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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정부는 내년부터 담뱃값을 현행 2500원에서 4500원으로 올려 흡연자의 금연을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더불어 지방세와 자동차세까지 인상한다는 말도 나왔다. 부자에게 깎아준 세금을 서민 호주머니로 채우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국민 건강을 위해 담뱃값 인상으로 들어오는 세수 전액을 금연 정책에 쓰겠다고 했지만 증세 논란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2011년 '세금혁명당'을 만든 이후 세금 문제를 꾸준히 제기하고 있는 선대인경제연구소 선대인 소장을 지난 7일 서울역 근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지금의 증세 논란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다음은 선대인경제연구소 선대인 소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국민건강 진정 원했다면 증세 택하지 않았을 것

선대인연구소장
 선대인연구소장
ⓒ 이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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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뱃값, 자동차세 등 세금 인상에 관해 "정부의 명분과 달리 속내는 펑크난 세수를 메우는 데 있다"고 말했는데.
"세수 부족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정부가 담뱃값 인상안을 내놨다. 정말 국민건강 증진 의도가 강했다면 굳이 이 상황에서 이런 방식으로 내놓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 인상안은 2000원을 인상하는 것이다. 이 정도는 정부가 조세연구원에 연구 용역을 줘서 확보할 수 있는 수준이다. 정부가 정말로 국민건강을 생각했다면 차라리 5000원을 인상하면 되는데 그러지 않고 세수가 최대가 되는 수준으로 올렸다. 또 그동안 비용을 크게 들이지 않고 담뱃갑에 혐오광고를 실어서 금연을 유도할 수 있었는 데도 안 했다.

또 이번 담뱃값 인상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지방세보다는 국세인 개별소비세 항목을 늘려서 중앙 정부 세수를 늘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정부가 명분상 금연을 유도해 국민 건강을 증진하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이명박 정부 이후 법인세율 인하라든지 각종 세금을 깎아준 대규모 부자 감세와 4대강 사업 같은 낭비성 토건 사업 때문에 생긴 세수 부족을 채우는 데 중점을 두려는 것으로 보인다."

- 그럼 솔직하게 세수가 부족해 증세한다고 밝히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예를 들어 부자 감세 정책 때문이라거나 4대강에 돈을 펑펑 써서 세수가 없다고 할 수 없지 않나. 한편으로는 세금을 더 거둔다고 하면 '부자들 세금은 깎아주고 그걸 우리 호주머니 털어 보충한다'는 반발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 같은 비판과 반발을 피하기 위해 '국민건강 증진'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는 것으로 본다."

- 새누리당은 '부자감세'를 한 적이 없다고 하던데.
"새누리당 입장에서야 부자 감세가 아니었다고 말할 것이다. 가장 정확한 것은 실제로 2008년 감세 정책 이후 소득 계층별로 세금 부담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면 된다. 2008년 이후 통계청의 소득동향조사에 나타난 계층별 소득과 조세부담 증가율을 비교해보면, 저소득층일수록 소득 증가율보다 세금부담 증가율이 훨씬 높다. 반면 상위 계층으로 갈수록 소득 증가율에 비해 세금부담 증가율이 훨씬 낮았다. 이는 감세 정책이 실시된 2008년 이전과 정반대되는 패턴이다. 감세정책을 시행한 결과를 보면, 부자들 세금 부담은 크게 늘어나지 않은 반면 서민들 세금 부담이 크게 늘어난 것은 명백하다. 부자 세금을 깎아서 서민 세금을 늘렸다고 밖에 볼 수 없다."

- 여당 측은 지방 정부가 세금 인상을 원해 올리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는데.
"지방 정부 세수가 왜 부족할까? 가장 큰 이유는 지자체 세수가 축나는 것을 중앙 정부가 충분히 보전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감세 정책으로 중앙 정부의 세수가 부족해지면 지자체로 가는 각종 사업의 국고보조율이 낮아지고, 지방교부금도 줄어든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 이래 지자체 세수 보전액이 많이 낮아졌다. 

두 번째로 지난해 부동산 취득세를 대략 1%씩 인하했다. 그렇게 줄어든 세수는 정부 추산으로 대략 2조 4천억 원 정도 된다. 부동산 취득세는 지방세 세수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광역 지자체 세수의 약 25% 가량이다. 취득세 인하로 이를 대폭 줄였다. 그러니 지자체가 재정난에 시달리는 것이다.

