행 파문, 성추행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자 집단 따돌림을 당하고 결국 해고당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중소기업중앙회 비정규직 여직원 등 성추행, 성희롱, 성폭력이란 단어로 검색만 하면 관련 기사, 사건 등이 끊임없이 나온다.

특히 직장, 노동 현장에서의 성추행, 성폭력은 대부분 철저한 권력관계에 의한 폭력이었다. 피해자인 여성노동자들은 모두 생계 문제가 걸려 있으니 이 문제에 대해 그저 함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 문제를 알려서 해결하려 하면 배신자로 찍혀 버리니 말이다.

이런 상황을 보면 성폭력은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이지만 사회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충고하는 것 같다. 성폭력 문제는 되도록 감추거나 외면하라고. 진실을 밝히려 한다면, 정말 끝을 보겠다는 심산이 아니라면 아예 시작하지 말라고 말이다. 그저 재수없게 안 좋은 일 당한 거니까 가해자와 좋게 좋게 화해(?)하고 합의하라고 종용하는 듯도 하다. 하지만 이 따위 조언을 무시하고 용기를 내어 부딪치기 시작할 때 새로운 역사는 시작되는 법이다.

성폭력 문제는 굉장히 민감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이걸 소재로 다룬 영화는 꽤 많다. 민감한 만큼 제대로 잘 만들면 관객들에게 강하게 어필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한국영화 중에서는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1990), 최근에는 <도가니>(2011)도 있었고 80년대 미국영화에선 <피고인>(1988) 등이 있다. 이번에 소개할 영화는 탄광 여성 노동자들이 성폭력에 맞서 투쟁하는 영화 <노스 컨츄리>(North Country, 2005)이다.

직장 내 여성 성희롱 다룬 영화 <노스 컨츄리>

 <노스 컨츄리> 포스터.

<노스 컨츄리> 포스터.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이 영화는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미국 내 첫 번째 소송이라고 알려진 1984년의 '젠슨 대 에벨레스 광산(Jenson vs Eveleth Mines)' 사건을 영화화 한 것이다. '노스 컨츄리(North Country)'는 우리말로 해석하면 '북쪽 동네', '북쪽 촌동네'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탄광이 있는 미네소타의 북쪽 지역을 뜻한다.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조시 에이미스(샤를리즈 테론 분)는 남편의 폭력을 피해 아이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조시의 고향은 도시 전체가 탄광에서 나오는 철광석으로 먹고사는 곳이다. 조시는 친구(탄광 여성노조위원장)의 소개로 탄광에 취직하고 여기서 일하면서 아이들을 키울 수 있다는 생각에 희망을 갖고 열심히 살아간다.

그러나 곧 조시는 탄광의 현실을 알게 된다. 탄광의 남성 노동자들은 여성 노동자들을 동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그들은 여성노동자들에게 성희롱을 비롯해서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폭력을 일삼는다는 것을 말이다. 더 심각한 것은 모두 이 문제를 알고 있지만 당하는 여성 노동자들도 이 문제에 대해 입 다물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점은 조시 에이미스를 탄광에 소개시켜준 친구인 여성 노조위원장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이 문제를 안 건드리고 남성 노동자들이 성적 농담을 하면 더 센 성적 농담으로 남성 노동자들의 기분을 맞춰가며 그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조시는 회사 사장에게 직접 찾아가 문제 해결을 호소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회사에서 나가라는 것이었다. 결국 조시는 때마침 고향에 잠시 들른 변호사 빌 화이트(우디 해럴슨 분)에게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겠다고 하고 그때부터 조시와 빌은 거대 탄광회사를 상대로 고독한 싸움을 벌이게 된다.

