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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거짓말탐지기 회피용 약물, 그것도 밴드처럼 목 뒤와 배꼽 아래에 붙이기만 하면 기억이 잠시 사라져 거짓말탐지기를 속일 수 있는 약물이 정말 존재한다고 믿는 것인가.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15일 북한 보위사령부의 지령을 받고 탈북자로 신분을 위장해 국내에 잠입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아무개(39, 여)씨에게 징역 3년에 자격정지 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이례적으로 구속기간을 수차례 갱신하며 6개월간 장고를 거듭했지만, 결국 이씨 측의 상고를 기각했다.

이 사건은 이씨가 북한 보위부 간부가 건네준 거짓말탐지기 회피용 약물을 사용해 국정원의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통과했다고 진술하는 등 비상식적인 자백 내용이 많아 주목을 받아왔다. 이씨는 국정원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자백한 이후 국선변호인이 조력했던 1·2심까지는 자백 내용을 인정했으나, 2심 판결 직후 국정원의 강압과 회유·모욕에 의한 것이었다며 번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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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피고인이 원심에 이르기까지 자백을 유지한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피고인의 수사기관 및 법정에서 한 자백 진술에 임의성이 없다는 피고인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자백에 신빙성이 없다는 정황으로 내세우는 거짓말탐지기 회피 약물의 사용에 관한 피고인의 진술을 기록상 드러나는 판정 결과의 다의성, 과학적 정황 논란 등을 고려하면, 이로 인해 피고인 자백이 신빙성을 잃는다고 보기 어렵다"고 상고 기각 이유를 밝혔다.

또 대법원은 피고 측이 신청했던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북한이탈주민보호법)' 제7조 3항 위헌법률심판제청도 "헌법상 포괄위임금지 및 명확성의 원칙, 영장주의 및 적법절차 원칙,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고 할 수 없다"며 기각했다.

대법원의 확정 판결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자신이 보위부 남파 간첩이라는 자백 내용에 이상한 점이 많아 이후에도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피고 측 박준영 변호사는 선고 직후 "최종적인 법원 판단이 내려진 상황에서 지적하는 것이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이 말은 꼭 하고 싶다"며 "자백 내용을 검증하는 데는 물론 한계가 있다, 북한에서 벌어진 일을 검증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상식은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기억을 사라지게 하는 거짓말탐지기 회피용 약물을 남파시키면서 북한 보위부에서 지급했다는 건데, 의학계에서는 그런 약물은 현재 세계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이런 내용의 자백을 믿어야 하는 것인지, 정말 답답하고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간첩사건 기록은 영구보존되는 기록"이라며 "이 사건은 역사가 다시 한번 판단하게 될 것이고, 그날이 최대한 빨리 오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변호인 측은 위헌법률심판제청이 기각된 북한이탈주민보호법 7조 3항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출할 예정이다.


태그:#간첩, #대법원, #국정원, #중앙합동신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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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선임기자. 정신차리고 보니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넘었다. 언제쯤 세상이 좀 수월해질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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