지자체 입장에서 보면 급속한 고령화로 각종 복지 수요는 계속 늘어난다. 그러나 중앙정부의 국고보조 및 지방 교부금은 거기에 비례해 늘어나지 않는다. 당연히 지방 세수가 부족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지자체가 정부에 지원을 늘려 달라고 요청하는 건 당연하다.

지자체의 요구로 담뱃값 등 세금을 올린다고 핑계를 댔지만 그렇게 한다고 지자체 세수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담뱃값 인상의 대부분은 국세인 개별소비세 형태이기 때문에 결국 중앙 정부로 들어간다. 지방자치단체장협의회도 '담뱃값 인상으로 지방 세수는 늘어나지 않고 오히려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고 성명을 냈다."

- 담뱃값 2000원 인상으로 내게 되는 세금 부담이 9억 원짜리 아파트의 재산세와 같다는 주장도 있던데 사실인가?
"사실이다. 담뱃값을 2000원 인상했을 때 1년에 내는 세금이 대략 120만 원(하루 한 갑을 피는 개인 1인) 정도다. 9억 원짜리 아파트의 실제 과표 기준이 되는 주택 공시가격은 대략 6억 원 정도로 잡힌다. 과표 기준으로 6억 원짜리 아파트의 1년 재산세 수준(125만원 가량)은 인상된 담뱃값으로 내게 될 세금과 비슷하다. 이것만 봐도 담뱃값 인상이 조세 형평성 차원에서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 알 수 있다."

조세 저항 약한 서민들만 들쑤신 정책

정부가 담뱃값(담뱃세 포함) 인상안을 발표한 가운데 지난 9월 14일 오후 서울 종로의 한 편의점 담배 판매대가 고객에게 담배 판매 후 새로 채워넣을 담배량이 부족해지면서 일부 품목이 텅 비어 있다.
 정부가 담뱃값(담뱃세 포함) 인상안을 발표한 가운데 지난 9월 14일 오후 서울 종로의 한 편의점 담배 판매대가 고객에게 담배 판매 후 새로 채워넣을 담배량이 부족해지면서 일부 품목이 텅 비어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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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 입장에서는 서민들에게 푼돈을 받는 것보다 부자들에게 목돈을 받는 게 더 효율적일 텐데 서민 증세를 굳이 하는 이유가 뭘까?
"감세 정책처럼 세금을 깎아주는 건 쉬워도 세금을 더 걷겠다고 하면 누구든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럴 때 숫자는 작아도 부자 집단의 반발은 엄청 거세다. 반면 담뱃세 같은 간접세는 납세자가 세금을 직접 내기보다 소비나 거래를 통해 자동으로 낼 수밖에 없는 세금이다.

기분이 나빠도 담배를 끊기 전엔 낼 수밖에 없는 세금인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서민들은 숫자가 훨씬 많아도 조세 저항이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다. 가진 자들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 이해관계에 반하지 않으면서, 조세 저항이 약한 간접세를 인상하는 방식이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 미국 같은 경우 부자 감세 정책에 대해 부자들이 먼저 반대했다고 하던데.
"미국의 경우 흔히 말하는 가진 자들의 책무,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 인식이 상당히 자리 잡고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회와 경제 구조 전체의 불평등이 심각해져 그 사회를 지속할 수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한국은 '가진 자들의 책무'라는 전통이 확립되지 않는 상태에서 '돈만 벌면 최고'라는 천민자본주의가 만연해 있다. 그러다 보니 워런 버핏이 주장하는 '근로소득이 아닌 자본소득에 과세해서 세금을 더 걷게 하자'는 제안을 한국에서 하자는 사람이 없다. 재벌 대기업이 응당 내야 할 세금도 내지 않고, 법인세율이 외국과 비교해 절대 높지 않은데도 자신의 이해를 대변하는 전문가와 언론을 동원해 정부를 압박하고, 대중의 착각을 유도하고 있다."

- 법인세를 올리면 기업들이 해외로 빠져 나가 경제가 악화된다는 우려도 있다.
"조작된 거짓말이다. 국제적으로 비교할 때 OECD 34개국 가운데 한국의 명목 법인세율은 평균보다 상당히 낮은 편에 속한다.

그나마 한국보다 세율이 낮은 나라들은 체코나 핀란드 같은 과거 공산권 국가거나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스위스, 오스트리아처럼 도시 국가 수준으로 내수 규모가 충분하지 않은 나라들이다. 이들 나라는 법인세율을 낮춰 외국 자본을 유치해야 할 이유가 있다. 거의 조세도피처에 가까운 나라다. 이런 나라와 우리가 같은 선상에서 경쟁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일정한 인구 규모를 가진 나라 중 한국보다 법인세율이 낮은 나라는 거의 없다. 이건 명목 세율을 말한 거고, 기업이 실제로 내는 세금 부담율을 실효세율이라고 하는데 실효세율을 비교하면 다른 나라보다 더 낮아진다.