이 영화 <노스 컨츄리>가 좀 더 진일보한 영화인 것은 선과 악의 구조를 단순하게 표현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영화 속에서 조시를 더 힘들게 한 것은 자신을 성희롱하는 남성 노동자들이 아니라 여성 노동자들의 외면이었다. 그런데 그 여성 노동자들도 실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그 고통을 감수하면서 지금까지 쌓아온(남성들의 모진 성희롱을 견디며 얻은) 기득권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도시에서 (여자의 몸으로) 이만한 월급을 받을 만한 일은 탄광에서 일하는 것밖에 없다. 이 기득권을 포기할 수 없는 건 남성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탄광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심한 꼴을 당하고 있으면 "그만 하라"고 제지하던 착한 남성 노동자들도 정작 조시가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하려고 하자 협조하지 않는다. 그 착한 남성 노동자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회사를 상대하다가 자칫 자신의 삶의 터전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영화에서는 아예 회사 입장을 대변하는 변호사로 여성을 등장 시킨다. 이 여성 변호사는 법정에서 조시가 고등학교 때 성생활이 문란했다며 조시에게 성적인 폭력을 서슴지 않는다. 이로써 이 영화는 성폭력은 단순히 남녀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 문제, 계급 문제까지 들여다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결국 진심은 통하는 것 아니겠는가. 조시가 보여주는 진심어린 행동과 변호사 빌의 활약으로 여성 노동자들도 조시를 돕겠다고 나서고, 조시의 아버지도 조시를 지원하게 된다. 어찌보면 이런 영화의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피해 여성 노동자를 돕겠다고 일어난 사람들

특히 놓치지 말아야 할 장면이 있다. 조시의 성생활이 문란했음을 증명하기 위해 조시의 고등학교 시절을 파헤치던 회사의 변호사가 조시와 성관계를 가졌던 조시의 담임 선생을 법정에 출두시키는 장면이다. 사실 조시는 이 담임 선생에게 성폭행을 당한 것이고, 영화는 과거에 조시가 성폭행 당하는 모습과 현재의 법정을 교차로 보여주며 감정의 고조를 유도한다.

변호사 빌은 이건 결국 조시가 성폭행을 당한 것임을 입증하게 되는데, 이 장면이 이 영화의 백미다. 빌은 증인이 위증했음을 법정에서 자백하게 하고, 법정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What are you supposed to do....when the ones with all the power are hurting those with none? Well, for starters, you stand up. You stand up and tell the truth. You stand up....for your friends. You stand up....even when you're all alone. You stand up."
"어떻게 해야 할까요. 힘 센 자들이 힘이 없는 사람을 괴롭힐 때? 우선은 맞서 일어서야죠. 일어서서 진실을 밝혀야죠. 친구를 위해서 맞서야죠. 맞서 싸워야 합니다. 혼자만 남아도 말예요. 맞서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너도 나도 회사를 고소하겠다고 일어선다. 해고 당할까 봐 전전긍긍하던 여성 노동자들도, 삶의 터전을 잃을까 봐 괴로워하던 남성 노동자들, 조시의 아버지도 같이 일어선다. 이 과정이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이다. 이것이 이 영화의 주제다.

"You stand up(일어서요)."

이 영화 <노스 컨츄리>는 성폭력 문제를 권력 문제, 계급 문제까지 확장시켜 들여다보고 사람들이 이런 문제들(사회적 불의)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이유도 밝힌다. 그러나 영화는 단순히 이 사람들을 이해하고 연민의 시선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의 분발을 촉구한다. 가만히 있는 것은 비겁한 짓이라고 비판한다. 일어서라고. 들고 일어서서 불의에 맞서 싸우라고 단결해서 연대해서 싸우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영화에서 이들은 이대로 실천했고 승리를 거둔다.

이제 마무리해야 할 것 같은데 이 말밖에 할 말이 없다. 이 말을 끝으로 졸고를 마치겠다.

"You stand up.(일어서요)"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노동사회과학연구소(http://www.lodong.org) 기관지 정세와 노동 105호에 기고한 글 입니다.
성폭력 영화 여성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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