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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지난 14일 낮 12시 수원지법 평택지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근로자 지위보전 및 임금지급 가처분 신청' 기각에 대해 규탄하고 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지난 14일 낮 12시 수원지법 평택지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근로자 지위보전 및 임금지급 가처분 신청' 기각에 대해 규탄하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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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각!

긴 해고 기간 이 짧은 말을 수도 없이 들었지만 이번만큼 황당한 경우는 또 처음이다. 상급심 판결문에 하급심이 오물을 끼얹었기 때문이다. 지난 2년 동안 충분한 심리와 법리 공방을 통해 입증되고 확인된 서울고등법원의 쌍용차 정리해고 무효 판결문을 정치적 판단으로 간단히 뒤집어 버렸다.

지난 2월 7일, 서울고법은 2009년 쌍용자동차 사태 해고자 가운데 153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확인소송 항소심에서 '해고 무효'를 판결했다. 그러나 쌍용차의 불복으로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는 상태다. 해고노동자들은 서울고법의 판단을 근거로 지난 5월 9일 '근로자 지위보전 및 임금지급 가처분 신청'을 냈다.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인정받고 밀린 임금을 지급받기 위해서다.

그러나 지난 13일,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은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기대를 저버렸다. 지난 5개월간 이곳 평택지원 앞에서 공정한 재판을 요구하며 1인시위에 참석했던 해고자들이 재판부에게는 보이지 않는 유령일 뿐이었다. 해고자를 향한 귀는 철저히 닫았고 자본을 향해서는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우리가 평택지원의 이번 결정을 오물투성이 정치적 판단문으로 규정하는 이유다.

3보 1배까지 했는데... 기대 저버린 평택지원

3보1배를 하고 있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 이들은 하루라도 빨리 공장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법원의 현명하고 조속한 판단을 촉구했다.
 3보1배를 하고 있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 이들은 하루라도 빨리 공장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법원의 현명하고 조속한 판단을 촉구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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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제(14일)까지 경기도 평택 쌍용차 공장 정문에서부터 평택지원 앞까지 3보 1배를 했다. 8일 동안 24km를 걷고 절하며 왔다. 공정한 판단이 가능할 것이란 한 가닥 기대와 바람을 안았다. 쌍용차 문제 해결을 간절히 바라는 수많은 노동자·시민과 함께 했다. 법원이 노동자의 손을 들어주기 원했던 게 아니다. 습관처럼 자본의 손을 들어주는 그 버릇이 이번만큼은 발병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자본을 향해 기울어진 법원의 저울은 삶의 낭떠러지로 해고자를 몰아갔다. 법원이 어떤 근거로 이 같은 정치적 판단을 한 것인지 우리는 분노로 의문하고 절망으로 규탄한다. 서울고법에서 쌍용차 정리해고 무효 판결이 있은 후 생긴 자본의 근심을, 이번 재판부가 앞장서서 자본 민원의 청부해결사로 거침없이 나서서 사라지게 만들었다. 

이번 근로자 지위보전 및 임금지급 가처분 기각 결정문은 해고자에 대한 선입견과 냉대로 가득 찬 자본의 연설문이나 다름없었다. 서울고법에서 폐기한 증거를 유일한 판단 근거로 삼는 기상천외함마저 보여줬다. 회계감사법인인 삼정KPMG의 보고서와 금융감독원의 주장 그리고 검찰의 무혐의 처분을 그대로 인정했다. 증거의 내용이 아닌 증거의 개수를 저울에 달아 판단했다.

또한 이번 가처분이 '만족적 가처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정리해고의 입증책임을 해고자에게 물었다. 왜 자신들이 해고됐는지 지난 6년 동안 이유를 물어 온 해고자들이다. 이들에게 거꾸로 해고의 이유와 근거를 설명하라 한 것이다. 번지수 잘못 찾은 질문으로 첫 단추부터 엉뚱하게 끼웠다. '길치' 재판부란 오명을 씻을 수 없게 됐다.

서울고법이 일부만 인정한 유동성 위기를 평택지원은 침소봉대했다. 당시 쌍용차는 담보물권 설정이나 회사채 발행 등 유동성 위기를 피할 수 있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유동성이 정리해고를 밀어붙이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됐지만 평택지원은 막연한 국내외 경제 상황만을 언급하며 회사 주장에 동조했다.

쌍용차 문제, 이번 결정으로 끝낼 수 없다

특히 쌍용차 정리해고의 핵심 쟁점인 유형자산손상차손 문제는 이번 결정의 압권이다. 유형자산 손상차손 과다계상 문제는 서울고법 재판이 2년 가까이 길어지게 만든 중요한 쟁점이었다. 서울고법은 회사와 회계법인의 주장은 물론 감정 결과까지 믿을 수 없다고 판결했다. 반면 평택지원은 여기서도 서울고법과 판단이 어긋났다. 회계법인 보고서, 금융감독원, 항소심 감정인, 검찰의 무혐의 처분을 바탕으로 유형자산손상차손을 과다계상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수결로 판단하는 이탈적 법리적용이다.

생산성과 효율성 부분도 회사 측 주장을 인용했다. 비정규직 노동자 포함 3000명의 정리해고에 대해서는 그 기준과 원칙은 물론 그 객관성 여부에 대해 회사가 설명하고 입증해야 한다. 그런데 법원은 해고자들에게 책임을 돌렸다.

해고회피 노력에 대해서도 정리해고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2005년부터 적용하는 대범함을 보였다. 신규채용이 없는 것까지 해고 회피 노력의 일환으로 간주됐다. 반면 쌍용차지부가 정리해고를 막기 위한 수많은 노력들은 파업을 위한 수순으로만 치부됐다. 한 마디로 '노동 유죄, 자본 무죄'란 일관된 신념으로 제작된 기념비적 결정이다.

쌍용차 정리해고 문제는 이번 결정으로 또 한 번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그러나 이런 분별없는 결정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법으로 문제 해결을 바란다는 것이 과연 올바른 방법인지에 대해선 상당한 의문이 든다. 평등하지 않은 법 앞에 해고자들이 치인다. 정치가 있어야 할 곳에는 정치가 없고 정작 정치와는 무관해야 할 법원에서 정치가 작동하는 기막힌 현실이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문제는 이번 결정로 끝날 수도 없고 끝난 것도 아니다. 대법원 소송에서 우리는 지난 6년의 시련을 깨끗이 씻을 것이다. 더 이상 법 앞에선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 길을 간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창근님은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입니다.



태그:#쌍용자동차?해고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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