기득권 언론에서 법인세율을 높이면 기업들이 외국으로 빠져나간다고 하지만 다른 나라를 보면 그렇지 않다. 실제로 미국, 일본, 프랑스, 독일 등과 북유럽의 복지국가로 불리는 핀란드와 스웨덴 등 우리보다 훨씬 더 잘 사는 나라들은 법인세율도 훨씬 높다. 그런 나라들이 법인세가 높아서 기업들이 기업 활동을 못해 나라가 망하나? 현실에 맞지 않는 이야기다. 더구나 한국의 경우 재벌 대기업일수록 법인세 부담이 더 낮아진다. 보통의 경우 소득이 많을수록 세율이 높은 게 정상이다. 한국은 법인세율이 법인 과표 소득 천억 원까지만 세율이 높아진다. 그 구간을 지나면 실효세율이 오히려 낮아진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의 경우 대략 10%대 초반의 법인세를 내고 있는데, 다른 나라로 빠져나갈 수 있을까? 못 간다. 국내에서 15% 이내의 실효 법인세율을 적용 받다가 당장 미국으로 가면 30% 이상의 법인세를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삼성전자나 현대기아차가 글로벌 기업이기 때문에 생산 기지를 동남아나 중국 등에 설립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그 본사는 해외로 나갈 가능성이 없다.

기득권 언론에서 또 이들 회사의 노조를 강성 노조라고 하는데 한국처럼 노조 위상이 약한 나라가 어디 있나. 또 한국처럼 재벌 총수들이 탈불법 행위를 저질러도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 나라가 또 어디 있나. 미국의 '엔론'은 2002년 기업 순위 7위의 대기업이었지만 회계부정 사건이 드러나 공중분해 되다시피 했고, 회계부정을 주도했던 제프리 스킬링 회장은 감형 없이 100년이 넘는 형을 받았다. 만약 삼성 특검에서 드러났던 정도의 불법 행위가 똑같이 미국에서 드러났다면 아마 감형 없이 천 년 형쯤 받았을 것이다."

국민 납득할 수 있는 과세 구조 먼저 제시해야

늘어나는 서민 세금
 늘어나는 서민 세금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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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증세 없는 복지를 말했다. 부자 감세 없이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할까?
"한국은 크게 세 가지 방향에서 조세 개혁이 필요하다. 첫 번째는 정세, 즉 공정 과세를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엉뚱하게 낭비되는 세금을 올바르게 쓸 수 있도록 지출 구조 조정을 하는 것이다. 마지막은 앞선 두 과정 이후에도 세수가 부족할 때, 어떤 세목에서 어떤 계층에게 어떤 방식으로 부담을 지울 것인가를 체계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기존의 불공평한 과세구조를 바꾸지 않고 낭비되는 세금을 제대로 절감하지 않는 상태에서 무턱대고 증세하면 오히려 서민들 부담만 커질 수 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무조건적인 증세부터 이야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사람들에게 자신이 낸 세금이 공정하게 걷혀서 제대로 쓰이고 있다는 믿음을 줘야 세금을 더 낼 생각을 갖게 할 수 있다. 무조건 세금부터 더 내라고 하면 나부터도 안 낸다.

이를 위해선 재벌에게 세금을 제대로 물려야 한다. 재벌들이 온갖 탈불법적 수단을 동원해 재산을 상속하고 있지만 상속세도 제대로 내지 않고 있다. 부동산 보유세도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공정 과세 측면에서 맞지 않는 이야기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봤듯이 안전 및 위기대응 훈련 예산은 연간 10억 원이 안 될 정도로 형편없이 적다. 또, 안전예산이라고 분류된 소방방재청 예산 3분의 2가량은 실제로는 토건사업 예산이다. 국·공립 대학에 14년간 학생 등록금을 지원할 수 있는 22조 원을 4대강사업에 처박았다. 이런 현실에서 자발적으로 세금 더 내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공정과세 구조를 정착하고, 거둔 세금을 제대로 쓰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올바른 과세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선 소득 조사청 설립 등의 노력도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가 가야 할 방향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런 방향으로 가는 대신 결국 서민 증세를 추진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영광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이영광의 언론, 그리고 방송이야기'(http://blog.daum.net/lightsorikwan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담배값, #증세, #선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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